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우의 푸드오디세이>
고기 먹는 모습을 보면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고기에 붙은 지방을 떼어내고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말이다.
기껏 지방이 붙은 소고기 스테이크를 구해 정성껏 구워냈는데 지방만 잘라 접시 한편으로 밀어내는 걸 목격하면 ‘아! 같이 먹어야 맛있는데’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한편으로는 맛을 탐하는 욕구보다 건강을 지키겠다는 이성이 앞선 쉽지 않은 결정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먹는 이의 선택을 존중하지만 매번 음식물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지방 덩어리를 볼 때마다 착잡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지방은 정말로 피해야 하는 몹쓸 영양소일까. 각종 매체에서 의사나 영양학자가 이야기하는 지방의 필요성과 유해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을 터. 단지 전하고 싶은 건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지방에 대한 이야기다.
미리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방은 음식 맛을 보다 좋게 하는 주방의 필수요소다. 실제로 우리가 ‘요리한다’는 말의 의미를 따져보면 대상이 되는 식재료를 ‘가열한다, 조미한다’로 나눌 수 있고 조미한다는 데엔 ‘소금을 치고 지방을 더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고기에 붙어있거나 버터, 오일 등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지방은 음식에 풍미를 선사하고 음식에 윤기를 부여한다. 지방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입안을 매끈하게 해 촉감을 좋게 하는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접하는 각종 식품에 지방이 들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은 우리가 ‘풍미’라고 표현하는 맛과 향에 크게 관여한다. 사실 고기 맛은 살코기가 아닌 지방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맛을 혀로 분간한다고 느끼지만 사실 후각을 통해 얻는 정보가 절대적이다. 고기 특유의 냄새, 향 성분은 단백질이 아니라 지방에 잘 녹아든다.
이 때문에 살코기만 맛보면 어떤 고기인지 직관적으로 분간하기 어렵다. 반드시 지방이 곁들여져야만 고기 맛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다. 집에서 간단히 실험을 해볼수도 있다. 삼겹살을 구운 프라이팬에 소고기 살코기를 올려 구워보자. 지방의 맛이란게 어떤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다.
지방은 고기 맛을 좌우한다. 마블링 소고기가 맛이 있느냐 맛이 없느냐에 대한 논란도 결국엔 지방 맛에 관한 이야기다. 마블링이 있다는 건 지방이 살코기 안에 고루 침투해 있다는 의미다.
지방 함량이 많을수록 고기는 더 고소하고 부드럽게 느껴진다. 돼지 앞다리 살보다 지방이 훨씬 많이 붙어 있는 삼겹살을 먹을 때 우리는 더 큰 만족감과 행복감을 만끽하지 않는가. 마블링 위주의 현행 등급제도는 개선할 문제가 많다 치더라도 마블링 많은 소고기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건 타당한 이유가 있다.
물론 마블링이 전혀 없는 소고기도 그 나름대로의 맛이 존재한다. 목초만 먹여 키워 마블링이 거의 없는 소를 주로 소비하는 유럽이나 남미 사람들은 지방이 없는 소고기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 않다. 마블링 없는 소고기의 경우 대부분 겉을 감싸고 있는 지방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조리해 조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고기에 묻어나게 한다. 지방 없는 살코기를 더 맛있게 조리하기 위한 노하우인 셈이다. 마블링이 있는 고기라면 굳이 겉 지방을 붙이지 않아도 되겠지만 말이다.
지방은 그 자체로 맛을 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조리를 돕는 역할도 한다. 물보다 끓는점이 높은 지방이 식재료 표면온도를 높여 수분을 증발시키고 단백질을 보다 맛있게 변성시키는 작용을 한다. 다시 말해 재료의 겉을 바삭하게 하고 마이야르 반응을 통한 깊고 진한 감칠맛을 낼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라이드 치킨이나 전, 튀김은 지방 없이는 결코 존재할 수 없는 음식이다.
채식요리에도 지방은 제법 지분을 갖고 있다. 우리가 평범하게 접하는 나물무침만 해도 그렇다. 마지막엔 반드시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식물성 지방을 더해 주는데 기름의 향을 첨가해 줄 뿐 아니라 입안에서 느낄 수 있는 질감에도 영향을 준다.
이처럼 지방은 음식의 맛을 북돋아주지만 우리 주변의 음식에 너무 많이 포함돼 있는 게 문제가 되기도 한다. 되도록 섭취를 줄이는 게 많이 먹는 것보다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모든 지방을 마치 해로운 독성물질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지방이 없으면 우리는 아마도 무미건조한 음식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고 있을 테니까.
음식이나 영양소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우리 몸에 좋은 영향을 줄지 나쁜 영향을 줄지는 어디까지나 먹는 사람이 얼마나 섭취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걸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