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기억들

by 도원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이 우리 곁에 남는다. 그것들은 밤이 이슥할 때 언덕 위로 올라가서 몸에 꼭 들어맞게 판 작은 구덩이에 숨어들어, 기척을 죽이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시간의 바람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동이 트고 거센 바람이 잦아들면, 살아남은 말들은 땅 위로 남몰래 얼굴을 내민다. 그들은 대개 목소리가 작고 낯을 가리며, 다의적인 표현 수단밖에 갖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그들은 증인석에 설 준비가 되어 있다. 정직하고 공정한 증인으로서. 그러나 그렇게 인내심 강한 말들을 갖춰서, 혹은 찾아내서 훗날에 남기기 위해 사람은 때로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의 마음을 조건 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 우리의 목을, 겨울 달빛이 내리비치는 차가운 돌베개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


오랜만에 잠깐 혼자 있을 시간이 나서 컵라면을 먹다가 책을 펼쳤다. 나는 나를 한 번도 아날로그 타입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꽤 빠릿빠릿 한데, (착각은 자유) 어떤 부분에서는 도저히, 조금도, 진보하지 못한다. 한 마디로, 전자책으로 책을 읽으면 독서의 재미와 느낌이 반으로 준다. 책을 읽는 속도도 현저히 차이가 난다. 똑같은 활자일 뿐인데 왼쪽 모서리에서 오른쪽 모서리 끝으로 이동하는 일이 전자책에서는 훨씬 더디다. 무엇보다, 라면을 먹다가 책을 읽고 싶을 때 전자책을 펼치고 싶은 마음은 정말이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라면을 먹다가 아이패드를 들면 라면 맛이 반감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어쩔 수 없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일단 골라 라면이 붇기 전에 식탁에 앉아 읽는다.


이럴 땐 소설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집이라는 띠가 둘러져 있는 ‘일인칭 단수’를 골랐다. 언젠가 읽고 싶었던 책을 모아 한국에서 EMS로 한꺼번에 주문했었던 책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신작’으로부터 지나온 시간들을 잠깐 동안 가늠해본다. 언제나 그렇게 많은 것들은 지나가 버리고 때론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남편과 함께 독서 좀 해보자며 머리를 맞대고 읽고 싶은 책 리스트를 고르고, 책 주문을 했던 그때 그 순간들이 책 표지의 이미지와 함께 떠오른다. 책을 많이 읽겠다는 결심마저 희미해져 버린 것은 아니기를.. 책에는 글자만 담겨있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는 한, 나는 색색깔의 표지를 보고 어김없이 그 순간들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래도 만약 행운이 따라준다면 말이지만, 때로는 약간의 말이 우리 곁에 남는다.’


시시각각 소멸을 향해 나아가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어딘가로 날아가버리는 것들.. 술술 읽다가 문장이 훅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 뒤에 남는 것은 사소한 기억뿐. 하얀 종이 위에 최소한의 손가락의 움직임으로 써 내려가는 이 글들도 그러하다. 이토록 선명한 지금 이 순간들도 언젠가는 사소한 기억으로 남게 될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 한편이 아주 조금 저릿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지나온 시간들이 아주 사소한 기억의 단편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이미 경험해버린 나는, 그렇기에 현재의 기억을 짧은 글로나마 남겨놓을 수밖에 없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나마 형태를 갖추어 하얀 백지 위에 올려둘 수 있는 건 글뿐이니까.


지나간 기억들을 다시금 불러내어 종이 위에 써 보기도 하지만 참으로 미덥지 않다. 몇 초 전의 일들도 글로 써보라고 한다면 시시각각 변한다. 글을 쓰는 이에 따라 매만지고 입히는 작업을 거치게 됨은 물론이다. 그런 글 안에서 나를 보고 타인을 보는 일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 다만 반복하여 마주하게 됨으로써 글 안에서 덧입혀진 나의 모습과 실제의 괴리감은 줄어든다.



책과 관련하여 오래 전이지만 비교적 선명한 기억들을 더듬어본다. 어릴 적 읽었던 책들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사를 갔으므로 책을 읽었던 장소와 그 느낌상의 나이가 초3 전후로 쉽게 구분이 된다. 천사들의 합창이 인기리에 티브이에서 방영되던 시절이었다. 천사들의 합창을 책으로 갖게 되었던 날의 기쁨, 히메나 선생님, 시릴로, 마리아. 등장인물들도 아직까지 선명하다. 마녀의 성 이야기, 해리포터가 나오기 전에도 마법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웠다. 귀여운 마녀가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표지의 이미지가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외에 소년 소녀 가장 이야기 전집을 읽고 울었던 기억. 전 세계 어린이들의 생활과 각 나라별 문화를 알 수 있었던 ‘세계의 어린이’, 유명했던 에이브 동화 전집. 거의 모든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그중 가장 좋아했던 ‘초원의 집’, 그리고 말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 (이건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군데군데 아직도 꽤 선명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어디서부터가 활자에 대한 기억인지, 경험의 기억이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책의 내용과 표지, 읽었던 장소, 책이 가진 모든 기억이 그 글에 담겨 책장 한 구석을 고이 차지하게 된다는 것은, 조금 더 정직한 기억들이 오래도록 지속해 왔다는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책이 그때 그 자리에 내내 꽂혀 있지 않았더라면, 방 한구석 그 자리에 오래도록 꽂혀 있던 책의 제목들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회상했던 기억이 없었더라면, 그 무렵 나의 무언가는 한낱 먼지가 되어 가슴 밑바닥에 영영 가라앉아 버렸을 것이라고도.


라면을 먹다가 책을 통해 책을 회상하다 글에 대한 짧은 생각에 이른다.

그러니까, 현재를 과거로 시시각각 밀어내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하는 것 아닐까 라고..

흘러가는 것들 속에서 흘려보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위해 잠들기 전 어쭙잖은 기억 한 편을 또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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