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ete Nov 11. 2018

미래에 대한 자유

포르투, 내 인생의 붉은 혁명을 찾아서

“갓댐, 함부르크는 너무 잘 살아.”

독일 함부르크에서 산다는 50대 사진작가이자 엔지니어 남성이 말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독일인을 많이 만났다고 말했더니 그가 한 말이다. “지금, 독일이 아주 잘 살아서 그래. 그중에서 함부르크 사람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몰라. 갓댐. 함부르크는 너무 잘 살아.”


정말 갓댐이구나. 자기 나라가 ‘너무 잘 산다’는 말을 최근 누군가의 입에서 들어본 것은 처음이다.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독일인을 여행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건 사실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내가 말을 걸어본 독일인 여행자 4명은 모두 자신들의 오랜 리더였던 메르켈에게 불만이 없었다는 것이다. 메르켈이 2021년에 은퇴하겠다고 한 이유를, 어떤 사람은 기민당과 기조가 맞지 않아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독일인은 그저 어느 한 사람이 너무 오래 통치를 하면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싶어 해서라고 했다. 한 젊은 여성은 자신은 기민당을 좋아하진 않지만 메르켈은 좋아한다며, 그녀는 어떤 결정을 할 때 즉흥적이지 않고 신중하며, 모든 결정을 자신의 이익이 아닌 타인의 이익을 위해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대내적인 정책에 대해선 좀 엇갈리는 평이 있지만 대외적인 정책은 많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등 유럽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리더십 역할을 했다고 했다.


참 놀라웠다. 자신의 정치적 리더에 대한 큰 불만이 없고, 경제적 안정을 누리고 있으며, 노후의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큰 염려가 별로 없다니. 세세하게 들어가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할 독일인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독일인들이 이야기하는 건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너무나 거리가 멀어 이런 사회도 있구나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이런 이야기를 듣다가 최근 우리나라 한 주간지에 실린 청소년들의 자해 실태를 보았다. 그 기사는 한국 청소년들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정서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이 그 시기 성적이나 경쟁의 결과가 자기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고 여기고, 이를 자기 삶에 절대적인 영향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데, 사실 나도 청소년 때 그랬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초등학생 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시간이 되자 집에 돌아와 교과서를 읽었을까.

고등학교 때까지 오직 목표는 하나, 좋은 대학에 가는 것밖에 없었다. 그러니 청소년 시절은 지금 돌이켜보면 새까만 색깔이기만 하다. 추억이 거의 없다.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어떤 친구들을 좋아했는지, 어떤 시간을 가장 행복해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이다. 언제나, 이 시간을 견뎌 목표를 성취해내야만 한다는 스트레스와 경쟁심, 불안감과 우울감, 조급함밖에 없었다.


대입이라는 목표를 이루어내고 나자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었다. 그 우울감은 상당히 오랜 동안 지속되었고, ‘나는 누구일까?’와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져나갔다. 그 사이 여러 번 꽤 좋은 직장에 취직도 했으나, 청소년 시절에 겪었던 그 스트레스와 경쟁에 대한 공포가 에 내재되어 있어 직장생활도 오래 가지 못했다. 나는 높은 연봉에 치열한 경쟁과 정치를 해야 하는 직장에선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이 사회에 적응할 수 없을 정도의 심리적 취약성을 느꼈고, 그것 때문에 더욱 자학을 했다. 하지만 자학할수록 심리적으로 더 나약해지는 악순환은 되풀이되었다. 그나마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은 지나친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곳, 성과를 위한 채찍질이 덜한 곳, 성과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곳, 어느 정도 내가 자율적으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곳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환경과 사람들을 만났고, 나는 그런 곳에서 내가 가진 것을 펼칠 수 있는 경험을 했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신뢰와 안정감이었다. 그게 있으면 내 안에 있던, 나도 알지 못하는 어떤 것들이 자연스럽게 솟아나왔지만, 그것이 없으면 나는 매우 쉽게 억압되어 모든 것이 마비되곤 했다.


아마도 기질적으로 감수성이 무척 민감한 탓도 있겠지만, 지금 청소년들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자해를 할 정도의 사회적 분위기를 나도 겪었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기사에는 “옛날에는 공부가 싫으면 장사라도 하고 오히려 더 다양한 사회 진출 방안이 있었지만 지금은 미래를 더욱 협소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나와 있던데, 내가 청소년 시절에도 미래는 협소해 보이기만 했다. 모든 것이 경쟁적이었고, 성공에 대한 오직 하나의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루저가 되어 낭떠러지에서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심어준 환경과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런 사회를 만들어갔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서 그렇게 한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여행을 다니면서였다. 외국에 나가 살아보고픈 열망도 있었는데, 그것은 나와 전혀 다른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삶의 다양한 가능성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무작정 30대 중반에 유학을 떠났었다. 그때 유학생활을 하며 한 출판사에서 인턴십을 했었는데, 50대의 캐나다 여성이 세계적인 영국의 의학· 과학 분야의 출판사에서 마케팅 분야에 처음 입문했다며 이 모든 것을 새롭게 배울 수 있어 무척 기쁘다고 했던 것에 큰 문화 충격을 받았던 것이 기억난다. 우리나라는 40대면 은퇴를 준비하면서 다음 생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데, 마케팅에 경력도 없는 50대 여성, 그것도 외국인 여성이 취업을 하다니 크게 놀다. 아마도 그녀의 다른 어떤 경력이 그곳에 도움이 될 거라 여겨져 취업이 된 것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것이라 이런 것이 문화적 차이라고 느꼈다. 이후 그곳에서 여행을 다니며 사람들의 다양한 세계와 가치관을 보고 들었다.


미래에 대해 가장 자유로워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선진국에서 유명 기업에 취직해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미래에 대해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의문은 들지만, 그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은, 여행을 많이 하며 다양한 가능성들을 흡수하고 획일화된 자기 사회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었다. 한마디로 가치관이 유연한 사람들이 미래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이렇게 살면 어떤가, 저렇게 살면 어떤가, 내가 원하는 삶은 바로 이러이러한 삶인데,라는 생에 대한 뚜렷한 자기 관점이 있었다. 돈을 버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을 살기 위한 목표를 채우는 수단일 뿐이므로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돈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올 6월부터 지금까지 여행을 한 니콜은 이제 돈이 거의 다 떨어 12월이면 스위스나 네덜란드, 독일 등지에서 일자리를 구해볼 거라고 했다. 그리고 또 돈이 모아지면 다시 여행을 할 거라고 했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온 리조트 레스토랑 매니저 역시 비슷했다. 1년에 두 달 정도 무급휴가를 얻을 수 있는데, 옛날에는 자정쯤 퇴근을 하면 그때부터 사람들을 만나 새벽까지 술을 마시곤 했는데, 지금은 나이도 들어가니(그는 서른여덟이라 했다) 퇴근하면 집에서 쉬고 그 돈을 모아 이렇게 여행을 나온다고 했다. 여행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둔 스위스 여성 역시 여행할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자리를 구해볼 거라 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행복의 감각이 어디서 살아나는지 탐험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그 행복의 감각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20대에 자해를 하려고 시도를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 살이 뚫리는 육체적 고통이 자해를 할 만큼의 절박한 심정보다 더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자해를 하거나 죽고 싶을 정도가 될 바에는 다른 세계를 살펴보자는 정도의 삶의 감각은 나에게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자해의 시도는 나로선, 내가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나는 정말로 나다운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는가, 라는 가장 높은 열망의 반영이었다.


이제 나는 집에 돌아와 시차적응을 못하여 헤매면서 다음 여행지를 생각해보고 있다. 그리고 니콜이 나에게 건네준, 세계 각지의 팀을 운영하며 주제별 여행 가이드를 하는 웹사이트 링크를 살펴보고 있다. “너는 여행과 문학을 좋아하니 그것을 접목해보라”고 니콜은 조언하면서, 이곳에 내가 가이드를 할 수 있는 나만의 주제별 여행을 제안해보라 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아이디어인 것 같다.


좁은 미래를 염려하며 방 안에서 자해를 하느니, 어떻게든 방 밖으로 나가 머리를 환기시켜주고 가치관을 전환시킬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끊임없이 우리의 자존감을 아래로 떨어뜨리고 제대로 살 수 없을 거라고 속삭이는 강력한 무게의 힘에 짓눌리지 않고 짱돌을 던져볼 힘은, 좋은 사람들과의 연대,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겸손한 인식, 그리고 새로운 길과 세계가 있다는 믿음에서 나올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멜론을 보여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