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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핀 Dec 21. 2021

IDeal. 두 번째 이상

ID: 파도

이름에서부터 활기찬 움직임이 느껴지는 파도님과의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중 '저마다 다른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상을 가진 우리 또한 현실을 벗어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만의 현실을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더불어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다는 점을 재차 느끼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파도님의 남다른 시선과 생각들을 알아보실까요?



Q1. 당신은 이상적인 사람인가요? 그렇다면, 본인이 가진 이상적인 관점이나 가치관을 설명해주세요.

- 제가 가진 이상적인 가치관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세상에 기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나의 배움과, 배움에서 나아간 나의 고뇌가 분명히 세상의 어떤 부분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리고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저는 살아가면서 저를 지탱하는 것이 사랑하는 행위였던 것 같아요. 굳이 사람이 아니라도 무언가를 사랑할 때 세상을 살아갈만한 힘이 생겨요. 예를 들어, 가족, 혹은 반드시 혈연이나 제도로 묶이지 않더라도 '가정'이 있다는 사실이 삶을 버티게 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는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다른 생명체를 사랑하는 게 더 쉽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까요. 만약 사랑은 필수적이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저 자신이 체감을 못하고 인지하지 못한 것뿐이라고 봐요. 그래서 인생은 끊임없이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기에, 결국 인생은 커다란 사랑의 여정인 듯해요.

사실 저 스스로한테는 당연한 관점과 가치관이지만, 사람들을 만나보면 다 저와 같은 건 아니고. 현실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또,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모순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고 느낀 사람들이 많다 보니 제 가치관이 이상적인 느낌이 들어요. 


Q2. 이러한 가치관이 당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 일단 제 정체성을 표현하자면, 인류애가 있고 이타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고요. 특히 연구를 통해 나보다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스스로 '연구자'라는 정체성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나로 하여금 주목받아 마땅한 가치를 가진 약자들의 이슈가 드러나고 그들의 목소리가 형성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낍니다.


Q3. 당신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던 인문학, 혹은 철학이 있을까요?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 영화 등등, 나아가서 자신이 가진 삶의 철학을 공유해주셔도 좋습니다.)

- 고등학교 시절 윤리와 사상 시간에 배웠던 롤스의 ‘정의론’이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저는 롤스의 정의론을 접했을 때 무언가가 해소되는 기분을 느꼈어요. 평소에 제가 생각했던 것들을 문자로 표현한 느낌이랄까요? 롤스가 말하는 우연적 요소의 영향과 그리고 그런 요소로부터 얻은 혜택을 최소 수혜자에게 돌려주는 게 당연하다는 그 주장을 통해서 저도 제가 가지고 있는 기회를 최소 수혜자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냉정한 이타주의자'라는 책도 꼽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책에서 선한 의도가 선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려면 냉정한 판단이 필수이며, 그리고 이를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한 공부가 필요함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할 때 그 행위가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는 의도와 달라질 수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타주의도 좋지만, 의도와 맞는 좋은 결과를 가져오려면 냉정할 필요가 있다는 걸 깨달았아요. 표면적으로는 선한 의도를 표하지만, 이면은 다른 경우도 있으니까요. 예를 들면, 국가 간 원조에서 선한 의도를 표방하지만, 선한 결과보다는 이해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경우도 많다는 현실을 생각해본다면요.


Q4. 혹시 자신이 지닌 이상적 가치관으로부터 비롯된 행동을 한 적 있나요? 있었다면 어땠는지, 없었다면 왜 행동을 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세요.

이상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행동을 의도적으로 했다기보다는 삶이 그런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는 것 같아요. 대학생이니까 남들처럼 강의를 듣고 리포트를 쓰지만 제 가치관과 많이 연관이 되는 수업을 찾아 듣는다거나, 과제 주제를 굳이 가치관과 연결시켜 잡는다거나,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의 방식으로요. 예를 들어 보자면, 작년 저의 대학생으로서의 학업생활은 ‘코로나19와 약자들의 삶’을 연구하는 것에 많이 초점이 가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처음 답변에서 말씀드린 제 가치관에서 비롯된 흐름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4.1. 이러한 행동이나 활동을 하고 나서의 느낌은요?)

- 뿌듯한 느낌도 들고, 사명감도 들어요. 근데 가끔은 회의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현실에 한계를 느끼게 되는 기분이 들 때도 많거든요. 앞서 말씀드린것처럼 제가 코로나19와 장애인 건강불평등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도 이런 감정을 느꼈어요.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 장애인 인권 단체 측에서 요구하는 기준이나 이야기들이 다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요구 사항이 다 반영되지 않는 까닭에 표면적으로만 해결된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도 개선에서의 시차가 굉장히 길다는 한계도 볼 수 있었고요. 추가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번에 ‘여성의 인권 보장 정도와 코로나 피해 정도의 연관성’에 대해서 국가별 연구를 진행했어요. 연관성이 있으면 확실히 인권 보장의 중요성을 표명할 수 있으니 유의미한 결과를 밝혔다는 뿌듯함이 있었어요. 그러나, 여성 인구의 유병률과 사망률을 제공하는 국가가 많이 없다는 점에서 다시 한번 한계를 느꼈어요. 예를 들어, 감염률은 있거나 사망률은 없는 경우처럼 통계자료가 부족한 측면이 있었어요. 사실상 통계자료가 없다는 것은 그들을 별개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거든요. 자료가 없으면 문제라고 이야기 자체를 할 수가 없으니 안타까울 때도 많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연구를 통해 다시 문제제기가 가능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뿌듯하기는 합니다


Q5. ‘이상적인 사람’이라서 겪는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다면요?

- 항상 고민하는 건 확실히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것들이에요.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요즘 ‘나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를 정말 많이 고민해요. 사실 이런 이상적인 가치관 이야기를 남에게 하고 스스로 되새길 때마다 정말 가슴이 뛰고 설레는데, 내가 평생을 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대학원 생각부터 해서 뭔가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랄까.. 학문을 하고자 하는 제 나이대의 대학생들이라면 다 비슷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위의 것은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의 고민이었다면, 정말 나의 연구와 나의 목소리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어요. 이건 조금 더 큰 단위에서의 고민이겠죠.

(Q5.1. 현실적인 문제를 알지만, 그래도 이상적인 관점을 유지하는 이유가 있나요?)

- 당연하게도 저는 이 분야를 보면 심장이 뛰어요. 다른 일을 해볼까 하다가도 재밌게 할 자신이 없고, 오히려 일을 할 때 괴로울 거 같아요. 저는 제가 재밌고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불안하기는 한데, 이상한 자신감도 있어요. (웃음) 어떻게든 잘 될 거라고 애써 생각해봅니다. 


Q6. 그렇다면 본인의 어려움이나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 해결의 문제라기보다는 일단 부딪혀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가 하는 고민 모두 아직 부딪혀보지 않았기 때문에 하는 고민일 수 있어요. 실제로 부딪혔을 때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때 제가 생각할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해결방안들은 지금과는 몹시 다르고, 또 훨씬 현실적일 것이라 생각해요. 지금은 그저 눈앞의 일이니까 걱정이 되고 겁이 날 뿐인 거죠. 근데 아직 대학원에 들어간 상태도 아니니까 우선 부딪혀보려고요. 그냥 걱정만 하는 건 좋지 않은 태도인 것 같아요. 


Q7. 구체적인 질문을 드려볼게요. 저는 이상적인 사람들이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주변에서 ‘공감하기 어렵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면, 자연스레 나의 가치관이나 행동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만약 당신의 이상적 행동을 어필하고 싶거나, 혹은 당신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추가적으로 위에 설명한 내용과 같은 상황을 경험한 적이 있으면 설명해주셔도 좋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저의 가치관과 의견을 존중해주고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 속에서 성장해왔어요. 저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제 가치관을 까내리는 일은 잘 없었고요. 마찬가지로 저 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라고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모두의 가치관과 인생관은 그것으로써 충분히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마땅하죠. 다만 이상적 사람으로서의 제가 항상 귀 기울여야 할 말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라는 말인 것 같아요. 무작정 근거 없이 까내리는 말들 말고, 건설적 비판들이요. 건설적인 비판들은 충분히 수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이 현실인지 아닌지, 그리고 적용 가능한지 아닌지를 들을 필요가 있다고 느껴요. 특히나 보건 분야의 관심이 있는 제 입장에서는 효용 측면 또한 고려해서 무슨 사업을 선택하고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생각할 때 꼭 필요한 비교 사항이 되는 것처럼요. 또, 결국 제 목표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거잖아요.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감각을 계속 잡고 있어야 하고, 그걸 겨냥한 비판은 수용하고 개선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현실과 맞닿은 이상주의자가 되었을 때 저의 이상적 행동이나 논리, 생각들이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요.


Q8.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그리고 반대로 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인터뷰를 끝내며 덧붙이고 싶은 말 등을 자유롭게 표현해주세요.

- 저는 모든 개개인에게 ‘현실’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처한 현실이 ‘현실’의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으면 해요. 현실을 추구하든, 이상을 추구하든 보다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고 포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요. 저는 보건 분야에 관심이 많다 보니, 건강 불평등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합니다. 근데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사회경제적 맥락으로 인해 처해있는 환경마다 기본적인 건강 상태의 격차가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계시더라고요. 이렇게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현실이 아니라고 해서, 현실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에 더더욱 포용하고 넓게 보는 시야가 필요할뿐더러, 누군가가 문제를 이야기하고 지적했을 때 존중할 필요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현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들을 알고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이고요. 이러한 현실들 속에서 저는 계속해서 다른 현실을 포착하고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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