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어왔던 밀물이 싸하게 빠져나갔다. 걱정거리가 없으니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붙들고 놓질 못했다. 아이들 재울 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는 아이들 자고 나서 하고 싶은 일들을 생각하며, 반은 아이들의 포근함과 나란히 누워, 반은 둥둥 떠다녔던 지난 얼마간. 하지만 최근에는 몸을 한 번 뉘이면 거의 그대로 잠식해버렸고 그렇게 하루의 고단함과 고민들을 접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찍 잠든 탓에 새벽에 눈이 떠져도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작은 상념들과 문장들이 간간이 머리를 떠다녔지만 발 하나 손 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아 이런 건 너무 괜찮잖아, 핸드폰에라도 적어놓을까 하고 잠시 망설여질 때도 간혹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어쩐지 나 자신이 우스워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어제도 나는 하루를 단칼에 접었고, 새벽에는 어김없이 눈이 떠졌다. 옆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꿈을 꿨는지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아아 떨어져.”라고 외쳤다. 본능적으로 아이를 안으려고 하자 아이는 나를 세게 밀어내며 정말로 바닥 어딘가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발버둥을 쳤다. “엄마야. 엄마 여깄어. 침대에서 자고 있었어.” 그러자 눈 감은 채로 바로 몸을 눕히더니 언제 그런 꿈을 꿨냐는 듯 다시금 깊은 잠이 든다. “엄마 여기 있어..”라는 말을 한번 더 되뇌며 아이 얼굴을 쓰다듬고, 차갑고 귀여운 볼을 손에 담았다가 기어코 빠져나온다. 오랜 허물이라도 벗는 양 몸을 누르고 있던 두꺼운 겨울 이불을 걷어내고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낸다. 저절로 눈이 떠졌을 때 다시 잠을 청하는 건 가끔은 꽤나 달콤한 일이지만, 현실을 잠깐이라도 외면하겠다는 작은 몸부림이기도 하다.
그렇게 오늘은 이른 새벽, 책상 앞에 앉아 모니터를 마주했다. 정확히는 식탁. 작은 악몽을 꾼 두 아이를 차례로 다시 재우고 나서, 마치 ‘인크레더블’의 엄마 히어로가 된 것 같은 묘한 자기 효능감으로 누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을 찾아 헤매는 ‘라이온 킹’의 배고픈 하이에나가 된다.
글을 쓰며 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9월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설 즈음 아이들과 한국에 들어갔다가 코로나가 터졌고, 3월에는 하늘길이 닫히기 이틀 전 중국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이산가족은 모면했지만 중국은 그 당시 ‘올스탑’ 체제였다. 긴 가정보육 끝에 8월이 되어서야 두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고 9월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를 알게 되고, 글을 몇 번 읽어보고는, 어린아이처럼 ‘나도, 나도..’를 마음속으로 외치며 바로 글 하나를 준비해서 냈다. 결과는 합격. 그러고 나서 브런치를 마구 헤집어보기 시작했는데 그때, 글들이 나에게 마구 쏟아졌다. 해외에서 육아하는 전업맘이라는 배경과 소재 자체가 읽힐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가 말이다. 나의 글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어 보아야 하는 건 항상 내 인생에서 요구되었던 큰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런 것들이 일할 때 조금 도움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타깃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느냐 하는 것들을 고민해야 했으니까. 아이를 키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보다는 아이들 마음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브런치에서조차 읽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쓰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읽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글의 타깃이 명확한 것은 분명 좋은 글에 대한 하나의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각기 다른 인생의 결이 녹아 있는 글들에서 나와 비슷한 지점을 발견하고 그에 작은 떨림을 느끼는 일은 ‘브로드 한 타깃’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것일 테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심지어는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그 누군가가 나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범주의 기막힌 것들을 생각해서 글로 풀어내고 있다는 것이 좋고, 또 반대로 완전히 다른 그 누군가가 나와 완벽히 일치하는 생각의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좋다. 따뜻한 것도 아니고 위안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감동적인 것도 아니지만, 뭐라 어떻게 말할 수 없이, 좋다.
라이킷을 누르고 받는 것들이 설렌다. 내 글이 처음으로 다음 메인에 올라 조회수 3만 이상을 기록했을 때, 어디에서였는지는 모르지만 2천 이상을 기록했을 때는 잠시 심장이 나왔다 들어갔다. 그 뒤로는 브런치 구석에 짜부라져 머리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글을 쓰는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지만 지나친 솔직함은 경계하고 싶어 졌다. 내가 혼자 끄적거린 글을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저 두 아이의 엄마일 뿐인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러면서도 인생은 이런 것이다, 아이는 이렇게 키워야지 같은 류의 시건방진 말 따위를 하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감정에는 어떤 양면성이 있어서 원래 그런 것이라고 하면 분명 끄덕일 테지만..
어쨌든 나는 해외에서 독박 육아하는 전업맘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남자아이 둘 독박 육아가 힘들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육아로 인해 잃어버린 엄마 사람의 인생에 대한 절절함이나 아쉬움도 별로 없다. 흥미로운 소재거리가 아닐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 못할 이야기일 수도 있다. 누가 보기엔 그냥 자식사랑 과한 도치맘일 수도 있고, 교육열 쩌는 엄마일 수도 있고 듣보잡 아줌마일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누군가 듣고 싶어 할 이야기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빈말보다는 이상한 말이 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