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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준우 Sep 02. 2021

요리할 때 넣는 술, 잡내 제거가 이유라고요?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가끔 요리 방송이나 콘텐츠를 보다 보면  불편해지는 대목이 있다. 바로 ‘잡내 제거 대한 내용이다. 특히 고기나 생선 요리를   단골로 언급된다. 소주나 청주를 부어 재우거나 요리할  넣으면 재료의 잡내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듣고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애석하게도 명확한 근거있는 주장은 아니다.


알코올의 잡내 제거 미신의 근거는 단순하다. 알코올이 기화되니  과정에서 나쁜 향도 함께 증발해 날아갈 것이란 믿음에서다. 실제로 알코올 성분은 향기 분자를 붙잡는 성질이 있다. 알코올의 이러한 성질을 이용해 만든  향수다.


장미향 향수는 다량의 알코올이 장미향을 붙잡아 두고 있고, 미량의 알코올과 함께 기화되는 장미향이 코을 통해 들어오면 우리는 향을 느낀다. 향을 맡는 입장에서 보면 알코올은 오히려 향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알코올은 향과 함께 기화되지만 술에 들어있는 알코올의 함량으론 재료에 있는 나쁜 향을 완전히 없애기엔 역부족이며, 설사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알코올이 재료의 많고 많은 향 중 나쁜 냄새만 콕 붙잡아 공중으로 날아간다는 근거도 딱히 없다.



그렇다면 요리에 술은 왜 넣을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각보다 많은 요리에 술이 들어간다. 대표적으로 닭에 레드와인을 넣고 졸여 만드는 프랑스의 꼬꼬뱅, 조개에 화이트 와인을 넣어 만드는 봉골레 파스타, 돼지고기에 각종 향신료와 간장, 소홍주를 넣고 만든다는 중국의 홍소육, 청주와 미림을 넣어 만드는 친숙한 일본 요리 .  모든 요리에 있어 술을 더하는 행위의 목적은 하나다. 바로 술이 갖고 있는 맛과 향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도대체 '잡내 제거엔 술'이란 속설은 왜 생겨 났으며 그보다 대체 잡아야 하는 '잡내' 과연 무엇일까. 흔히 잡내라고 하는  여러 의미의 이취를 표현하는 불분명한 단어다. 특히 고기에서 나는 ‘좋지 않은냄새의 원인은 실로 다양하다. 수컷 동물에서 나는 웅취이거나 박테리아의 번식에 따른 상한 냄새, 지방의 산패 냄새 . 누군가는 고기에서 나는 고유의 냄새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웅취의 경우 고기 내부에까지 배어 있는 이취다. 과거엔 웅취가 많은 고기를 요리하기 위해 강한 향이 나는 많은 재료를 넣어 함께 조리했다. 비위가 약한 높은 분들은 냄새가 나는 수컷 고기보다 웅취가 덜 나는 암컷 고기를 선호했다. 암소, 암퇘지 등 고기의 성별을 구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엔 고기에서 웅취를 느끼기란 어렵다. 대부분 고기로 사용되는 수컷은 거세를 통해 웅취가 나는 일을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다.


재료 표면에서 나는 냄새는 정도에 따라 다른데 경미한 정도라면 표면을 씻기만 해도 어느 정도 냄새를 줄이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인상을 찌푸릴 정도로 불쾌한 냄새가 난다면 그 냄새를 완전히 없애긴 힘들다. 다른 강한 향으로 나쁜 향을 덮는 수밖에 없는데 나쁜 냄새는 다른 향을 덮는다고 해도 음식에 깊이 배인다. 애초에 그런 냄새가 나는 식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게 최선의 해결책이다.


알코올은 요리에 꽤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요리는 각 재료의 맛과 향을 뽑아내 한데 어우러지게 하는 과정이다. 재료에서 맛과 향을 뽑아내려면, 다른 표현으론 맛과 향을 '용해'하려면 '용매'가 필요한데 물과 기름, 알코올이 그 역할을 한다.


고기를 물에 끓이면 물에 고기의 풍미가 물에 녹아 나오고, 파를 기름에 볶으면 파의 맛과 향이 기름에 녹아든다. 언젠가 배웠던 '수용성', '지용성'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알코올은 물과 기름에 쉬이 녹지 않는 향미를 붙잡아 두는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알코올이 들어가면 붙잡을 수 있는 향미 분자가 더 많아지고 그것은 곧 우리에게 더 풍부한 맛과 향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이야기다.



서구의 어느 레시피를 찾아보아도 고기의 잡내를 제거하기 위해 술을 넣으라는 대목은 찾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꼬꼬뱅이나 쇠고기 레드와인 졸임인 비프 부르기뇽 같은 요리는 와인이 갖고 있는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좋은 예다. 레드 와인은 신맛과 떫은맛, 쓴맛을 함께 갖고 있어 다른 재료들 만으로는 부족한 맛을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잘 만든 꼬꼬뱅과 비프 부르기뇽은 레드 와인의 풍부한 향과 함께 묵직한 뒷맛을 자랑한다.


봉골레를 만들 때 조개와 함께 화이트 와인을 넣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해산물이 갖고 있는 깊고 풍부한 향은 와인이 갖고 있는 산뜻한 산미와 만났을 때 배가 된다. 산미와 포도 풍미가 어우러진 화이트 와인을 넣으면 다른 조미료를 넣을 필요가 없이 완벽해진다. 화이트 와인을 넣으면 해산물의 비린내를 제거할 수 있다는 말은 믿지 말자. 해산물에 비린내가 난다면 이미 식재료로 실격이다.



알코올과 관련된 또 다른 미신도 있다. 술을 넣고 장시간 끓이거나 불을 붙이면 알코올이 날아간다는 것. 애석하게도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알코올은 음식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실험에 따르면 알코올을 넣고 불을 붙이는 요리법인 플랑베를 한 경우 불길이 일고 꺼진 후에도 전체의 약 75%의 알코올이 남아 있었고, 장시간 끓인 스튜에도 5% 정도가 남아 있었다고 한다. 팬에 순식간에 불을 붙이는 플랑베의 알코올 제거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지만 약간의 불맛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소주를 쓰든 화이트 와인을 쓰든 요리에 술을 넣게 되면 약간의 쓴 알코올의 맛이 느껴지는데 요리를 할 때는 최대한 알코올 함량을 줄여야 한다. 그래서 프랑스나 일본에서는 미리 한 번 술을 끓여 사용한다. 술에 있는 알코올 성분은 최대한 줄이면서 술의 향미를 음식에 더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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