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촉이 좋은 편이다

by 리안

나는 촉이 좋은 편이다.

모든 분야에서 촉이 좋은 것은 아니고, 바람피우는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대학 시절 친구 남자 친구들의 바람기도 내 눈엔 쉽게 보였으며, 남편 몇몇 회사 동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불륜의 기운이 솔솔 풍겼다. (실제 불륜 사건이 크게 터졌다.)


3월 초, 나는 아이와 함께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 여행을 다녀왔다.

효도 여행을 간다고, 현금 백만 원을 쥐어주던 착한 남편이었다. 그동안 어렴풋이 느껴지던 의심의 촉을 나는 애써 접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온 뒤, 그 불길한 느낌은 내가 너무 잘 아는 그것으로 변해있었다.


여행 중, 남편은 캠핑장에 왔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남편과 친한 회사 남동생들이 함께 있었다.

"재밌게 놀아~"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바보같이 웃으며 재밌게 놀으란 말을 했다.

알고 보니 캠핑장에는 상간녀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스킨쉽과 애정표현이 많은 부부였다.

오랜 시간 만나 서로 익숙함도 있었지만 그 세월만큼 편안함도 있었다. 서로를 잘 안다는 것, 그만큼 서로가 좋아하는 스킨쉽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가 좋아하는 스킨쉽을 할 때면 약간의 재미도 있었고 만족감과 행복함이 늘 함께했다. 그런데, 효도 여행을 떠날 즈음 부터 스킨쉽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회사 업무가 바빠 피곤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같은 이유로, 그렇게도 하기 싫어하던 출근을 한참이나 일찍 하는 날이 많아졌고, 늦게 퇴근 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 무렵, 남편은 핸드폰 비밀번호를 바꾸고, 화면도 사생활 보호 필름으로 바꿨다.
새 비밀번호를 알고 싶지도 않고, 비밀번호를 바꾼 이유를 묻고 싶지도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말들로 얼버무리기에 더 묻지 않았다.

남편은 목욕할 때도, 집안 어디서든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늘, 꼭 쥐고 다녔다.


원래도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매일매일 1일 1팩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새 옷을 여러 벌 샀다. 분명 작년 말레이시아와 방콕에서 본인 옷을 욕심껏 사 왔었는데도 계속해서 옷을 샀다.


집밖에 나가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의 성격때문에, 반려견 산책은 항상 내 몫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갑자기 운동을 좀 해야겠다며 쉬는 날마다 산책을 꼬박꼬박 나가기 시작했다. 동네 산책을 나갈 뿐인데도, 새로 산 옷으로 치장을 하고선 말이다.


내 모든 감각이 말했다.

"남편은 외도 중이다."


긴 연애 끝에, 엄청난 거리의 롱디를 극복한 우리.

우리 둘을 닮은 예쁜 아이를 낳고 매일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던 우리.


나는 정말 무서웠다.

퇴근 후, 아빠와 함께 있고 싶다는 아이를 무관심으로 내보낸 뒤 침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가 정말 무서웠다.


무언가 변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었지만 그 사실을 직면하기엔 나는 남편을 많이 사랑하고 있었다.

17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을 사랑했다.


그리고 결국,

나는 그의 외도 사실을 직면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지옥을 살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스미싱 피해를 당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