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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Nov 08. 2018

너의 멜론을 보여줘

포르투, 내 인생의 붉은 혁명을 찾아서

이번 주는 거의 일주일 내내 폭우가 내린다. 별로 미학적이지 않은 도시 건물들 사이로 비가 내릴 땐 그리 아쉽지 않은데, 해가 날 때 이 세상 아닌 것같이 아름다운 풍광에서 비가 내리는 건 상당히 아쉬운 일이다. 게다가 이곳에 머무는 기간이 유한한 여행자 입장에선 울고 싶은...(다음주는 내내 맑음으로 나온 일기예보..ㅜㅜ)


포르투에 이런 폭우와 비바람은 드문 일이라 했다. 가을에 비가 많이 내리긴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게스트하우스 아주머니가 말씀해주신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 숙소는 60-7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운영하시는 게스트하우스다. 사람을 너무도 좋아하는 아주머니는 내가 여행 동안 밀린 빨래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아주머니가 너무 좋아한다며 맛보라고 주신 치즈를 나도 맛있다고 하니 남은 것을 통째로 다 주시고, 양말들을 다 빨아 신을 게 없어 맨발로 다니니 두툼하고 긴 양말을 재빨리 찾아서 주셨다.


아주머니는 영어를 30%, 포르투갈어를 70% 정도 섞은 문장을 사용하신다. 얼핏 들으면 포르투갈어 같지만, 잘 들어보면 포르투갈 발음으로 된 영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빨리 영어에 어떤 비슷한 어휘가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끌리마띡’이라고 하시면 ‘Climate'(기후)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어떤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다시 묻곤 한다.


아주머니는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뜨개질을 하여 만든 제품을 시장에 파는 일을 한다고 했다. 6년 전부터 시작했다는데, 유튜브로 배웠다고 했다. 유튜브를 켜서 일단 익히고, 잠시 stop을 누른 다음 돌아와서 배운 대로 뜨개질을 하고...그런 식으로 익히다보니 점점 실력이 늘었는데, 지금은 이 일을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자신의 여동생과 같이 하곤 했는데, 여동생은 중간에 그만두어 지금은 혼자서 하신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만든 겨울 목도리와 아기 모자 등을 보여주셨다. 따뜻하고 정감 있는 작품들이었다.


아주머니가 ‘생태학 공부’라는 용어를 말씀하셨을 때, 나는 젊은 시절 대학 전공이 생태학이라는가보다 했다. 아주머니와 나는 문장보다는 주로 ‘단어’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늦은 오후, 내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아주머니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 시간에 자신이 생태학 수업에 있었다는 얘기를 하셨다. “요즘 생태학을 공부하신다고요?” 그렇다고 했다. 아주 재밌다고. 기후가 왜 이렇게 바뀌는지, 기후 변화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수퍼마켓에서 우리가 물건을 살 때 그 이면의 과정은 어떤 건지, 어떻게 그것이 자연을 파괴하는 것인지 등등을 배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모든 게 ‘자연을 어떻게 유지’하는지를 배우기 위한 거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일종의 평생교육원에서 생태학 공부를 하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생태학 공부를 하시며 어떤 음식을 어떻게 사야 하고, 쓰레기를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생활에 적용하시는 듯했다.

이 이야기를 니콜에게 이야기해주었다. “유럽에선 이렇게 어르신들이 생태학 공부를 하는 게 흔하니?” “글쎄, 흔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분 대학에 가신 거니? 멋진 분이다.” “대학은 아닌 것 같아. 평생교육원이나 복지관에서 배우시는 것 같아.” 그러다 만학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니콜의 어머니는 30여 년간 베를린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셨다. 그러다 52세가 된 어느 날, 바다 근처로 이사를 가고 싶다고 했다. 니콜처럼 니콜의 어머니 역시 바다를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집을 팔고 독일 북부의 해안가에 있는 호텔을 샀다. 그러면서 그때까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호텔 경영을 갑자기 시작했다. 니콜의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셔서 지금의 아버지는 새아버지인데, 어머니는 사람 중심형이고, 아버지는 재무와 문서에 강한 분이라 서로 보완이 잘 된다고 니콜은 기뻐했다.


호텔 경영을 즐겁게 하고 계시지만 어머니는 오랫동안 대학 교육에 대한 염원이 있었다고 했다. 집안 사정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었던 어머니는 대학에 입학할 자격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30여 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했기 때문에 그 경력으로 이젠 입학 자격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어 한다고. “그런데 엄마가 통계나 수학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망설이고 계셔. 내가 그런 건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도와드리겠다고 하면서 응원하고 있어. 엄마가 꼭 대학을 가셨으면 좋겠어. 일단 학위를 따서 뭘 해볼 생각 말고 재미로 공부하기 위해 다녀보시라고 했어.” 하지만 니콜은 엄마에 대한 다른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10년쯤 후에 엄마가 호텔 경영을 그만두고 싶을 수도 있잖아. 엄마는 사회복지사 일을 아주 좋아하고 잘하셨거든. 아마 심리학을 공부해두면 그 일을 다시 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거야.” 예순이 넘은 어머니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이토록 마음을 쓰는 딸이라니!


엄마에 대한 니콜의 평가는 남달랐다. “우리 엄마는 정말 용감해. 쉰이 넘었어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면 뛰어들거든. 그때까지 했던 일을 그만두고 전혀 다른 일인데도 바다가 좋다고 바다 근처로 이사를 가고 거기서 호텔을 경영하잖아.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 그러니 아마 대학에 가서 공부도 할 수 있을 거야. 내가 계속 푸쉬하고 있어. 하하.”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는, 어쩐지 이 이야기로 인해 큰 격려를 받는 느낌이었다.

오후에 우리는 어제 만난 멤버들 모두 다시 만나 근처 해변에 갔다. 어제 폭우가 내린 이후로 햇살이 내리쬐었기 때문에 이 날씨를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력한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슬슬 거닐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밀려드는 파도를 한번 만져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차가운 바다에 다가가보기도 했다. 서서히 저물어가는 저녁노을을 감상하기도 하고, 누군가가 놓고 간 장난감 삽을 들고 모래를 퍼내기도 했다.


그레이엄은 하루 만에 희망 찬 소식을 들고 왔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유명한 출판사에 들러, 포르투갈 책들을 영어로 번역할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는 것이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지만 가능성이 보였다. 8월부터 지금까지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개인 공간 없이 가장 저렴한 호스텔에서 5인 도미토리에 묵고 있던 그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모두는 해변 카페에 모여 앉아 박수를 쳐주었다. 그러면서 “네가 할 일은 무궁무진하게 많을 거야. 얼마 전에 주제 사라마구 박물관에 갔는데 모든 게 포르투갈어로 되어 있어서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거든. 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갈 텐데, 언어를 이해할 수 없으면 힘들어. 네가 그 일을 해. 당장 연락해, 박물관에~”라며 니콜과 나는 그를 적극 격려해주었다. 한편 앤디는 예전에 멜론을 사고팔았던 경력을 이용해서 이곳에서도 멜론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니콜이 앤디에게 “너의 멜론을 보여줘”라고 하자, 앤디는 자기가 영국에서 팔았던 수박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내가 생각했던 멜론이 아니라 워터멜론이구나. 도우루 강가에서 5유로 정도에 수박을 팔면 어떨까, 앤디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제시해보았고, 그레이엄은 5유로는 여기선 좀 비싸다, 3.5유로 정도면 좋겠다, 하며 피드백을 해주었다. 앤디의 수박 사업이 성공하기를! 사실, 니콜과 니콜의 독일인 친구 델피는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동안 열심히 머리를 짜내더니,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들을 토대로 내가 이곳에서 할 만한 사업 아이디어도 제시해주었다. 그 아이디어를 듣고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 여행길에 만난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내 미래를 위해 이렇게 신경을 써준다는 데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이 나이가 되면 이 정도는 살아야 해, 저 나이가 되면 다른 변화는 시도할 수 없어, 공부를 이 정도나 했으면 이런 일은 할 수 없어, 공부를 안 했으면 저런 일은 할 수 없어, 이런 당위의 제한선들이 내 머릿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파도에 씻겨나가는 하루였다. 계속해서 새로워질 수 있어!


여섯 가지 생선들을 한꺼번에 먹을 수 있는 모둠 피쉬 요리를 먹으며, 생선뼈를 발라 먹는 법을 묻는 앤디에게 음식점 주인 아주머니가 가시 왼쪽부터 먹은 다음 오른쪽을 먹으라는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재미있고 뚱딴지 같은 긴긴 저녁 시간을 보냈다. 각자가 지닌 재능으로 할 수 있는 미래의 꿈을 상상하고, 현재를 헤쳐 나갈 힘을 서로에게 얻고 난 후,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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