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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Jan 12. 2021

작고 약하다고 죽이나요?

Charlotte's Web 읽기 I


우리집 근처에는 30년 된 중고서점이 있다. 아니, 30년도 더 되었을지도 모른다.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이 중고서점은, 많은 대형서점들이 중고서점까지 열어 서점가를 잠식한 상황에서도 기어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이 서점 유리창에 붙은 문구 하나로 눈치 챌 수 있으리라. “구경· 조사· 메모- 자유롭게 해 가도 됩니다.” “길 물어보는 집! 예식장 찾으세요? 저한테 물어보세요.”


주인아저씨는 그야말로 중고서점을 오래 하신 분처럼 보인다. 수수한 옷차림에, 말도 별로 없으시다. 책을 이리 저리 둘러보며 한참 고르고 나서, 선택한 것들을 갖고 가면 넉넉한 웃음을 지어 보이시며 ‘이거 하시겠어요?’라고 말을 건네신다. 그러곤 까만 봉투에 넣어주신다. 때론 그 전날도 그 다음날에도 왔다는 이유로, 6천원에서 천원을 빼주기도 한다.


몇 달 전, 책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고선 세 번에 걸쳐 그곳에 팔았는데 30만원 정도가 나왔다. 나는 걱정하며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잘 안 팔릴 책 너무 많이 판 거 아닐까? 장사 잘되어야 할 텐데....코로나에 괜찮을까?” 엄마는 “너보다 훨씬 많이 버실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단칼에 대화를 마무리하셨다.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그 서점은, 서가를 구경하느라 한참이나 서성이는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책을 몇 권 사들고 흡족한 기분으로 서점을 나섰다.


나는 어린이/청소년 영어소설을 주로 사는 편인데 예닐곱 권을 사도 만원이 안 되기 때문에 자주 가서 어떤 소설이 나와 있나 살펴보며 수집해나간다. 그곳에서 구입한 책 중 하나가 Charlotte's Web인데 몇 권이나 같은 책들이 나와 있어 베스트셀러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이 책은 내가 진행하는 영어소설 읽기 수업에서 초등학생, 중학생, 그리고 내 또래 여성 수강생들과 같이 다양한 연령대와 함께 읽었다. 한데, 반응은 내 또래 여성 수강생들에게서 가장 좋았기 때문에 이 책은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책이라는 걸 알았다. 나 역시 몇 번을 읽으면서, 점점 더 이 책이 좋아지고 여러 방면으로 생각하게 되고, 심지어 거미와 돼지를 친구처럼 여기게 되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엔 깊은 사랑과 우정에 대한 감동과 시적 이미지의 아름다움으로 인한 환희를 느끼기도 했다. 이 연재에서는 익혀두면 좋은 표현들과 함께 생각해볼 내용들을 나누어볼 것이다. 이 책은 영어 초급 레벨에서 intermediate으로 넘어가는 레벨의 사람들이 읽으면 훌륭한 문장(문법)과 단어, 감동적인 내용까지 일석삼조로 얻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Charlotte's Web은 아침 일찍 일어난 소녀 Fern이 아빠가 도끼를 들고 나가시는 모습을 보고는, 엄마에게 이유를 묻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엄마는 아침상을 차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답한다. 어젯밤 태어난 새끼돼지들 중 제일 작고 약한 돼지를 죽이러 가는 거라고. 너무 작고 약해서 제구실을 못할 거기 때문에. (한배에서 태어난 새끼들 중 유난히 작고 약한 새끼를 runt라고 한다. 아빠는 runt를 죽이러 가는 것이었다.) Fern은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간다. “You mean kill it? Just because it's smaller than others?" 축축한 풀밭을 달리느라 운동화가 흠뻑 젖은 것도 개의치 않고 Fern은 아빠를 붙잡는다. 그녀가 아빠에게 하는 말은 단도직입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다. "It's unfair! The pig couldn't help being born small, could it? If I had been very small at birth, would you have killed me?" 돼지를 키우는 데 이골이 난 아빠에게 Fern은 상당히 철학적인 질문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작고 약하면 팔 수도 없고 키워도 소용이 없기 때문에 죽이는 게 당연했던 가축업자 아빠에게 Fern은 인문학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돼지가 작게 태어나고 싶어서 작게 태어났나요? 내가 작게 태어났다면 아빤 나도 죽였을 건가요?“ 작고 약한 것을 죽이는 것은 바로 ‘정의’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어린 Fern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가정법 과거완료에 대한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 가정법은 영어의 영혼이라고까지 말했던데, 가정법은 불시에 들이닥치는, 영어로 된 매체이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법이자 우리에겐 없는 문법이기 때문에 상세한 설명이 필요했다.(여기선 생략) 아빠는 “A little girl is one thing, a little runty pig is another"이라는 말로 이 둘은 다른 문제라고 설명하지만 아빠는 “unfair"를 외치는 Fern을 설득할 수가 없다. ”사람은 작고 약해도 죽이지 않지만, 동물은 작고 약하면 죽인다“는 논리를 맑은 영혼의 소유자 Fern에게 설득시키기에는 아빠는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 없는 일반적인 가축업자다.


당최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어린 딸에게, 체념 반 오기 반으로 아빠는 그 새끼돼지를 가져와 Fern에게 키워보게 한다. Fern은 인형처럼 작고 예쁜 새끼돼지에게 푹 빠지고 우유병으로 우유를 먹이면서 엄마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다. Wilbur라고. 그 새벽, 도끼로 죽임을 당할 뻔한 새끼돼지는, ‘작고 약하다고 죽이면 불공평한 것이다’라고 외치는 작은 소녀 Fern 덕분에 목숨을 건졌고, 수많은 돼지 중 하나가 아닌 ‘바로 그’ 돼지, Wilbur가 된다. 이름이 붙여진다는 것은 고유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윌버는 그렇게 Fern에게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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