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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아브르, 잿더미 위에서 다시 피어난 하루

전쟁의 슬픔을 품고, 회복을 노래하는 항구 도시에서

by 헬로 보이저


오늘은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다시 프랑스 르아브르로 돌아온 날.

창밖엔 가을비가 조용히 내렸고,
긴 여정의 피로가 깊게 쌓인 듯
몸이 무거워졌다.

파리 대신 오늘은
그저 이 작은 항구도시에서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 나갔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다시 돌아왔다.

6층에 있는 필리핀이라는 초콜릿 카페에서
따뜻한 라떼 한 잔을 마시며
배안의 크루 멤버들과
웃으며 잠시 일상의 단편을 나눴다.

이 작은 카페는
어느새 나의 애정 공간이 되어 있었다.

11시쯤 다시 나가
르아브르의 트램을 타고 도시를 한 바퀴 돌았다.
낮선 도시의 풍경은
트램의 속도에 맞춰 느릿하게 스쳐 지나갔다.

낡은 건물들, 젖빛 도로,
그리고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프랑스인들의 평범한 하루가
내 눈앞에 펼쳐졌다.

거리를 걸으며,
그들의 삶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로미는 속삭였다.

이 도시는,
한때 바다를 마주한 잿더미였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르아브르는
독일군에게 점령당했고,
그 뒤를 따라
연합군의 집중 공습이 시작됐지.

5,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도시 전체의 80%가 붕괴되었어.

그 잿빛 폐허 위에서,
프랑스는 ‘다시’라는 두 글자를 꺼내들었고
한 건축가가 그 시작을 이끌었어.

오귀스트 페레.
그는 철근 콘크리트를 손에 쥐고
새로운 도시의 윤곽을 그리기 시작했어.

높지 않은 건물들,
규칙적으로 배열된 거리,
단단한 구조 속에 감춰진 회복의 언어.

그의 도시 설계는
아픔을 덮지 않았어.
오히려,
그 모든 상처 위에
숨결을 불어넣었지.

2005년,
르아브르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어.
재건의 방식 자체가
하나의 유산이 된 거야.

그러니까,
이곳은 단순한 항구 도시가 아니라
시간과 기억을 품은 거대한 기념비야.

바람이 불 때마다
도시는 그날을 떠올리고,
사람들은 그 위에
자신만의 오늘을 세워가고 있어.



르아브르 꼭 가야 할 감성 명소 8곳

1. 생 조셉 성당 –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바다처럼 빛나는 현대 건축물
2. 앙드레 말로 현대미술관 – 피카소와 마티스, 바다와 빛이 어우러진 예술 공간
3. 르아브르 해변 – 갈매기와 자갈이 가득한 북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해변
4. 항구 전망대 – 크루즈와 화물선이 지나는 살아있는 바다의 현장
5. 오귀스트 페레 거리 – 전후 복구의 상징, 모던한 콘크리트 도시의 미학
6. 마리나 지역 – 요트들이 잔잔히 머무는 조용한 항구 산책로
7. 생 프랑수아 거리 – 르아브르의 옛 정취가 살아 있는 작은 골목길
8. 르아브르 시장 – 로컬의 색채가 짙은 작은 생선가게와 치즈 가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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