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자리에서 보인 것들
빅 알마티 호수
침블락
Kazakhstan, Almaty
아침 공기가 예상보다 훨씬 차가웠다.
참블락과 알마티 호수.
지도에서는 가까워 보였지만
둘 다 해발 4,000미터 근처였다.
그날의 온도는 영하 3도.
조금만 더 올라가면
더 추워질 것이 분명했다.
잠깐 멈춰 생각했다.
여행의 초반이었다.
여기서 무리하면
감기 하나로
전체 일정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번 여행은
짧은 여행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은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길게 가야 하는 여행에서는
무조건 앞으로 가는 것보다
가끔은
뒤로 물러설 줄 아는 선택이 필요하다.
방향을 바꿨다.
멀리 대신
가까운 것을 보기로 했다.
공원 안쪽으로 들어가자
시선이 멈췄다.
파밀로프 공원,
정확히는 28인의 근위병을 기리는 공원.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의 순간이
굳어 있는 조형물.
앞으로 뛰어나가는 자세로
팔을 벌리고 있는 병사들.
그 얼굴들은
누군가를 향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딘가를 지키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밑에는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물러설 곳은 없다. 뒤에는 모스크바가 있다.”
순간
이 도시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카자흐스탄이지만
그 안에는
러시아의 시간이 겹쳐 있었다.
이곳은 한때
소련의 일부였던 나라.
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이렇게
조형물과 거리, 그리고 사람들의 방식 안에
조용히 남아 있었다.
그 앞에 잠깐 서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보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멈췄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러시아와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그동안 지나왔던 도시들은
대부분 서방의 풍경이었다.
익숙한 거리와 익숙한 방식.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처음으로
소련의 시간 안으로 들어온 느낌.
그래서였을까.
러시아라는 존재가
멀리 있는 나라가 아니라
이 도시 안에 남아 있는
하나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공원을 조금 더 걸어가자
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무로 지어진 성당.
젠코브 성당이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밝고 가벼워 보였지만
가까이 갈수록
오래 버텨온 건물처럼 느껴졌다.
이 성당은 1907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거대한 구조물은
못 하나 없이 만들어졌다.
지진이 잦은 이 지역에서
흔들림을 견디기 위해
나무를 맞물리는 방식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단단하다기보다
유연하게 버텨온 느낌이 있었다.
이곳은
당시 러시아 정교회의 중심이었던 공간.
시간이 흐르고
도시는 카자흐스탄이 되었지만
이 건물은 여전히
그때의 시간을 품은 채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공기가 달라졌다.
조용했고
누군가의 기도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잠깐 서 있다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다시 닿았다.
그날
참블락과 알마티 호수에는 가지 못했다.
하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아도
이 도시는
이미 충분히 깊은 시간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천천히
걸음을 멈춘 사람에게 먼저 다가왔다.
젠코브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