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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Apr 07. 2021

길들여짐을 거부하는 내추럴 와인의 반란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언젠가 막걸리 양조장에서 체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막걸리를 손수 빚어본 적이 있다.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물에 누룩과 고두밥, 효모를 넣고 신나게 쪼물딱 거린 후 통에 담아 실온에서 일주일 남짓  두니 제법 그럴싸한 막걸리가 탄생했다. 


혹시 먹고 탈이나는건 아닐까 떨리는 마음으로 윗술을 떠 한 모금 맛보았는데 웬걸, 화사한 꽃내음이 휘몰아치다가 이내 입안을 가득 채우는 복잡미묘하면서도 구수한 맛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판 막걸리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한 맛이었다. 대체 여태 먹어온 막걸리의 맛은 무엇이었는가 의문이 들면서 동시에 ‘이런게 진짜 막걸리의 맛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던 극적인 순간이었다. 


난데없이 막걸리 이야기를 꺼낸 건 직접 빚은 막걸리를 처음 맛보았을 때의 경험과 내추럴 와인을 처음 맛보았을때 느꼈던 경험이 서로 비슷했기 때문이다. 기존 와인에서 쉽게 느껴보기 어려운 형언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꼈고 그날로 내추럴 와인의 매력에 빠지게 됐다. 내추럴 와인은 늘 놀랍고 신기하고 재미있고 새롭다. 내추럴 와인 애호가들과 내추럴 와인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진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추럴 와인은 무엇이며 또 기존의 와인과 무엇이 다른 걸까. 내추럴이란 수식어를 보고 무언가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만들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면 정확하다. 사실 인위적, 자연적이란 말은 와인에 있어 다소 어폐가 있다.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하는 것 자체가 사람이 개입되는 일이기에 인위적인 걸 거부한 와인이란 마치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말이 안될 수도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내추럴 와인에 대해 가장 알려진 정의는 ‘농약이나 제초제 등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으로 재배한 포도를 사용해 양조 과정에서 화학 첨가제를 넣지 않고 만든 와인’이다. MSG를 넣지 않은 라면같이 일단은 무언가 꺼림칙한 걸 넣지 않았다는 뜻처럼 보인다.



어디까지나 이 정의는 내추럴 와인의 기술적인 정의다. 내추럴 와인의 특징 중 하나로 드는 게 이산화황(SO2)을 첨가하지 않거나 극소량 넣었다는 점이다. 중세 때 만해도 와인의 유통기한은 고작해야 1~2주 정도였다. 와인이 식초가 되는 걸 막기 위해 이산화황을 인위적으로 첨가한 후부터 와인의 수명은 극적으로 길어졌다. 몇년이고 장기보관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와인 산업이 급격히 커지고 와인 양조 기술은 화학의 발전과 더불어 나날이 발전했다. 



와인이 돈이 되다보니 와인을 보다 빠르고 쉽게 만드는 방식이 도입됐는데 작황에 따라 매번 맛이 달라지는 걸 막고 늘 일정한 맛을 내개 하거나 좋지 않은 품질의 와인도 마치 좋은 품질처럼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 첨가물을 넣는 일이 당연하게 벌어졌다. 와인 맛도 특정 유명 와인 스타일과 유사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다보니 개성을 잃은 비슷비슷한 와인이 쏟아져 나왔다. 


내추럴 와인은 이러한 기존 체계에 대한 일종의 저항운동으로 탄생했다. 환경을 보호한다는 명분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원래 와인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 즉 다채로운 맛과 향을 끌어 올려 가치를 높이겠다는 철학이 담겨있다. 


1960년대 유럽의 내추럴 와인 선구자들은 이산화황의 힘을 빌리지 않고 와인을 만드는 일을 연구해왔다. 이산화황이 와인에 해로운 균뿐만 아니라 맛에 관여하는 다른 유익한 효모들도 죽여 와인의 생명력을 잃게 하는 주범이라고 본 것이다. 그들은 땅과 포도안에 있는 자연 효모들을 적절히 잘 활용하면 인위적으로 무언갈 첨가하지 않아도 생명력 넘치는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오랜 기간 경험과 노력을 통해 증명했다.



선구자들의 성공 이후 내추럴 와인의 맛과 철학에 매료된 많은 이들이 와인 농사와 양조에 뛰어들었지만 인생이 그렇듯 모두가 성공적이진 않았다. 내추럴 와인을 둘러싸고 많은 잡음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가 맛보아도 매력적인 맛을 내는 내추럴 와인도 있지만 개중에는 기존의 와인 세계에서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난해한 개성을 갖고 있거나, 누가봐도 상한 와인을 내추럴 와인이라고 우기는 생산자도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질서가 잡혀온 기성 와인 세계에서 보기에 내추럴 와인은 그저 퀄리티가 담보되지 않은 컬트적인 와인에 불과했고, 모험을 싫어하는 보수적인 와인 소비자들은 거슬리는 맛이 나는 이해하기 어려운 와인으로 치부하는 등 부정적인 인식이 뒤따랐다.


분명 내추럴 와인은 공고하게 쌓아올린 기성의 와인 문법으론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불쑥 튀어나오는 산미라던지, 두드러지는 과실향, 헛간 냄새를 방불케하는 효모의 풍미 등은 기존 시각으로는 단점이겠지만 내추럴 와인만이 가질 수 있는 재미요소라고 생각하면 훨씬 와인을 흥미롭게 즐길 수 있다. 


물론 기성 와인도 평생 마셔도 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다양한 맛의 범주를 갖고 있지만 내추럴 와인이 주는 맛의 범위는 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잘 만든 내추럴 와인을 맛보면 생명력이 넘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리라.


내추럴 와인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어떤 농법과 양조 방식으로 만들었느니 하는 기술적인 개념보다 하나의 철학이자 삶의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도 좋다.한국에서 내추럴 와인이 유독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금방 끌 수 있었던 이유도 내추럴 와인이 주는 재미와 저항정신에 있다고 본다.


 굳이 와인을 마시기 위해 잘 차려입고 격식을 갖추며 공부를 할 필요없이, 편한 분위기 속에서 직관적으로 맛을 느끼고 즐기면 그만이다. 내추럴파, 전통파로 굳이 편을 가를 이유도 없다. 같은 와인을 두 번 이상 마시기에 인생은 너무 짧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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