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권하는 사회
11월에 사지 않았던 물건 리스트 글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절제력이 향상되었어!’라고 폭풍 칭찬을 했더랬다. 그런데 그 칭찬이 무색하게 시계 바늘이 12월 1일로 넘어가는 자정을 가리키자 마자 지난 달과는 또다른 새로운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하나둘씩 담고 있는 나를 대면해야 했다. 11월에 소비를 절제해주던 자제력은 반딧불 같은 하루 살이었나 싶을 만큼 스스로의 모습에 어이가 실종해 노트에 '갖고 싶은 목록'들이 떠오를 때마다 하나씩 적어보았다. 몇 개나 갖고 싶어 하는지 한 번 지켜보겠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1. 라이카 폴라로이드 사진기
2. 가스레인지 토스터기
3. 나무 국그릇
4. 독일산 철제용 부엌 가위
5. 무인양품 밀대 청소기
6. 스웨터 카디건
7. 서류 디바이더 파일
8. 아이들 영어 시리즈 북
엄마인 내가 소비를 앞세워 할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변명은 나 좋으라고가 아니라
다 ~ 아이들을 위해서야~
라는 말이다. "정말 필요한 물건이 맞아?"라고 물어보면, 내 안에 있는 소비 요정 자아가 생색을 내며 "물론이지. 애들 사진 찍어 주려면 라이카 폴라로이드 사진기 정도는 있어야 하거든"이라고 대답할 게 뻔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했다. 도대체 이게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 그 시작점, 그러니까 소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그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했다. 무엇이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했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그래서 내게 물었다.
어디에서 이 물건을 봤나?
그랬다. 나는 질문을 바꾸어 내가 그 물건을 '어디'에서 본 것인지 출처를 되짚어 보았다. 지나가다 마트에서 본 물건인지, 아니면 내가 자주 보는 브이로그 채널 영상에서 본 것인지, 아니면 유튜브에 자동으로 뜨는 광고를 보고 갖고 싶어 졌는지 말이다.
1. 라이카 폴라로이드 사진기의 소비욕 출처
평소 '감성 물건'을 좋아하는 나는 얼마 전, '혼잣말의 앞치마'라는 제목의 일본 드라마 한 편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주인공은 일본의 한 오래된 작은 아파트에서 아기자기한 자신만의 공간에서 요리를 한다. 이 드라마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직접 만든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라이카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2. 토스터기의 소비욕 출처
또 다른 영상에서는 두유를 넣은 미소 된장국과 식빵으로 식사를 한다. 유튜브에서 흔히 보던 그 토스터기로 식빵을 굽는데 너무 맛있어 보였다. 가스레인지에 직화로 굽는 식빵이 맛이 없을리는 없고, 쥐포를 사와 당장 5장 정도 구워먹고 싶은 비쥬얼이었다.
3. 나무 국그릇 소비욕의 출처
주인공이 갓 끓인 미소 된장국을 담은 그릇이 나무 그릇이었다.
그랬다. 나는 감성 영상을 보면, '예쁘다. 아! 갖고 싶다! 사야겠다! 필요하다!'라는 자동 알고리즘이 장착된 사람이었던 것이다. 견물생심(見物生心), 물건을 보면 가지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말 나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4. 독일산 철제용 부엌 가위의 소비욕 출처
인별그램
5. 무인양품 밀대 청소기 소비욕 출처
너튜브
6. 스웨터 카디건
쇼핑몰
7. 서류 디바이더 파일
쇼핑몰
8. 아이들 영어 시리즈 북
아이들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메시지의 어느 책.
소비 욕구를 가지게 된 그 출처를 되짚어 보니 모두 '미디어'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밀대 청소기로 마룻바닥 광을 내다 밀대 막대가 그만 부러져서 특정 브랜드의 청소기를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든 게 아니었다.
해시태그로 '제로 웨이스트', '미니멀 라이프'를 검색하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인별그램 속 완벽한 풍경에 있던 가위였던 것이다. 화이트 우드 인테리어로 꾸며진 그들이 사는 풍경과 내 부엌을 비교해 보니 월마트에서 샀던 빨간 가위가 왜 그리 촌스러워 보이는지.. 미니멀리스트의 필수 물건처럼 보이는 스테인리스 가위를 집으로 들여야만 나도 미니멀라이프 근처라도 가볼 것 같다는 착각을 했던 것이다.
아이들의 영어책 시리즈 북을 구매하기 이전에, 일단 집에 있는 책들이라도 한 번씩 다 읽자는 말을 내게 해주고 싶었다.
재미로 보는 영상을 하나 클릭해도 일정 길이의 광고를 봐야만 하는 사회가 되었다. 심지어 내가 한 번 방문했던 쇼핑몰을 찰떡같이 알고 웹사이트 우측에 광고로 뜨는 걸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소비를 권장하고 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하루 중 상당 시간을 너튜브 채널을 보며 보내고 있으니 그만큼 광고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도 많다. 광고에 노출되어 무의식적으로 소비하는 대신 소비하지 않을 나만의 맷집을 키워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
#소비
#소비를 권장하는 사회
#소비 미루기
#소비습관 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