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恨)은 슬픔이 아니라, 오래된 기다림이니까.

용이 되고 싶었던 이무기

by 헬로 보이저


방송을 보다가
양평의 두물머리가 나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아침 일찍 가면
물안개가 피어난다 했다.

다음 날,
나는 가만히 집을 나섰다.

날씨는 흐렸고,
비가 올 듯 말 듯,
공기는 의외로 단정했다.

가는 길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얹혀 있었다.

마음속 어딘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조용한 이름 하나를
떠올리게 하는 그런 날이었다.

‘DUMULMEORI’
라고 적힌 조형물 너머,
남한강과 북한강이
서로를 감싸듯 만났다.

연잎은 고요했고,
깃발은 바람에 흔들렸으며,
백로는 연밭 사이를
무심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이따금,
강물은 기억처럼 일렁였고,
그 위로 내 마음이 겹쳐졌다.

그 길 끝,
한 팻말 앞에서 멈췄다.

“용이 되고 싶었던 이무기.”
“하늘과 가장 가까운 물길을 따라 올라갔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다.”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세 번쯤 되뇌었다.

마치
이무기의 이야기 속에
내 지난 시간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도 그랬다.
간절했고,
기다렸고,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았던 그 순간—
결국 닿지 못했던 날들.

조금 더 걸어가니
비석 하나가 말을 건넸다.

두물머리는 정약용 선생이 양수리라 이름 붙인 고을로,
양수가 만나는 물머리라 하여 ‘두물머리’라 불렸다.

남한강과 북한강,
북쪽의 금강산과 남쪽의 백두대간.
모든 지맥과 수맥이 만나는 지점.

그 만남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알 것 같았다.

왜 이곳이
늘 사람들을 부르는지.

왜 오래된 이별과
끝내 이룰 수 없었던 꿈들이
이곳에 남겨지는지.

핫도그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같은 흐린 날이
진짜 두물머리예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름 냄새와
따뜻한 손길이 섞인 그 한 마디가
마음속 깊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날,
이루지 못한 꿈 하나를
두물머리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없이 걸어 나왔다.

이무기였던 나도,
이제는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듯한 하루였다.

이 글은 곧,
“한국의 ‘한’을 한 장의 풍경으로 풀어낸 기록”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저 보고만 있어도
울컥해지는 곳.

그게 두물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