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크리스마스, 아이의 소원은 단 하나였다.
“우리 가족을 행복하게 해 주세요.”
지금 그 말을 떠올리면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저릿하다.
그토록 순수하고 따뜻한 바람을 나는 엄마로서 지켜주지 못했다.
그 무력감에 가슴이 너무 아프다.
우리는 정말 행복한 가족이었다.
소소하지만 웃음이 있었고, 함께라는 이유만으로 따뜻했던 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날 이후,
나는 애써 그 여자의 흔적을 외면하려 했다.
상간녀.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역겹고 수치스러웠기에 그 여자의 프사를 보지 않았고, SNS를 들여다보지도 않으려 노력했다.
그것마저 나를 더 상처 입히고 망가뜨릴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곧 상간녀의 생일이라는 걸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어 조심스레 프사를 확인했다.
프사엔 본인의 새로운 셀카가 올라와 있었다.
생기 있고 밝은 얼굴.
내 가정을 망가뜨리고도 죄책감 없이 아무렇지 않게 셀카를 올렸다. 세상이 정말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그녀의 또 다른 SNS에는 여전히 남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들은 지금도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소송을 당하든, 가정을 무너뜨렸든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조심스레 따져 물었다.
“이제 정말 끝난 거 맞아?”
그는 무심하게 말했다.
“헤어졌는데 걔가 사진을 안 내린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리고 내가 다시 묻자,
“정말 헤어진 거야?”
그는 되려 화를 내며 말했다.
“다시 사귀라는 거야 뭘 어쩌라는 거야?”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이토록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상처를 더하는 말.
그가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맞는지, 정말 가족을 함께 만든 남편이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남편은 내게 말했다.
내가 동종 업계에 종사하지 않아 대화에 공감이 없었다고, 그리고 가끔은 선생님처럼 말해서 답답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내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내가 감정을 쏟지 않았던 건, 내가 남편보다 더 이성적이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더 큰 논쟁을 피하기 위해 늘 감정을 눌러왔기 때문이다.
이성을 잡아보려고 했던 나름의 방식이었다.
어쩌면 더 괴로웠던 건, 그녀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었다면 그의 선택을 '이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는 점이었다.
어리다는 ‘젊음’ 하나. 그게 전부였다.
그저 젊다는 것 하나로, 남의 가정을 무너뜨린 죄의 대가를 외면한 채 여전히 자기 삶을 화사하게 꾸미고 있다.
하지만 남의 슬픔 위에 지은 인생은 결국 언젠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난 알려주려 한다.
나는 언제나 지키는 사람이었다.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사람이었고, 아이에게 따뜻한 집을 주고 싶었던 엄마였다. 그런데 그 무게를 가장 잘 알고 있으리라 믿었던 남편은,
함께 무게를 짊어지고 나아간다 믿었던 우리의 삶은 모두 내 착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의 가장 순수한 소원 하나조차 지켜주지 못한 무력한 엄마로 남았다.
이 아픔을 어떻게 씻어낼 수 있을까.
남편이 남긴 건 단지 배신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의 꿈과 믿음을 짓밟은 죄악이었다.
그 상처를 지켜봐야만 하는 엄마로서의 무력감은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할 수 없다.
이 상처는 정말 시간이 해결해 줄까.
나는 언제쯤 아이 앞에서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을까. 그들이 무너뜨린 이 가정의 자리를 나는 어떻게든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다시 행복해지자는 바람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이 시기엔, 그저 이 아픔이 너무 오래가지 않기를.
아이의 미소 뒤에 슬픔이 자라나지 않기를.
그리고 언젠가, 아주 언젠가 내가 오늘을 견뎠다는 그 이유만으로라도 조금은 덜 아프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 아픔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 나와 내 아이의 미래를 스스로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단단해질 것이다.
나는 이 고통을 결코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