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걸음

by 향긋한

모임이 끝날 때 까지 수환은 혼자 말없이 술잔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취기에 피곤이 뒤섞여 잠시 스스로를 가누고 있는 모습 처럼 보였다. 잔을 든 그의 오른손엔 금색 시계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걔 남편 이번에 레스토랑 확장 하더니
매출 세 배나 뛰었대


유경은 안방 두 번째 서랍장에 손을 휘저어 깊이 숨겨둔 예물 시계를 꺼냈다. 아무런 대꾸도 없는 수환의 오른팔 손목을 낚아 채더니 예물 시계를 직접 채워줬다. 오늘 유경은 식사자리에서 그들만큼이나 자신도 여유로운 결혼 생활을 연기하고 싶었다.


수환은 화려한 시계 안에서 초침이 매초 가늘게 흔들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아지겠지. 조금 나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참고, 견뎌왔던 결혼 생활의 끝은 늘 제자리 걸음이었다. 힘 없이 움직이다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곗 바늘의 초침처럼.


수환의 침묵을 읽은 수연이 조용히 말 수를 줄여 나갔다. 레스토랑 프라이빗 룸 안은 취기가 오른 유경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우리 남편 이번에 승진했거든. 그러니까 오늘은 우리가 한 턱 쏠게!”


유경의 말이 끝마치기 무섭게 수연의 남편이 입을 열었다.


“올해 매출이 몇 배나 뛰어서 저희가 사게 해주세요”


그 순간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부딪히며 날카롭게 튀었다.



#결혼생활

#이혼

#결혼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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