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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생 학생 May 30. 2024

풍선만 했던 내 행복이 모래알이 된 이유

나는 너보다 행복해

반지하 쓰리룸에서 신혼을 시작했을 때,

결혼한 친구가 딱 한 명이었다.

이는 곧 나의 결혼 생활 만족도를 비교할 대상

역시 한 명뿐이었다는 의미다.

대학 동기인 친구 역시

나처럼 다세대 주택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우리의 행복 크기는

그야말로 도토리 키재기였다.

누구 하나를 자극해

시기하고 질투할 거리가 거의 없었다.

친구가 신축 아파트 33평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친구네 집으로 집들이를 다녀오던 날

풍선만 하던 내 행복은

얕은 손금 사이에 박힐 만큼

작은 모래알이 되어있었다.


모래 한 알 같았던

내 행복을

헬륨 풍선처럼 부풀게 해 준 건  

그토록 원하던 ’ 미국 생활의 시작‘이었다.

미국으로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이사한 곳은

마당이 있는 주택이었다.

층간소음 걱정 없는 단독 주택에

아이들이 언제든지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은

아이 키우는 친구들이 부러워할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친구들이 부러워하자

드디어 내 인생도 자타공인

꽤 성공한 인생 같았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감정은 지옥 같았지만

부러운 사람이 없는 상태는

초콜릿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했다.  

나는 한동안 그 달콤함에 취해 있었고

그 행복이 영원할 거라 굳게 믿었다.



미국 땅에서 처음으로 사귄

한국분의 집을 방문하기 전까지 말이다.

’하필이면 ‘ 그분의 집이

우리 집의 3배 크기가 넘는  

고급주택 단지에 위치한 집이었다.

첫 만남은 그분의 집이었다.

전해받은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고

네비가 안내해 주는 대로 따라갔다.

입구부터 고급스러운 ‘고급 주택 단지‘의 위엄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3년 동안 같은 도시에 살면서

그런 동네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몰랐다.

입구에서 꽤 들어가야 집이 나왔는데

주인의 취향을 가득 담은

집들을 구경하느라 지루할 틈도 없었다.

조심스레 주차를 하고

앞마당을 지나

초인종을 눌렀다.  

첫 만남에서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는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나는 것은

손님 전용 화장실에 비치된

은은하고 고급스러운 핸드워시와

발이 닿으면 보송보송하고 폭신폭신해서

기분 좋아지는 카펫 그리고  

집안 곳곳에 걸린 대형 미술 장식품들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나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만남으로

내 행복은 너무 작아져 있었다.

그 이후 몇 번 더 만났지만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 분 앞에서는

내 행복은 턱없이 작아져서였다.



나는 왜 그 분과의 만남이 불편했을까?

나는 왜 아파트로 이사 간 친구네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바닥까지 불행하다고 느꼈던 걸까?

바로

내가 ’ 남보다 더 행복하다 ‘고 느끼는 상황에서만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친구 김 OO 보다 잘 살고 있으니

‘나는 행복해’라고 느끼게 해주던

상대적 행복 기준은

나보다 더 큰 집에 사는 이 OO 앞에서는  

내 행복은 보잘것없는 것이라는

깊은 함정에 빠지게 했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의 저서를 검색하다

책 ’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살 만합니다 ‘

제목을 읽자마자

도서관에 달려가 책을 빌렸다.

내 이름으로 된 집이 없이도

행복할 수 있는 비밀을 알려줄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저자는 군만두와 사우나만 있으면

자신은 꽤 행복하다고 말한다.

식당에 가서 군만두 한 판을 시키면 15000원,

집에 있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땀을 흘리는 것이 5000원이라 가정했을 때

‘집을 소유해야 행복하다’라는 내 기준에선

단돈 2만원원으로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꽤 괜찮은 행복투자 처럼 들렸다.


저자는 말한다.

상대적인 행복은

내가 비교하는 대상에 따라

내가 느끼는 행복감이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고 말이다.

해외에서 살고 싶지만,

해외 생활을 할 수 없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가

나보다 3배 더 큰 집을

자가로 소유한 사람을 만나면

한 순간에 불행하다고 느낀 것은

바로 나의 행복의 기준이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상대적인 기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이토 다카시는 우리에게 우리만의 안전망,

아주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단순한 기준을‘ 가져보라고 제안한다.

바로 우리만의

‘절대적인 행복 기준‘을 가지라고 한다.



나는 언제 행복할까?


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반신욕
다크로스트 커피 한 잔
그리고 독서하는 시간


이 세 가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매일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이다.

매일 세 가지 모두를 하지 못한다고 해도  

아침에 내려마시는 커피 한 잔으로

행복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외출하기 전에 가방에 책 한 권 넣어

시간이 날 때 잠시

하루에 1페이지 책만 읽어도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

가족이 모두 잠든 후에 집에서 반신욕 하며

행복하게 마무리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카시는 나이가 들수록

나만의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을

늘려가 보라고 한다.

나도 35번째 생일을 앞둔 지금

나만의 35개의 행복의 기준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행복

#절대적행복

#사이토다카시

#행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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