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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란다

이혼한 지 12년 만에 다시 마주한 가족의 밥상

by 헬로 보이저


이혼한 지 12년째 되던 어느 날,
문득 시어머님이 보고 싶었다.
망설이다가 발걸음이 그 집 앞으로 향했다.

“어머니, 집에 가도 될까요?”
“그럼, 어서 와라.”

문을 열자 따뜻한 밥 냄새가 스며들었다.
시어머님은 아무 말 없이 나를 안아주셨다.
“어디 아팠니?”
그 한마디에 목이 메었다.

식탁 위엔 어머님표 반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오랜만에 함께 저녁을 먹었다.

차를 마시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클레어를 늘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했어요.”

아버님은 내 손을 꼭 잡으며 조용히 미소를 지으면서 말씀하셨다.
“너는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란다.”

그 말이 마음속에 오래 머물렀다.
이혼이 관계를 끝낸 줄 알았는데,
그 한마디가 나를 다시 가족 안으로 이끌었다.

몇 달 뒤, 클레어 아빠가 좋은 분과 재혼했다.
나는 그걸 내 마음 안에 작은 평화를 남긴 일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 몇 해가 흘렀다.
그리고 며칠 전,
아버님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시간 되면, 밥 한 끼 하자꾸나.”

짧은 문장이었지만,
오래된 인연이 다시 불빛을 켜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답장을 보냈다.
“네, 아버님. 금요일에 뵐게요.”

금요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설렜다.
누군가를 만나는 길이라기보다
가족의 온기를 다시 찾아가는 여정 같았다.

지하철역에서 마주한 아버님은
예전보다 조금 더 작아 보였다.
그럼에도 눈빛은 여전히 따뜻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서로를 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다.”
그 말에 마음이 조용히 흔들렸다.

점심은 쌀국수였다.
따뜻한 국물처럼 대화도 부드럽게 이어졌다.
커피숍으로 옮겨 앉아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었다.

계산을 하려 하자, 아버님이 손을 막으셨다.
“오늘은 내가 해.”

그 한마디가 왠지 모르게 눈시울을 적셨다.

세 시간이 흘렀다.
돌아오는 길, 다시 지하철 좌석에 앉았다.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조금 피곤했지만 묘하게 평온해 보였다.

다들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사이,
나만 아직 어딘가를 헤매는 듯한 기분이 스쳤다.
그래도 마음 한쪽은 이상하게 따뜻했다.
아버님과 마주 앉아 먹던 쌀국수의 온기처럼.

인연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모양을 바꿔 조용히 곁에 남을 뿐이다.
시간이 흘러도,
밥 냄새처럼 스며드는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오늘도
나를 다시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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