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단수의 밤
어제 오후, 단수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괜히 발걸음이 빨라졌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수도를 틀어보았지만
철컥
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밤이 깊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나는 조용히 깨달았다.
“아, 이 일이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구나.”
나는 여행을 오래 다녔다.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있다.
도시는 멈출 수 있고,
국경은 닫힐 수 있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편의는
어떤 날엔 아주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파주에 정착하고부터
나는 조용히 ‘비상식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이곳에서는 작은 일 하나에도
삶이 금방 불편해질 수 있다는 걸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파주는 북쪽과 가장 가까운 도시다.
나는 두 주 정도 버틸 만큼의 식량을 마련해 두었다.
라면과 통조림과
실제로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들
즉석밥, 견과류, 간단한 국물, 작은 연료들,
그리고 생수.
누군가는 과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 이건 불안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제 단수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그 준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마을 전체가 조용히 겪는 정전 같은 사건.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나는 500ml짜리 생수 26개가 들어 있는 박스를
차분히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생수 한 박스겠지만
내게는 이렇게 들렸다.
“괜찮아, 줄리. 오늘도 버틸 수 있어.”
단수된 첫날은 어쩐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틀째가 되니
언제까지 갈까 좀 걱정이 됐다.
샤워도 못 하고,
밥도 제대로 해 먹을 수 없고,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마다
‘물이 없어도 가능한가’를 먼저 계산해야 했다.
도시는 여전히 평온해 보였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보이지 않는 ‘비상 모드’ 위에 서 있었다.
나는 작은 가방 하나를 챙기고
찜질방으로 갈 준비를 했다.
깨끗한 물이 마음껏 흐르는 곳,
따뜻한 공기 속에서
몸을 씻고 마음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
비상사태라고 해서
모든 걸 다 버티고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잠시 피하는 지혜’가
나를 지켜주는 힘이 되니까.
언젠가 누군가가
비슷한 일을 겪고 불안해질 때
이 글이 아주 작은 위로가 되면 좋겠다.
오늘의 파주는,
조용한 비상사태 이틀째.
그리고 나는,
물 한 그릇의 소중함을 다시 배우며
따뜻한 찜질방으로 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