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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Nov 12. 2018

자기를 가꾸는 도시,  자기를 가꾸는 삶

포르투, 내 인생의 붉은 혁명을 찾아서

줄기가 탄탄하고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 나는 그런 나무가 되고 싶었다. 내가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는 관계가 없다. 나라는 나무를 최대한 건강하고 아름답게 키워가고 싶었다. 그건 오랜 기간을 앓고 난 후에야 겨우 얻게 된 내 삶의 지향점이다.


줄기가 탄탄하고 잎사귀가 무성하려면 뿌리가 깊이, 넓게 드리워져야 한다. 뿌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은 바로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의 나 자신이다. 그 뿌리를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결국 타인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줄기와 잎사귀도 자연스레 아름답고 풍성해진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게스트하우스나 조금은 불편한 도미토리 호스텔에서 내가 신경을 쓴 것은 깔끔하게 내 자리를 정돈하는 것이었다. 늦게 일어나 한시바삐 볼거리를 찾아나서 보고 싶을 때에도, 사람들이 화장실이나 샤워실을 차지할 같아 마음이 급해질 때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급할 것 없어. 나의 자리를 내 마음에 들게 깨끗하게 정리하자.” 그렇게 이불을 정리하고, 세면을 하고 난 후 소지품들을 서랍이나 수납장에 잘 넣고 정리해두는 것부터 하루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시선보다 나 자신의 시선을 가장 의식하고 싶었다. 나가서 볼 화려한 볼거리보다 나의 사적인 공간을 먼저 마음 쓰고 싶었다. 그렇게 나 자신에게 깨어 있는 것이 일상이든 여행이든 내가 꼭 지키고 싶은 마지막 원칙이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다. 뭘 볼지, 머리와 가슴속에 뭘 채워 넣을지, 어딜 가야 할지, 뭘 먹어야 할지, 뭘 하고 놀지, 무슨 사진을 찍을지가 더 먼저였다. 머릿속엔 그런 것들로만 가득 차, 내 자리, 내 공간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아마도 그건 내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마음의 건강을 위해 일상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여행은 그런 일상의 연장이라 생각되었다. 그래서 여행 때에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졌다. 무엇을 보느냐가 대단히 중요치 않았다. 풍경과 내면이 마주쳐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만이 나 자신의 것이 되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음이 먼저 나갔고, 마음이 열려 있기 마련인 여행자들은 자연스레 웃음으로 화답했다. 말을 건네면 답이 왔고, 우리는 그렇게 길 위에서 대화를 해나갔다.

 

리스본과 포르투. 내가 이 도시를 새로 산 운동화가 닳도록 걸어 다니면서 발견한 것은, 스스로를 가꾸는 도시라는 점이었다. 바쁠 것이 없었다. 남의 기준대로 휘청이지도 않았다. 빨리 자신이 이뤄낸 무언가를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쏟아내고, 쏟아낸 만큼 얻어내려 들지도 않았다. 뿌리를 깊이 내린, 자기 자신을 지켜낼 줄 아는, 자존감이 있는 도시였다.


한 나라의 수도인데도 다국적 기업이 잠식하지 않은 나라, 유지 보수에 까다롭기 이를 데 없는 돌로 만든 보도블럭을 그대로 지켜내기로 한 나라, 유명한 관광지에서도 바가지가 없는 나라...  


나는 특히나 1837년에 세워진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이라는, 리스본에서 가장 유명한 나타 가게를 방문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곳은 바로 옆, 그 유명한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포르투갈 역사 전시에도 새겨진 역사적인 가게였다. 이 가게는 나타의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수녀원에서 수녀들은 희고 빳빳하게 유지해야 하는 캡과 옷에 풀을 먹이기 위해 달걀흰자를 사용했다. 그러니 제로니무스 수도원(수녀원도 있었다)처럼 규모가 큰 시설에선 얼마나 많은 달걀을 사용했을까! 캡과 옷에 달걀흰자를 다 사용하고선, 남은 노른자가 홍수를 이루게 되었다. 이 노른자를 처리하려고 수도사들이 개발한 과자가 나타인데, 제로니무스 수도원이 1834년 폐쇄되자, 이때 수도원에 나타 제조용 설탕을 보급하던 제당공장 주인이 나타의 제조법과 판매 권리를 어렵게 구입한 것이다. 그런 후 제당공장 주인은 1837년에 수도원 옆 제당공장 자리에 카페를 열었다. 그곳이 바로 이 가게, 파스테이스 드 벨렝인 것이다. 이 가게의 나타 레시피는 세 사람만이 아는데, 사고를 우려하여 이 세 사람이 모두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여행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세 사람은 가게에서 국보 대우를 받는다. 이곳은 하루 평균 1만 5천 개의 나타를 만들고 있다.

이 가게에서 30분을 줄 서서 앉은 테이블은, 혼자 앉아도 괜찮고 여럿이 앉아도 상관없다. 내부는 넓디 넓고, 혼자 오랜 자리를 차지하며 앉아서 더 많은 손님들의 기회비용을 앗아간다고 눈치 주지도 않는다. 커피 가격은 리스본과 포르투의 흔한 카페 가격과 같은 1.0에서 1.5유로 사이, 나타(에그타르트) 가격 역시 1.1유로였다. 와인 가격 역시 작은 병에 2.4유로. 다른 가게보다 더 저렴하기까지 했다. 방문객은 거의 모두 나타를 한 사람당 몇 개씩 먹으면서 나타 6개들이 세트를 테이크아웃으로 가져갈 정도로 그곳의 맛은 특별했다.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 가게였지만 무척 질서정연했고, 종업원들은 친절했다.

 

그곳이 자리한 벨렝 지구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임에도, 시끌벅적하고 요란한 노점상들이 없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와인이나 군밤, 생과일주스를 조용 판매할 뿐이었다.


관광지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관광계의 아이돌 리스본은, 만약 더 많은 관광객들이 밀려들고 빠르게 자본이 운용된다면 여타 다른 지역처럼 자본에 잡아먹히게 될까. 그들이 자신들의 뿌리를 알고 어떻게 지켜내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자기 가꿈은 상 도밍고스 성당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도밍고스 성당은 기적의 성당이라고도 불리고 비운의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그곳에 들어가면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을 들여다볼 수 있다. 곳곳의 기둥이 검게 그을린 그대로다. 이 성당은 1755년 대지진과 1959년 화재를 모두 견뎌냈다. 이 도시는, 이곳을 개조하거나 다시 칠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세월의 비극적인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무너지고 타버린 모습은 후대의 사람들에게 아픔뿐 아니라 버팀목도 되어주었다. 수백 년간 모진 풍파도 굳건히 견뎌준 덕에 존재만으로도 희망이 되어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그저 기능적인 건축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혼이 깃들어 있어 누군가에겐 기대고 싶은 어른처럼 깊은 마음의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리스본 사람들은 아는 듯했다. 하여, 어떤 곳이 화재로 손상되었거나 상흔이 있어도 쉽게 빨리 고치지 않는다.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어떻게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미칠지.


포르투 여행에서 우연히 건축가와 건축학과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대학의 사제지간이라 했다. 나는 그들에게 어느 갤러리에 대한 길을 물었다. 휴대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구글맵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굳이 걸어가겠다는데, 그들은 굳이 말렸다. 차를 타고 가면 쉽게 갈 길을, 걸어서 가겠다는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도 여행의 일부라고 말했다. 사실, 내가 거기 도착하는 것이 목표만은 아닌, 걸으면서 도시 곳곳을 느끼고 감각하는 것도 내 여행의 일부였다. 그러나 포르투에 온 외국인 손님을 그냥 두고 가기가 민망했던지, 그들은 차로 태워주겠다고 했다. 그들의 차를 타고 갤러리를 가다가 운전자인 건축가에게 물었다. “큰 질문이긴 하지만, 당신은 건축에서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나요?” 나는 그가 잠시라도 생각을 한 후 답할 줄 알았다. 1초도 안 되어 그는 부드럽고도 확신 있는 어조로 말했다. “사람이요.”


어찌 보면 당연한 답인 것 같고, 어찌 보면 놀라운 답이기도 했다. 그 사람이 설마 “돈이요”라고 하진 않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무언가, ‘조화’, ‘생명’ 같은 어느 정도 추상적인 답이 나오리라 기대했다. 나는 포르투와 리스본의 현대 건축물들이 모두 역사적인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어 자본의 냄새가 나지 않고 도드라지지 않으면서도 세련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포르투갈인 특유의 온유하고 편안한 숨결을 건축물에서 호흡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답은 오직 ‘사람’이었다.

한 도시의 분위기, 아우라, 숨결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그것을 반영할 것이다. 어떤 정신을 가지고 그런 건축물을 지었는지, 어떤 생각으로 바닥을 콘크리트로 바꾸지 않고 까다로운 돌바닥을 유지하기로 했는지, 어떤 이유로 몇 개 되지도 않는 스타벅스엔 그나마 포르투갈인이 별로 없는지, 어떤 연유로 관광지에 바가지 가격이 없는지.


그들은 가꾸고 있구나! 남에게 보이는 줄기와 잎사귀가 아닌, 자기 자신만이 아는 뿌리를! 그것이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서 내가 가장 큰 감동을 받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나는 느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며 결과가 잘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 자신에게 깨어 있는, 뿌리를 가꾸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다. 몇 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다시 포르투갈을 방문하더라도, 포르투갈과 나 둘 다 뿌리를 잘 가꾸는 삶을 계속 살고 있음을 서로 감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본에, 눈에 보이는 것에, 타인의 시선에 휘청이지 않고, 뿌리를 깊이 내려 자기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자기 자신의 리듬으로 춤을 추고 있는 그런 나라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나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여행기는 이제 나 자신의 공간에서 천천히 맺음을 해나갈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가 벗들과 동료들과 사랑하고 일하며 읽고 쓰는 삶을 맘껏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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