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삼돌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이상'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여전히 누군가는 이상적인 생각이 무의미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이자 방향성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삼돌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있음을 배우고, 나아가 '이상'의 존재가치를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 어렸을 적에 제가 생각했던 세상의 모습이 이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범죄자들과 같은 악한 존재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그건 너무 ‘저 스스로’의 작은 경험들에서 형성된 세상에 대한 관념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이상은 선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실현이 가능하겠지만, 점점 집단이 커지고 부정적인 사람들이 유입되면 흐려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사회라고 느끼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이제 딱히 이상을 꿈꾸는 사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아마 자라면서 ‘어린아이’라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나서서 보호해주던 범주에서 ‘여성’의 집단에 속하게 되었을 때, 내가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던 것 같아요. 최근 하루에도 수백 개의 범죄 기사를 보고, 어쩌면 수천 건, 수만 건에 달하는, 성별이나 인종 등에 대해 선택적으로 폭력을 가한 사례를 보면서 제가 가진 이상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지금 제가 꿈꾸는 이상은 좀 더 강한 형태로 변모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혐오 범죄 등에 대해서 아주 강력한 비용을 부과하여 범죄 발생 확률을 확 낮추기를 바란다는 점이랄까요. 지금 가진 이상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훗날 저의 분노가 그저 말도 안 되는 웃긴 과거가 된다면, 결국 제 이상 또한 다시 어린 시절 꿈꾸던 이상적 세상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 저는 한 번도 제가 범죄와 혐오의 타깃이 될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나 –이 생각도 기득권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네요- 여성 대상의 범죄가 너무 만연한 세상에서 한 여성으로서 두려움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오로지 저에게 주어진 공부만을 하다가 저 개인과 제가 속한 집단 전체에게 다차원적으로 가해지는 사회/경제/문화적 압박을 겪으니 처음에 혼란스러웠어요. 세상이 나에게 관대했던 것은 제가 사회 경제적으로 기득권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쉽게 말하자면, '온실 속 화초'였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운 좋게 선한 사람들 사이에서 자랐고, 그들과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듯해요. 별 갈등이나 분노 없이 직접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지내고 있으니까요. 반면에 뉴스나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혐오 범죄 관련 문제들을 접하고,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세태를 보며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다양한 소수자들의 삶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부끄럽지만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경제적 지위, 사회적 지위 등 제가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이뤘다고 여겼던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봤어요. 결국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 대학에 입학한 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경제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버릇이 들었어요. 여기서 경제적이라 함은 단순히 돈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며 가장 효율적인 방안을 ‘이상’적인 방안으로 여기는 것인데요. 제가 기존에 생각했던 이상과는 거리가 있는 정의인 것 같네요. 경제학에서 고려하는 두 가지 가치인 효율성과 형평성 중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 대체로 이 학문이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배웠고, 지금도 다양한 상황에서의 효율성 극대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이렇게 비효율을 줄이고, 누구에게 파이가 돌아가든 총잉여만 높이는 것만이 이 학문이 말하는 이상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분배 측면에서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도 있겠지만요. 아직 공부를 2년도 안 한 학부생이니까 저의 부족한 지식이 탄로 나기 전에 말을 줄여야겠어요. (웃음) 그래도 분명한 건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제 사고 회로가 효율성에만 잠식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Q3.1. 사회 문제를 볼 때도 경제학적 관점으로 보시나요?)
- 자동적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정책이나 제도가 시행된다고 보면, 비용이나 효용을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군가의 판단에 대해서 들을 때도 그게 합리적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기도 하죠. 근데 같은 메커니즘으로 생각한다 할지라도,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니까 결론이 달라져요. 내가 비중을 크게 두는 부분이 남들과 다를 수 있잖아요? 개인의 효용은 주관적이라는 점에서요.
- 저의 행동력에 있어서 그 핵심이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대체로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이면 하는 타입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저는, 말과 행동을 충동적으로 그리고 있는 그대로 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저라는 사람 자체는 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과 행동도 올곧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 가치관과 행동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자면, 일단 사회문제를 목격하면 함께 분노해요. 가끔은 분노만 하고 있어서 슬픈 감정도 있죠. 사실 제 주변에서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고, 사회문제가 많아도 막상 제 주변은 아닌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지금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상태인 것은 분명해요. 다양한 측면에서 다수자의 신분인 저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소수자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사람뿐만 아니라 환경으로 범위를 확장시키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자면, 고기를 사랑하는 저지만 제가 평소에 많이 쓰는 립밤이라도 비건 제품을 쓰거나, 무엇을 구매하려고 할 때 스스로 통제하거나 해요. 환경 문제에 대한 저의 태도를 보면 약자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행동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내가 내일이라도 약자의 처지에 갈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고요. 그 경계가 아주 모호하니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 현실의 문제에 분노하는 게 지쳐 외면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의 고민이에요. 고등학생 때는 눈에 보이는 모든 사회의 불합리,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분노하고 소리를 질렀으나, 너무 많은 사례들에 어쩌면 무뎌졌고, 또 한편으로는 저의 분노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무력감이 생겼어요. 그와 동시에 제가 좀 더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일단 현재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중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고, 부정적인 에너지보다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저부터 서로를 존중하며 대하면 저의 행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사람이 또 타인을 선함으로 대하고, 이런 작은 효과들이 모이면 꽤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로 가치관이 다르다고 해도 생각을 존중하고 입장을 잘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무례하다고 생각해서 안 하는 것과 그 사람이 생각하는 지점이 비슷해야 한다고 느끼는데요. 예를 들어, 저는 제 물건을 만지는 게 싫은데, 그 사람이 이해를 못 해서 안 맞아지는 상황이 생길 수 있잖아요. 그러니 기분이 상하지 않게 중도를 지키며 관계를 잘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아주 근본적인 개혁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특히 제도적/구조적인 하자를 메꿔야 한다고 느끼는데, 지금의 저는 그저 신념대로 투표권을 행사하는 아주 작은 일만 할 수 있겠지만, 더 공부하고 경험을 쌓으면 언젠가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벤치마킹이 될 모델을 구상하고 이 형태를 알고 있는 상태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좋은 결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 모델에서 완전경쟁시장이라는 아주 비현실적인 시장을 제일 처음으로 배운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사실 그런 시장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을 배우며 가장 처음 공부하게 되는 모델입니다. 완전경쟁시장이라는 최고 효율을 달성할 수 있는 시장을 배우고 나서, 현실에 맞게 모형의 여러 부분의 요소들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현실을 분석하는 것이죠. 이런 식의 접근은 현실에서 우리 경제가 어떤 부분이 이상적 상황으로부터 멀리 존재하는지, 그래서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게 바로 이상의 역할 아닐까요? 이상은 100% 실현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상입니다.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기 위해 이상주의자들의 역할이 매우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마음껏 이상에 대해 고민하세요. 당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협업하면 make it a better place 가능합니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 들으시며 이 인터뷰의 마지막을 함께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