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공부, 반드시 동기가 있어야 하고 치열하게 해야만 할까요?
10년 전에 선생님의 강의를 접하게 되었고 외국 생활에서 큰 도움을 얻어 지금은 회화 문법 작문에 중급 수준을 가지고 있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입니다. 20대에는 해외 경험을 살려 영어 선생님으로 많이 활동을 하였으나 현실적으로 맞지 않다는 판단에 지금은 한 중견회사에 다니는 처지에 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은 영어를 하는 자체를 너무 좋아합니다.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도 좋아하고 영어 공부를 너무 좋아하는데 왜 지금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드는 생각에는 토익과 같은 영어 시험에 도전해서 고득점을 얻고 영어를 전문으로 종사하는 직업을 갖는 것이 내가 갖고 있는 희미한(?) 꿈에 가까운 게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사실 뚜렷한 꿈은 없습니다. 그게 문제인 거 같습니다. 많은 고민도 해보지만 이렇다 할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영어는 계속해서 하고 싶은데 그냥 현실에 만족하고 상관없는 직업에 종사를 해야 할지 아니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어를 계속 공부하고 노력하여 영어 전문 직업에 종사할지 그리고 그 이상의 기회를 얻을지 여기에 대해서 선생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냥 언어 자체를 좋아하고, 배우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그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뭔가를 영어를 통해 이루고 싶으신 것 같아요. 좀 더 치열하게 공부하고 싶고, 그러자니 그만한 노력과 시간에 대한 보상(?)을 전혀 기대하지 않기는 어렵죠.
목표를 먼저 세우고 영어를 공부하는 분들도 있지만, 영어를 공부하다 보니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경우에도 대단한 목표가 먼저 있지 않았었습니다. 영국에서 스무 살 남짓의 저는 정말 아주 사소한(?) 이유로 TESOL 과정을 등록했었어요. 이거 하나 따 가면 한국에서 일단 과외 같은 거라도 하긴 좋겠다... 였죠. 그렇게 TESOL 자격증 따고 국내에 들어와 틈틈이 다양한 강의 활동을 하면서도 영어 교육을 제 평생의 업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그 이후로도 좀 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를 반드시 잡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작게, 단계별로 목표를 잡아 놓고 그 과정에서 계속 새롭게 방향 모색을 해 보시는 것도 방법일 수 있습니다. 인생이란 게 꼭 처음의 목표와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 면도 있거든요.
영어 전문 직업이라고 하셨는데, 그것도 정말 범위가 넓습니다. 영어 강의만으로 범위를 좁혀도, 대학에서 교수가 될 수도 있고, 학원가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으며, 인터넷이나 방송이 무대가 될 수도 있죠. 뭐 저처럼 세 가지를 다 오가실 수도 있고요. 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할 수도 있고, 성인을 대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입시 강의를 하실 수도 있고, TOEIC과 같은 공인 영어 시험 강의를 하실 수도 있으며, 회화나 비즈니스 영어를 전문으로 하실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영어 전문 직업이란 방향을 설정하셔도 다가가는 과정에서 세부적으로 굉장히 많은 갈림길들을 만나실 거예요.
직장 생활을 계속하시더라도 영어가 그 안에서의 새로운 방향 전환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단순 사무직이신 분이 영어를 꾸준히 공부해서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해외 파견된 경우도 있고요, 무역이나 기타 국제 업무 쪽으로 업종(?) 전환이 되신 분도 있거든요.
영어를 좋아하신다고 했는데, 그것이 언어 자체에 대한 탐구 쪽인지, 외국인과 소통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쪽인지 등등에 따라서도 밟아 나가고자 하는 과정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언어학 쪽으로 공부를 넓히실 수도 있고, Speaking이나 Writing 이냐에 따라 국제적인 대인 관련 업무 전문이 되시거나, 번역 전문가가 되실 수도 있지요.
제 학생들 중에는 그저 영어 자체가 좋으신 분도 있고, 영어를 수단으로 하여 꿈꾸는 목표를 이루고자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명분도 명분이지만 그 자체를 즐기는 데에 의의를 둘 수도 있고, 오로지 영어를 어떤 과정의 하나로만 바라볼 수도 있지요.
어느 쪽만이 옳거나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어떻게 영어를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싶은가가 기준이죠. 일단은 뭐라도 너무너무 공부하고 싶은데, 혹시 어떤 '명분'이 없으면 가족들에게 commitment 에 대한 설득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으신가요? 의외로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소한 데에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많은 기혼 여성분들이 이후 자녀 교육을 위해 영어 공부를 하십니다. TESOL 과정에 젊은 엄마들이 정말 많으세요. 커리어에 있어서의 업그레이드, 승진이나 급여 향상 등을 위해서 영어에 매진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이러한 학습 동기 중에 님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타당해 보이는 것을 결정의 기준으로 삼아 보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설득을 위한 이런 동기들 그 어느 것도 끌리지 않는다면 영어 공부에 대한 마음을 살짝 내려놓는 것이 결론이 될 수도 있겠고요.
꼭 치열하게 공부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등반가가 모든 산에 다 오르는 것은 아니듯이, 님께서 정말 도전하시면 정말 높은 경지에 오르실 수 있을 거라 믿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산 중턱 즈음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내려오는 것도 산을 즐기는 방법 중의 하나거든요.
네이버 <박상효의 영어카페>에 올라온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브런치에도 소개합니다. 원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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