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육아 대신 미독서
나의 모른 척은 급기야 무기력까지 느끼게 했다.
몇 년 동안 계속되었던 내 열정이 어떻게 이렇게 하루아침에 식어버렸을까 싶을 만큼 나 조차도 스스로를 놀라워했다. 마치 한 번도 그런 마음을 품었던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눈감고 싶었다.
정신없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이를 픽업해서 들어오면 씻기고 먹이고 놀이하다 잠드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 무렵 보드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아이와 도둑 잡기 타워마블 같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게임을 하고 나면 늦은 저녁이 되었다. 잠자기 싫어하는 아이와 실랑이를 하다가 잠자리에 누워 그림책을 두 세권 읽어주다 보면 아이가 잠들기도 전에 내가 먼저 곯아떨어지곤 했다. 아이를 재우고 늦은 밤까지 의미 없는 서핑을 하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았다. 불면증이라는 증상을 앓기는 했었나 싶을 만큼 졸음이 쏟아졌다. 그 생활이 반복되자 나는 조금씩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꼭 뭘 해야 할까?‘이렇게 살기에도 너무나 정신없는 날들인데 말이다.
책무덤에 파묻혀 살던 아이가 책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 생활을 만들어 나갔다. 책을 들고 와서 읽어달라고 조르지 않으니 좋았다. 게다가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행복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구멍이 난 것처럼 허전하고 허무했던 것도 사실이다. 지난 나의 7년이 다되어가는 육아생활이 통째로 날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라면 표현이 될까?
몇 년 동안 전부라고 믿고 전력질주 하던 목표를 두고 근처에도 못 가고 포기해 버려서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고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기분, 그때 내 심정이 딱 그랬던 것 같다. 어쩌면 아이를 핑계로 내 마음을 채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하고 자기성장하며 바쁘게 살았던 나를 잃어버리고 아이의 엄마로 남편의 아내로 온전하려면 다른 방법으로 내 마음에 쏙 드는 내가 되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바퀴 없는 자전거를 구르듯 헛발질이 계속되던 어느 날, 시작하게 된 독서모임.
나에겐 내 인생의 또 다른 터닝포인트 같은 시간이었다. 1년에 책 1-2권 읽는 것이 전부였던 나의 삶에 아이 그림책을 읽어주며 웃고 울고 치유하던 나는 내 책을 읽고 싶어 졌던 것 같다. 그림책도 정말 좋지만, 진짜 나에게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고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매일 바쁘다 바쁘다 노래를 부르던 내 일상에 블록시간을 만들고 통으로 독서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관리가 관건이었다. 아이를 재우며 곯아떨어지기라도 하면 세상 억울한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 블로그를 끄적거리던 나의 삶을 통째로 바꿔보기로 했다.
미. 라. 클. 모. 닝
안 해본 사람은 몰라도 해 본사람은 다 안다는 새벽기상의 기적, 그때부터 나는 새벽 5시 알람을 맞추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독서는커녕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어서 매일 내려놓으면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켜던 내 삶에도 독서 시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모두가 잠든 시간,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고 독서하는 시간이 정말 좋았다. 매일 아침 만나는 책 속에는 내가 살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멋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자기 삶에 마주하는 모든 변수를 핸들링하는 것만 같은 자기 삶의 진정한 철학자들 말이다. 그렇게 나는 새벽마다 책 속에 살고 있는 멋진 리더들과 근사한 철학자들을 만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어떻게 살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진짜 원하던 삶이 이런 것이었을까?
아이 책 많이 읽어주고 열심히 교육하는 것만이 정말 전부일까?
무기력에 빠져 모든 걸 멈추고 싶었던 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하루하루 두근두근 심장 뛰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바로 아이를 위해서 읽어주던 독서열정을 나 스스로를 위한 책을 치열하게 읽는 방법으로 전환했기 때문이었다.
아이 책 읽어주기 싫어서 잠깐 모른 척했던 일에 대한 대가가 그 정도였으니 결혼과 동시에 내 마음, 내 진심, 내 꿈, 내 희망을 모른 척했던 대가는 가늠하기도 힘들 만큼 크고 무거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