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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Aug 28. 2020

영화 '결혼이야기', 그리고 엄마와 나



영화 <결혼이야기> 


<결혼이야기>를 보았다. 내 주변엔 벌써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은 사람들도 있지만, 결혼을 안한 나로선 영화 속 니콜과 찰리의 감정을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뉴욕과 LA의 거리만큼 멀어진 둘의 관계를 보며, 결혼이란 건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처음에는 어느정도 맞춰주다가, 어느 순간에 ‘LA가 낫냐 뉴욕이 낫냐’ 같은 정답이 없는 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여야 하는 일이구나 싶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결혼은 당사자 이외에도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욕망과 바람을 투영하니 ‘한국판 결혼이야기’가 만들어진다면 러닝 타임은 훨씬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중후반부쯤 변호사들 간의 법적조정에 지친 니콜과 찰리는 대화를 시작한다. 허심탄회하게 시작된 대화는 이내 감정과 울분이 뒤섞인 감정싸움으로 변하고 둘은 서로를 향해 온갖 욕을 퍼붓는다. 두 사람은 상대방을 위해 자신이 얼마나 희생했는지 토로하지만 결국 누구도 상대방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이 장면을 보며, 올 봄 엄마와 내가 떠올랐다. 엄마도 나도 서로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둘 다 행복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도 잃고 상대방을 만족시켜주지도 못했다. 그래서 난 내가 엄마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슬펐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못마땅해하는 엄마에게 서운했다. 엄마는 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공부 잘하는 모범생일 땐 자랑스럽고, 돈 못 버는 백수일 땐 창피한 존재가 된다는 게 서러웠다. 



게다가 난 원하는 일을 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자유 때문에 직장도 때려치우고 투잡, 쓰리잡을 뛰며 고달픈 생활을 하면서도 정작 해방감을 누리지 못하고 걱정만 했다. 직업만 바꿨지 내 삶의 방식은 여전히 안전지대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영화를 보며 나도 누군가의 그늘을 벗어나고 싶었다. 성공한 연출가였던 남편의 그늘을 벗어나 자기 작품으로 감독상 후보에 오른 니콜처럼 나도 나를 드리웠던 그늘을 치워버리고 싶어졌다. 부모가, 사회가, 주변 사람들이, 내 자신이 나에게 설정한 한계들을 말이다.



문득 ‘번지점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번지점프를 떠올리면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게 꼭 자살하는 기분일 것 같아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뛰다가 괜히 심장마비에 걸리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도해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걸어보고,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는 용기. 그 용기가 지금 나에게는 절실하기 때문이다.


2020. 4月


영화 <결혼 이야기> / 감독노아 바움백 / 출연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 개봉2019. 11. 27.


2020. 8월의 comment; 

지난 3월 본가로 돌아와 엄마와의 불꽃튀는 싸움의 시기를 지나며, '한달 20만원의 하숙비+a'라는 조건으로 모녀 협상 극적 타결! 현재는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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