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밀착형 바이커로 살아가는 나만의 규칙
도시인에게 자전거란? 시티팝 음악처럼 둠칫거리며 도시의 야경을 가로지르는 이미지가 연상되긴 하겠지만, 또 어떤 이들 (혹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에겐)에게는 출퇴근을 위한, 지하철을 타기 전, 교통비를 아껴보겠다는 생활밀착형적인 바이킹일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도 그렇다. 집과 지하철의 거리가 멀다 보니 걷는 시간을 단축할 겸 자전거를 탔고, 전보다 출근시간의 구애가 줄어들었다 보니 멀지 않은 거리 -지하철 4개~5개 정거장 정도-는 자전거를 택하기도 한다.
이 서울이라는 도시는 공유자전거 '따릉이'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다. 덕분에 굳이 내 자전거가 없더라도 매일 자전거를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종종 자전거가 없어서 허탕을 치기도 하지만)
서울은 편리한 따릉이의 시스템을 바탕으로, 한강의 자전거 도로를 비롯 자전거로 달리기에 꽤나 괜찮은 곳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거리에서는 아직 쉽지만은 않다. 자전거 전용도로에 대한 개념도 아직은 많이 없거니와 좁은 인도에서는 행인이 우선이기에 자전거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출퇴근을 위해, 나름의 절약형 사명감을 위해 달리는 생활밀착형 바이커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니 나름 나만의 규칙이 생겼다.
먼저, 나에겐 큰 가방이 필수다. 드라이버들과 달리 바이커들은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덕분에 최소한의 부피를 차지하는 벙거지나 캡모자가 필수로 필요하다. 거기다가 선글라스도 마찬가지다. 선글라스는 햇빛을 피하기 위해 필요하다. 거기에 제 갈길 가는 초파리, 날파리 등이 언제 눈으로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벌레충돌방지용'으로도 꼭 필요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선크림도 언제부턴가 꼭 챙긴다. 화장을 할 때 한번 바르긴 하지만, 햇빛에 정면으로 승부하기 위해선 언제부턴가 덧칠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욕심이 생겨버렸다. (어떤 여배우도 그랬다. 화장 위에도 계속 덧칠하라고..)
큰 가방을 위한 이유는 더 있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기에 자전거에서 내리는 순간, 자전거에서 내린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모자로 눌러진 앞머리가 신경이 쓰이고, 콧등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들도 정리가 필요하다. 때문에 핫핑크의 고데기가 늘 가방 안에 있고, 작은 티슈도 늘 구비해야 한다. 덕분에 화장품이 들어가 있는 파우치의 크기가 점점 커져버렸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는 귀엽고 작은 가방은 어렵게 되었다. 멋을 내기 위해 가끔 작은 가방을 들더라도, 한쪽 어깨엔 또 넓은 에코백이 들려진다.
다음 규칙은 이렇다. "나에게 취하지 말 것. 주변을 살필 것"
중요한 규칙이다. 자전거를 타는 순간, 걷는 속도보다 적어도 2배는 빨라진다. 요즘 성능이 좋아진 이어폰들이 세상의 소음을 차단해 나만의 세계 속에서 걷게 해 주지만, 빨라진 속도를 가진다는 건 주변에 서로가 위험해질 수 있는 요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세상의 소음과 단절해서는 안된다.
때문에 나는 이어폰을 한쪽만 사용한다. 바람을 맞이하며 한쪽뿐이지만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렇게 세상 끝까지 달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취해서는 안된다. 곳곳에서 차들이 튀어나오고, 사람들도 튀어나온다. 거기다 더 빠른 자전거, 킥보드들도 거리에 넘쳐난다. 주변을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고, 음악과 바람과 그리고 나에 취해 달리다 보면 넘어지고, 다칠 뻔한 순간이 여러 번이다. 도시의 바이커. 생활밀착형 바이커는 적당한 낭만과 타협해야 한다.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온 지가 고향에서 산 만큼의 시간이 되었다. 서울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설레고 대단한 것 같았지만 작은 고시텔, 원룸에 살며 한없이 우울해졌던 적이 있었다. 그럴 때면 한참을 걸어 한강에 도착했고 속절없이 흘러가던 강물과 눈치 없이 빛나던 서울의 야경으로 위로받던 그런 시절이다. 낮에는 한없이 미웠던 서울이지만, 누구에게나 똑같이 불어오는 서울의 바람이 좋았다. 나는 서울을 마냥 미워할 수 없었다.
요즘 나의 출근길은 보통 강변역에서 출발해 석촌고분역까지 넘어간다.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이 여정에서 가장 멋진 모먼트는 잠실철교에서 맞이하는 그 순간이다. 그리 높지 않지만 일반 자전거의 기어로 어려울 수 있는 구간을 통과한다. 얼굴과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렇게 맞이하는 쭉 뻗은 잠실철교의 자전거도로와 롯데타워가 보이는 뷰. 그리고 여전히 누구에게나 똑같이 부는 한강의 바람이 나를 반긴다.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들어온다. (...)
흘러오고 흘러가는 길 위에서 몸은 한없이 열리고,
열린 몸이 다시 몸을 이끌고 나아간다.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현재의 몸이다.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그다음 있을 일을 위해 바짝 긴장해야 하는, 온몸으로 흘러들어오는 도시의 숨 막히고 긴장스러운 바이브를 받아들여야 하는 생활밀착형 도시 바이커가 가끔은 부질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옛날 서울에게 느꼈던 권태와 서러움과 같은 결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바람은 분다. 한강을 타고 날아오는 서울의 바람이 분다. 바삐 갈길을 가다가도, 뒤를 돌아 길을 비켜주고, 멈칫 서서 배려의 눈빛을 보낸다. 많은 이들의 노력과 시간이 합쳐 만들어 준 복잡하지만 매력 넘치는 이 길들이 낡은 시간을 넘어 현재의 내게 알 수 없는 힘을 준다. 그 옛날 한강변에 앉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도시에 퍼붓던 그런 애정이라고 해야 할까.
모르겠다. 바퀴를 구르며 내달리는 나는 그렇게 수백, 수천번의 생각의 굴레에서 익숙한 길을, 새로운 길을 간다. 나는 그렇게 도시에 익숙해진, 미워할 수 없는 이 도시에서 오늘도 내일도 또 다른 날도 나름 신나게 달려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