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며느리가 쓴 글을 읽었다. 스크롤을 멈추고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나 역시 맏며느리로 시댁과 함께 살아온 세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함께 살다가 분가한 지금도 아파트 앞뒷동으로, 걸어서 3분 거리에 평생을 살아오고 있다.
그 글에 등장한 시(부)모는 빠르면 50대 후반, 늦으면 60대 초반쯤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그 글 속의 시어머니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구순을 넘긴 내 시어머님 세대와 상당히 겹쳐 보였다. "남의 집 제사상에 참견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집집마다 모두 사정이 다름을 함축한 말이다. 그러니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련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어수선했다.
계곡 서쪽에서 캔 미나리 행주치마를 다 못 채웠네
까마귀 부리 같은 향그런 싹을 손으로 땄네
누이는 응당 시집살이 괴로움을 알 테지
매운 고추인들 시집살이 혹독함만 할까.
김윤식(1835-1922)이라는 학자가 문집에 남긴 조선시대 노랫말이다. 주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봄날, 여자가 나물 캐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
그 시절 봄은 춘궁기, 곧 ‘보릿고개’였다. 끼니를 장만해야 하는 여인들은 굶주림과 싸우며 산과 들을 헤매며 푸성귀를 캐러 다녔다. 저 노래는 그 길 위에서 한숨으로 흘려낸 노래 한 자락이었다. 손발이 부르틀 것 같은 고된 삶, 그러나 그보다 더 쓰라린 건 시집살이의 설움이었으리라. 매운 고추보다 더 매웠다는 고백이, 저 짧은 구절에 서려있다.
구순을 넘긴 엄마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 같은 대한민국에 살아도, 엄마가 살아온 나라와 내가 살아온 나라, 그리고 지금 MZ세대가 사는 나라는 완전히 다른 나라예요.”
2025년, 이 순간을 같이 숨 쉬고 있지만, 각 세대는 서로 다른 방식, 다른 계절에서 각자의 언어로 살아가고 있다. 며느리와 사위는 더더욱이 성인이 될 때까지 나와 다른 풍경에서 성장하며 살아온 세대이다.
살아보니,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은 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줄 더 보태고 싶다.
“며느리를 이길 시부모도 없다.”
왜냐하면 시부모는 인생의 고갯마루를 넘어 이미 ‘로-병-사’라는 길목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와 날을 세운들 승산이 없다. 자존심 강한 내 시부모님조차 디지털에서 AI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 도움이 아니면 시민으로 활동하기 쉽지 않다.
장성한 아들이 있으니 나도 머지않아 '시어머니'라는 이름을 달게 될 것이다. 살면서 받아온 어떤 호칭보다 가장 부담되고 긴장되는 이름이다. 며느리(또는 사위)는 내 자식으로 인해 법적으로 맺어진 관계일 뿐이다. 핏줄도, 사랑도 아닌 서류 한 장으로 성립된 관계이다. 내 선택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평생 가는 관계로 엮이니, 각별히 예의와 신중한 배려가 필요한 사회적 관계가 맺어짐이다.
다정함이 어려우면 예의를, 친밀함이 부담스러우면 적절한 거리를, 사랑이 부족하면 배려를 건네며, 서로의 인생에 어수선한 마음을 안기지는 말자고 다짐해 본다. 그와 더불어 지금의 MZ세대에도 바람이 있다. 경직된 상하관계에 근거한 유교식의 '효'개념은 벗어나라 말하고 싶다. 다만 늙어가는 부모의 뒷모습에는 따뜻한 이해와 조용한 배려로 응답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인용문출처 : 김윤식, 《운양집》 1, 시, 귀천기속시 206수. 한국고전종합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