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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부의 콤플렉스

박사 학위를 딴 남편 옆에서 웃지 못하는 아내

by 향긋한

박사 학위 졸업장을 들고 푸른색 졸업 가운을 걸친 남편의 팔짱을 살며시 꼈다. 카메라를 향해 있는 힘껏 웃음 지어 보였다. 그 옆에는 자랑스러운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서있었다. 남편의 졸업을 내 일처럼 기뻐하지 못하는 내 비참한 마음은 시어머니의 그 자랑스러운 눈빛과는 분명 대조적이었다. 시어머니 입에서 나오는 남편에 대한 자랑 한 마디 한 마디가 이상하게 내게 비수로 내리 꽂혔다. 한 남자의 인생 전, 후반전을 희생해온 여자 둘. 시어머니는 누구의 희생이 더 큰 역할을 해왔는지 마치 재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남편의 영광을 속 편하게 누리지 못했다.


그때 부터였다. 남편의 ‘박사학위’를 의식하게 된 게. 내 꿈이기도 했던 박사 학위 취득. 나는 누가 남편을 조금이라도 칭찬하려고만 하면 괜히 트집을 잡았다. 괜히 남편의 단점을 들먹이려고 했다.


그리고 문득 내 나이를 떠올렸다. 36살. 무경력.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업주부가 된지 어느 덧 11년 째. 소위 말하는 경단녀도 아니었다. 경력이란게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에서 쳐주지 않는 전업주부 경력만 11년 째다.


이대로 그냥 살아가야 하는 걸까. 아이들이 다 클 때 까지 조금만 참자고, 조금만 기다리자고 하기엔 나는 말라 비틀어 가고 있었다.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자고 만족하자고 말해봐도 내 마음은 듣질 않았다.


‘인생 좀 편하게 살자’라는 말로 합리화 하면서 하루에 서너시간씩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도파민 중독자로 살았다. 하는 말 마다 비관적이었다. 마치 내가 세상을 다 아는 것 처럼 떠들어 대는 철학자 행세도 했다. 그 사이 가족들에게 짜증은이 늘었고, 몸에는 군살이 붙었고, 핸드폰에 코를 박은 채 살아가는 그냥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40대를 맞이할 자신이 없었다. 내 안에 커다란 불안이 휘몰아 쳐왔다.


변화를 꿈꾸는 마음과 동시에 ‘아무것도 하려 하지 말라’는 무기력에 익숙해져버린 마음이 충돌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Just Do It !



일단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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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Eqz2QI1rrI?si=bXQv3k7IEaiUFs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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