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 Nov 30. 2021

형제에게 필요한 건, 로봇보다 인형

두두두두 푸쉬, 부풀린 볼에 바람을 가득 넣고 침을 튀긴다. 손가락 총에도 표정은 전사. 놀이터에서 만난 또래 남자아이들과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장난감 가게에 들어서면 멈춰서는 곳은 번쩍번쩍 로봇 앞. 와 하는 탄성에 눈빛은 로봇보다 더 반짝인다. 합체라도 되는 로봇 하나를 사면 또 하나가 더 필요하다. 놀다가 로봇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일도 다반사.


대부분 그 옆에 멀뚱하니 서 있게 되는 나는 어쩐지 쉽게 끼어들 수가 없다. 미니 특공대 로봇 정도면 그래도 양호한데, 중국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한창 인기인 '울트라맨'에 열광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일본 원작 울트라맨이 요즘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옛날 느낌 폴폴 나는 올드한 느낌에 기괴한 괴물 캐릭터들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You win!' 그럼 두 손 두 발 다 든 엄마루저?


나보다 먼저 아들 셋을 키운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애들 셋이 노는데 뭐하나 궁금해서 가보면 나보고 저리 가래.

셋이 게임하고 있을 때 가보면 나보고 저리 가래.


저리 가라면 엄마는 그냥 가야 하는 거야?

쿨하게 그냥 뒤돌아서 가야 해? 아니면 나 몰래 뭣들 하고 있나 하나라도 더 보려고 뒷걸음질 쳐야 해?

하하 웃다가 문득, 우리 애들도...? 나는 그 꼴 못 보겠는데?


친구의 얘기를 듣고 속으로 생각했다. 쿨하지 못하게 시대를 역행하고 말았다. 이제 첫째는 막 초등학생 1학년, 아니 한국으로 치면 아직 초등학교 입학도 하지 않은 나이인데, 아직도 '울 아기'라는 말이 나오는데, 로봇이나 총 장난감 앞에서 함께 멀뚱 거리며 서 있을 때면 체라도 한 듯 속이 더부룩해졌다. 다른 쪽 벽면에 가득한 바비 인형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렸을 때 가질 수 있었던 건 잘 빠진 바비가 아니라 쥬쥬였는데 그걸 가지고 목욕도 하고 옷도 만들어 입히며 하루 종일 놀았다. 동생과 나 각각 딱 한 명?씩만 허락되었던 쥬쥬. 그녀에게 얽힌 추억이 어찌나 많은지, 단발 쥬쥬, 대머리 쥬쥬.. 그리고 또, 보따리 풀고 싶은 이야기들이 산더미인데, 이걸로는 잘 놀아줄 자신 있는데, 그대들은 먼 곳만 보고 있네요. 그랬다.


드러나게 공격적이지는 않지만 두 아들들은 경쟁심과 승부욕이 강하다. 일부분 남자아이의 천성이기도 하고, 또 터울이 짧은 두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놔둬도, 친구 한 명만 더 있어도,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해도, 금세 드러나곤 했다. 물론 성별이 아니라 성향에 따라서도 달라지겠지만, 일찍이 영리하게 머리를 굴릴 줄 아는 여자아이들은 주먹다짐보다는 명확한 상황 판단 하에 '내 편'을 선택하는 것 같았다.



하, 그날도 쉽지 않았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꽁냥 꽁냥 잘 놀고 있던 아이들 쪽에서 둘째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으앙~ 사소한 싸움은 개입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엔 울음소리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대충 손을 닦고 가보니, 둘째가 울먹이며 말한다. "형아가 나 때렸어 으아~"

자초지종을 들어야겠지. 서로의 사정을 들어 보고, 잘못한 사람은 사과한다. 심할 땐 5분간 서 있는 벌을 선다. 다툼이 있을 땐 항상 같은 패턴이라 그날도 그렇게 하고 나는 남은 저녁 준비를 하러 주방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날은 그러고 나서 첫째가 또 둘째를 밀친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사과로 끝냈지만 두 번째는 봐줄 수 없었다. (뭐든지 말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 살짝이라도 밀치거나 때리는 건 단 한 번이라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우리 집 나름의 몇 안 되는 엄격한 규칙이다.) 더군다나 그날은 주방에서도 혼자 지지고 볶고 정신이 없는데, 아이들도 끊임없이 지지고 볶으니 나도 뚜껑이 열렸다.

첫째에게 말했다. "안 되겠다. 경찰서 가자. 엄마 말 안 들으니 가서 경찰 아저씨한테 말해야겠다."

평소와 다른 엄마의 말에 두 아이들이 어리둥절해졌다.

"뭐해 지금, 어서 옷 입어." 그 말에 어리둥절한 얼굴은 조금 사색이 되고 말았다.

그때 형의 표정을 본 둘째가 울면서 두 팔을 벌려 내 앞을 가로막았다. 형의 반응을 보고 이건 엄마의 헛소리가 아닌 실화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안 돼, 안 돼, 형아 못 가! 형아는 내 거 형아니까!"

그 말을 들은 첫째의 얼굴은 한순간 스르륵 무너져 내렸고 작은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나도 눈물이 터져 나와 둘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 후로도 한참 '형아는 내 거 형아'라는 말이 계속 마음에 맴돌았다.


그렇게 싸워도 나에게는 마음이 있고, 너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걸 알면 되었다. 나에게는 네가 소중하다는 걸 서로가 잘 알고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 어떤 순간에는 서로를 위해 용기 있게 맞설 줄 안다면 정말 그것만으로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그날 뚜껑이 열려버렸던 부족한 엄마는 천사들에게 배우며 그렇게 생각했다.


경쟁심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이고, 긍정적으로 발현되었을 때의 장점도 아주 많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랑은 어떤가? 마음은 어떤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게 되는 일은 생각보다 꽤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다. 나의 경우엔 마음을 먼저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 또한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오래도록 너의 마음보다 나의 마음만을 들여다봤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서로의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어야 가능한 일이다. 중요한 건 토양이 없으면 씨앗을 심지 못한다. 너에게도 나와 같은 마음의 토양이 있을 거라 생각해야, 너의 마음에 작은 사랑의 씨앗을 심을 수 있게 된다. 이기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존의 본능으로 습득해 나가지만, 마음에 씨앗을 심는 법은 어른인 우리가 먼저 알려줘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을 주는 방법으로.


그리고 그건 비단 사람과 사람 관계에서 뿐만은 아니다. 매일 무심코 지나치는 자연에서도, 말 못 하는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다. 쓸모가 있다면 마구 베어버려도 되는 나무보다는 아낌없이 주는 착한 나무로, 꼬리 치며 달려오는 강아지를 신기한 장난감이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하나의 소중한 생명으로 여길 수 있게 되는 일은 '마음'과 무관하지 않다. 묵묵히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도 마음이 아플 수 있다고 여기는 '마음', 비 내리는 땅에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가 열심히 제 집을 찾아가는 모양이라며 안쓰러워하는 '마음'. 그 마음이 있어서 사람은 아름다울 수 있고, 그 마음의 가치는 삶보다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간혹 그와 반대로, 마음은 소홀히 한 채 이기는 법을 부추긴다. 아이의 성과에는 그토록 연연하면서, 아이가 땅에 기어가는 개미를 마구 밟고 씩 웃을 때 같이 손뼉 치고 웃는 엄마를 보면 솔직히 어이 상실을 넘어 소름이 끼친다. 수많은 동화책에서 동물과 곤충과 자연을 의인화하는 게 단순히 재미와 창의력 때문만은 아닐 이니 말이다.


어젯밤도 두 아이들은 로봇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침을 튀기며 놀다가 인형들을 가득 안고 잠이 들었다. 지금은 당연히 학교에까지 인형을 가져가진 않지만 첫째는 5살 정도까지 인형에 심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유치원뿐 아니라 어딜 가든 토끼 인형을 가지고 다녀야 했다. 5살인 둘째는 형아보다 심하진 않지만 아직도 유치원에 작은 돌고래 인형을 가지고 다닌다. 그렇다 보니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할 때마다 이제 인형은 그만 갖고 놀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어떨 땐 누구 줘버리라는 말에 아이가 눈물을 쏟기도 했었다. 어떤 엄마들은 그런 아이를 보고, "우리 애들은 인형이 진짜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걸 진작에 알아서 이제 안 가지고 놀아. 준이는 아직도 상상력이 풍부한가 봐."라고 슬쩍 비꼬았다. 애정이 결여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것으로 여겨질 때도 있었고 실제로 그 말이 맞을 수도 있었다. 해외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나 혼자 둘을 돌보아야 했기에 실질적인 빈자리가 컸고 아이들의 낯가림도 심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형들은 아이들에게 나에게도 훌륭한 마음의 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아이들에게서 인형을 빼앗지 않았고, 오히려 인형일 뿐인 유형의 사물에 마음을 불어넣는 아이들을 기특해했다. 이 마음으로 언젠가 친구들의 마음을,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거라고 믿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얼마 전 둘째의 중국 유치원 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로 모두 둘째 아이를 꼽는다는 말을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첫째는 반에서 가장 웃긴 친구로 통하며 중국 엄마로부터 자신의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가 우리 아이라는 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너희들이 친구들의 마음에 심어준 작은 씨앗 덕분이리라.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까맣고 단단한 플라스틱 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우리랑 같이 컸어."


<추억이 가득한 우리 집 동물 인형 베스트 프렌드>

- 태어나 처음 만난 오랜 친구 '하얀 토끼'
- 수족관에 가서 봤던 하얀 돌고래 '돌골' (실제로 수족관에서 돌고래가 아이에게 다가와 '삐' 소리를  냈었는데 그 이후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 '돌골'의 동생 '입뾰돌' (입이 뾰족한 돌고래)
- 쌍둥이 형제 멍멍이 골든 리트리버 '골든이'와 '골든든'
- 아기 사냥개 형제 시베리안 허스키 '허스키 허스키'
매거진의 이전글 형제에게 필요한 건, 유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