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쓴다는 것

by 도원

일단 쓰기로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순서는 어떻게 정할지,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쌓고 무너뜨리다 결국 몇 자 옮겨 적지 못하는 것보다는 우선 아무 얘기나 쓰고 싶은 대로 적어보기로.


나는 말보다는 글이 편하다. 말에 있어서는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하는 말이 우선이었지만, 글에서는 써야 하는 글보다 쓰고 싶은 글이 더 많았다. 말을 할 땐 주저하게 됐지만 글을 쓸 땐 주저함이 없었다. 물론 글은 나 혼자만 보는 일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서 영화 평론을 흉내 내며 써보기도 하고 책 리뷰를 적어보기도 했다. (이동진 기자의 영화평론이 신문에 연재되던 시절, 나도 팬이었다.) 편지도 꽤 많이 썼다. 친한 친구에게 무슨 날이 되면 편지를 줬고, 연애할 때도 답장이 오던 말던 편지를 줬다. 똑같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해도 말은 뭉뚱그려 나오는 반면 글에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런대로 정확히 드러낼 수 있었다. 글은 내가 가지고 있는 언어 중 가장 편한 수단이었다. 키보드로 두드릴 때 보다 종이 위에 손으로 쓸 때가 더 자유롭고 편했다.


하지만 외국어는 달랐다. 영어로 말하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영어를 잘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외국어로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다는 건 물론 불편했지만, 내가 아는 단어와 표현 범위 내에서만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편했다. 그래서 영어가 너무 좋았다. 영어 말하기에 빠져서 영상을 보며 대사를 듣고 외우고 하는 것들이 너무나 재밌었다.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게 항상 고역이었던 나였는데, 영어로 발표할 때는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해외 브랜드를 담당하며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어휘도, 표현력도 딸려도 한참 딸린 영어가 도대체 왜 편했을까, 단순히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언어에 따른 발성이 달라서일까. 그러다가 내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다.


<자기 검열>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위협을 피할 목적 또는 타인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자기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이다.


영어로 말할 때 틀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보다, 나의 언어에 대한 자기 검열이 더 심했다.



(옆자리에서 날아온 쪽지) “너 시험지 나 좀 보여주라.”

‘안 보여주고 싶은데, 근데 그러고 나면 나랑 친구 안 한다고 하는 거 아니야?’ “알았어.”

(기억엔 없었는데 초등학교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탐구생활 내가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고 싶어, 다 안 해줘도 돼. 내가 할 거야~ ”

“쓸데없이, 어떤 아빠가 이렇게 잘해주는지 봐봐라 너는 그 시간에 다른 거 해야지.”


“나는 버스 타고 등교하는 게 더 좋아. 학교 앞까지 안 데려다주셔도 돼요.”

“한복 만들기 숙제 이건 꼭 내 손으로 다 하고 싶은데, 너무 하고 싶어 엄마 이거 제발 수선 가게 안 맡겼으면 좋겠어.”

.


“응, 알겠어요.”

“응, 그렇게 할게.”

“응, 나도 그게 좋아.”

“응....”


어른이 말을 하면 일단 ‘네’ 해야지, 어디서 토를 달아, 그만, 너는 가만히 공부만 해, 다른 건 다 해줄테니까 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아빠는 경찰이셨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휘어잡는 여장부셨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동생에겐 거의 비서다. 맞벌이하느라 바쁘니까.

어릴 때부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 이건 진짜 아니잖아 하는 자잘한 일들이 자주 일어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작게라도 내 의견을 냈다. 그리고 그건 말대꾸에 불과했다.


나의 생각을, 의견을 전달하는 일은 우리 집 안에서 하나의 혁명과도 같았다. 그냥 말을 하면 풍비박산이 날 것을 알기에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기획서를 만들어서 부모님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도 있다. 내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내가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나마 생각해 낸 방법이었지만, 그것조차도 통하진 않았다.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이었고 결정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의 결정도 그 누구보다 나를 위한 것이기에, 지나고 보면 ‘선견지명’이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나는 말 안 듣고 소란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는 집안을 어지럽게 하지 않기 위해 나의 역할에만 최선을 다했다. 맞추는 데는 자신 있었으니까.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고 주장도 강했던 나는 점점 나를 감추는데 능해졌다. 그러다 보니 곪아 터질 것 같아서 글로 다 풀었다. 매일 쓰고 매일 찢어서 버렸다. 나중에 조금씩 행복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당시의 나는 매일 우울해서, 내가 우울한지도 몰랐었다는 사실을. 대신 죽음이 맞닿아 있었던 만큼, 항상 진실한 소망만을 갈망할 수 있었다는 것을, 욕망에서 자유로워진 소망, ‘그것만 가질 수 있다면’이라는 희망으로 살아낼 수 있었던 나날들이었다는 것을.


현재 해외에서 홀로 하는 육아가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현재의 하루를 뚝 떼어서 과거의 하루와 비교한다면 그 어느 하루라도 더 행복하지 않은 날은 없다. 아득하게도 정말 그랬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 썼던 글들은 많이 부정적이었던 반면, 지금 쓰고 싶은 글들은 여러 가지다. 아무렇게나 떠올려 보자면, 중국 생활에 대한 소소한 일상부터 중국 교육 이야기, 중국 사람 이야기로 나아가고 싶다. 그러면서도 내가 한 경험들은 극히 일부일 텐데, 이걸로 중국이라는 대 전제를 붙여서 써도 될까? 이렇게 큰 나라를? 나는 교육 전문가도 아닌데, 단순히 아이들을 중국 유치원에 보냈다는 이유로 이 곳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해도 될까? 단정지어버리는 것 아닐까? 혹시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는 거슬릴지도 몰라,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지금까지 내가 태어나서 가장 큰 열정을 쏟아부은 일은 지금 하고 있는 ‘육아’ 다. 현재 가장 관심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 오랫동안 동물을 키웠던 경험부터, 눈물 콧물 쏟고 봤던 동물 관련 책들, 동물과의 교감이 행복했던 시간들, 동물원과 사육사에 대한 관심들. 그 모든 것들이 아이를 낳고 난 후 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도 연장됐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아?’로부터 시작된 세상에 대한 내 오랜 싸구려 철학을 우리 가족 안에서 만들어나가는 것 역시 행복하다. 육아에 대해서, 그리고 교육이 변화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역시나 나는 육아책도 많이 읽지 않은 평범한 엄마일 뿐이다.


광고회사에서 일했던 경험, 갑과 을의 관계. 힘들었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던,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도 떠오른다. 앞으로는 더 이상 조직에 몸을 담게 되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라기보단 과거를 지나왔던 향수 혹은 라테가 되고 말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일, 내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일. 영어에 빠졌던 시간들, 싫어했던 중국어를 받아들이게 되었던 시간들.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시간들. 그리고 아이들의 언어 교육. 중국 유치원을 3년 넘게 다니고 있어서 중국어 노출 비중이 훨씬 많지만 아이들은 한국어를 더 잘한다. 7살 첫째는 혼자 한글 책을 읽고 쓸 수 있고, 둘째는 열심히 가나다라를 배우는 중이다. 책과 글쓰기만은 놓칠 수 없어서 한국어 교육에 대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영어를 좋아하는 나로 인해 중국어, 한국어, 영어 3개 국어를 같이 하고 있다. (현 유치원 전에 다니던 중국 어린이집에서 원장 선생님의 요청으로 영어 선생님을 했었다.) 그런데, 환경이 조성되어있는 장점 때문에 어느정도라도 가능한 일이므로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라기보단 자식 자랑에 그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꼬꼬마들에 불과하다.



쓰고 보니 숨막히는 자기 검열이다. 다행인건 지금까지 몇 편 안 되는 글을 브런치에 올리면서 누구도 내 글에 뭐라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감했다. 논리적으로는 당연히 그렇겠지만, 글 하나 올리고 며칠씩이나 브런치를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에겐 꽤 의미 있는 체감이었다. 이제는 ‘좋은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도, 출처 없는 상상 속의 비난들도, 완벽해야 한다는 의식도, 짜임도, 맥락도 다 내려놓고, 조금은 자유롭게 생각나는 대로 그렇게 쓰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손에서 나오는 것들을 믿어보려 한다. 벌써부터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그건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 내어 한 발 내디뎌 본다.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 수 없었던 건 단지 ‘실행’의 문제였던 것 아닐까? 하고.. 아, 이런 생각들도 마음에만 담지 말고 남겨두어야지. 그렇게 또 부족한 내 생각의 자취들을 휘리릭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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