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액정 필름이 깨졌다고 굳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리곤 도저히 다른 각도에서는 화면을 볼 수 없는 완벽한 사생활 보호 필름으로 교체했다.
평소 같았으면 내게 필름을 주문해 달라 부탁하고, 붙이는 것 역시 내 몫으로 넘겼을 텐데 이번에는 남편 스스로 했다. 무슨 일인지 의아했지만 굳이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남편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옷을 여러 벌 사기 시작했다.
악명 높은 알리 익스프레스에 가입한 남편은 쇼핑하는 재미에 들렸는지 옷을 계속해서 주문했다.
어느 날 밤, 안방에서 홀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남편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뛰쳐나왔다.
이제 막 잠이 들려던 아이와 나는 무슨 일인지 물었지만 남편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잠시 뒤, 구글플레이가 순식간에 97만 원까지 결제가 되었고, 남편은 내가 묻는 물음에도 패닉에 빠져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완벽한 사생활 보호가 된 액정 필름 때문에 나는 어찌 된 일인지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남편은 처음 스미싱 문자에 당하고 말았다.
남편의 증언으론,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온 택배 문자가 시작이라고 했다.
택배 주소가 잘못되었다는 링크를 보고 남편은 아무 의심 없이 링크를 누르고 말았고, 그때 휴대폰 본인 인증까지 마치고 만다.
예상되는 바와 같이 주소 변경은 할 필요도 없었다.
스미싱 사기꾼들은 남편이 본인인증을 마치자 통신사 콘텐츠 이용료를 순식간에 한도 97만 원까지 결제를 해버린 것이다. 그 와중에 3만 원은 남편이 이미 결제를 해서 피해가 덜 했다.
그렇게 한도 100만 원을 채우고 나서야 결제 알람은 멈추었다.
패닉이 된 남편을 대신해서 난 통신사에 전화를 하고, 구글 플레이 측에 문의를 남기고 경찰서에 전화를 했다.
그날 밤 97만 원을 잃었다는 사실과 스미싱 사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남편은 그날도 회사가 바쁘다며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매일 하는 현관문 앞에서의 뽀뽀도 잊지 않았다.
남편은 내게 바쁜 자신을 대신해 피해 입은 것들에 대하여 처리해 주기를 부탁했다.
그렇게 남편의 아이디로 들어간 구글에서 겨우겨우 상담사와 채팅을 시작하고 9번에 걸쳐 결제된 내역을 보내고 우리는 결제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남편은 네이버 아이디도 노트북에 자동로그인을 해놓았다. 남편의 알리 익스프레스는 네이버와 연동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네이버페이 결제 내역을 살펴보다 나는 남편이 여성 운동화를 구매한 내역을 보게 되었다. 이미 남편 회사로 배송 완료된 상태였고 가격은 14만 9천 원이나 했다.
내가 평소에 신지 않는 가격대의 운동화다.
이제 일주일 뒤면 우리 부부의 10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그리고 또 2주 뒤에는 내 생일이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나를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임을 직감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운동화가 내 발 사이즈보다 작다.
결혼기념일은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운동화는 지금으로부터 3주 전에 이미 주문하여 도착한 상태였다.
정말 이상했다.
제발 아니기를 바랐다.
사실 그전부터, 몇 달 전부터, 훨씬 전부터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결국 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야 만다.
눈앞이 하얘진다는 것이 이런 말이구나. 내가 평소 남편 핸드폰을 잘 보지 않을뿐더러, 애플은 사용한 지가 어언 10년이 넘은 때라 조작이 서툴렀다. 그렇게 내가 미디어에 도태된 여자라 생각돼서 일까, 아님 의심조차 안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남편은 너무 쉽게 내게 자신의 핸드폰을 맡겼다.
남편의 핸드폰에는 불륜의 증거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