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매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새벽에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나서, 잠들기 전 하루의 시간을 늘려가며,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매일 오후 3시에도. 혹시 이 글을 보고 있는 누군가도 매일 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을 동경한다.
매일 쓰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 아마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부지런함, 꾸준함과 끈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매일 써 내려가다가도, 쓰고 싶은 말이 없는 날도, 쓰고 싶지 않은 날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날은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날이기도 하다.
나를 대면하기 싫은 그런 날.
나에게도 매일 쓰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초반 정도까지. 그때 썼던 것들은 대부분 바로 버렸거나, 남아있었더라도 엄마의 대청소와 함께 쓸려가 버렸을 것이다. 매일 무슨 말을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걸까.. 희미해진 기억을 떠올려보면 영화나 책을 보고 나서 짧게라도 끄적거렸고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서 끄적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분노의 감정이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종이 위에 휘갈기고 나면 한없이 무거웠던 몸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던 느낌. 글을 쓰면서 내 안에 들끓는 정체모를 감정을 하나씩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외로웠고 때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덕분에 나는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를 이해하고, 가족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 당시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참 많이 노력했었다. 어두컴컴한 독서실에 앉아 시간이 얼마나 흐르는지도 모른 채, 눈을 감고 내가 엄마라는 주문을 외며 엄마가 나한테 한 행동들을 이해하려 했었다. 한 발짝 뒤로 떨어지는 방법을 몰랐었기에, 나의 이해가 부족한 탓이라 믿었었기에. 그러다가 문득 내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또 무너지는 날의 반복이었다. 항상 정성 가득한 밥상을 차려주셨고, 아주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자식에게 들어가는 돈이라면 아끼지 않으시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는 엄마였기에 나는 내가 잘못된 거라 여겼었다. 엄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듣고 나서 방에 혼자 있게 될 때면 펜 하나에 의지하여 아무 글이나 써 내려가곤 했었고, 그럴 때면 감정이 손을 휘감아 머리가 아닌 손 끝에서 생각지도 못한 말들이 마구 튀어나오곤 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긴 했지만 그래도 꽤 평범하고도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어느 날, 일어나선 안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학원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엄마가 내 방 한가운데 앉아있는 뒷모습이 보였고, 나는 그때 엄마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당황한 내 시선의 끝은 엄마의 벌건 눈과 마주친 후 곧 떨구어져 엄마 손에 들린 내 일기장으로 가서 닿았고 그 장면은 사진이 찍히듯 영구 인화되어 지금도 내 가슴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나는 그때 내 손 끝에서 나온 글이 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던 그 글이 누군가를, 그것도 제 부모를 찌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상처는 나만 받는 편이 나았다. 에미는 제가 받은 상처를 미처 돌보지 못한 채로 닥쳐온 하루를 살아내야만 했고,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적에게 내밀었던 그 발톱을 간혹 자식에게도 내밀곤 했다. 지금은 안다. 그것이 사실은 나를 겨냥한 게 아니었음을, 내가 알지 못하는 종류의 고단함을 지나오다 어느새 몸에 지니게 된 뾰족함, 단지 그뿐이었다는 것을.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하며, 내가 본 것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는 일은 참 재밌었다. 외부로 향한 시선들을 나에게로 가져오면서 지금껏 내가 가지지 못했던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종종 작은 깨달음도 얻는다. 하지만 머리가 멍할 때,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생각의 작은 조각조차도 부유하지 않을 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보면 내 안의 이야기들이 끝내 손 끝에서 흘러나오고 만다. 그럴 때 나는 여전히 조금 아프다.
아마도 매일 쓸 수 있는 사람들은, 쓸 거리가 없어도 무언가를 쓸 수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단단해진 사람들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이야기를 쓰든 글에서는 쓰는 사람이 배어 나올 수밖에 없고 그것이 누군가의 글을 읽을 때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나는 글에 보이는 나를 대면하는 일이 가끔은 두렵다. 내 안에서 내가 알지 못하는 불순함이 나올 것만 같고, 활자로 남겨진 이 글이 또 누군가를 찌를까 봐 무섭기도 하다.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매일이 좋을 수 없고 스스로의 모습이 항상 마음에 들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이 정도면 오늘 꽤 괜찮은 하루라고 생각하며 잠에 들 때도 있지만 누군가의 말이 마음이 꽂혀 쉬이 잠들지 못하는 날도 있고 떠올리기조차 부끄러운 나의 부족함을 되돌리고 싶은 날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너무 가혹하게 바라보지 않았으면, 그리고 나에 대한 가혹함의 화살이 너에게까지 날아가면 안되는 응당한 이치 또한 다시금 생각해 본다. 누군가 세워놓았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아등바등거렸던 지난날을 떠올려보며, 이제는 내가 나 스스로를 가두는 높은 성벽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닌지, 혹시 거기에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아득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이런 날 저런 날도, 나의 이런 모습도 저런 모습도 써 내려갈 수 있다면 나를 조금씩 사랑해 줄 수 있으리라,
그렇게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보듬어줄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매일 쓸 수 있게 되리라,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