낯섦과 익숙함의 경계를 허물다
청평사로 올라가는 길, 계곡 물가에 핀 들꽃,
처마 끝, 바람결을 따라 맑게 울리는 풍경,
소양강댐 어귀에서 만난 작은 핑크빛 코스모스,
한옥 게스트하우스 입구에서 날 반겨 준, 솟대 얹은 장승,
툇마루 바닥에 새겨진 꽃잎 문양,
너희는 이미, 충분히 “사랑스럽다!”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시작된 춘천여행은 나의 해묵은 오감을 자극하고, 잠자고 있던 신경세포를 깨우고, 녹슨 감성에 기름칠을 하는 시간이었다.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나를 스쳐가는 모든 것들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삭여주었다.
“Listen and remember! I'm here to meet you and feel everything, every moment with you."
숨 쉬고 있는 순간순간, 내 곁을 지나가는 시간의 발자국 소리를 느낄 수 있을 만큼, 내 안은 고요했고 잔잔했다.
이 공기, 이 소리, 이 냄새, 너의 모습 하나하나를 다 담아가려니, 내 안의 그릇은 어느새 차고 넘치고 만다.
내 눈, 내 가슴에 모두 너를 담고, 하룻밤 묵어가는 나그네 컨셉으로 들른 한옥 게스트하우스.
오고가는 대화와 인사 속에, 낯선 이들에게서 익숙하고 기분 좋은 기운이 감지된다.
마당 한가운데 지글지글 소리내어 익던 닭갈비, 비우고 채우는 술잔과 물잔, 별일이기도 하고 별일 아니기도 한 이야기들, 그리고 낯설다 익숙해진 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앞마당에 어둠이 내린다.
다시 고요가 내리고, 내 머리 위로 별이 다가와 앉는다.
이른 새벽, 소양강 물길을 따라 물안개를 가르며 노를 젓는 동안, 빠알간 얼굴을 내미는 해를 만난 건, 분명 이번 여행의 ‘덤’이었다.
물안개는 구름 위를 걷는 듯 아슬아슬, 손에 잡힐 듯 한데 쉽게 닿지 않아 나를 애타게 했고, 물길 중간중간에 만난 보라색 부처꽃은 이 여름이 다가고 나면 다시 만나자는 말을 건네는 듯 했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었다.
나는, 이렇게 사랑받고 싶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굴러가는 삶.
내 존재가 주변과 어울려, 그저 배경의 일부가 되는 그런 삶.
떠났다가 비우고, 다시 채워서 돌아오다 보면, 진정으로 내가 떠나가 머물 곳이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아주 어렴풋하게 들었다.
그 여정이 이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