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막내다. 부모님과 두 언니, 오빠의 사랑이 쏟아지는 막내로 자랐다.
나는 착하고 늘 순종적이며 공부 열심히 하고 남을 배려하는 아이였다. 학교에서 인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금은 조용한 그런 평범한 아이였다. 상황에 순응하며 지냈다. 학생이니 공부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인 1980년대에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넉넉지 못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집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늘 셋방살이를 하면서 지냈는데 오빠에게는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로 방 한 칸을 따로 주고 딸 세명과 엄마, 아빠는 한 방에서 지냈다. 한때는 친척오빠가 우리 집에 유학을 와서 지내기도 했다. 내가 어려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런 상황을 별 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학교에서 살림살이 조사할 때 우리 집은 해당되는 물건이 없어서 당당히 손을 들 수가 없었던 것이 약간은 비참한 마음이 들뿐이다. 어른이 돼 돌아보면 어떻게 그렇게 살았을까 신기할 때도 있지만 과거의 내 삶이 그리 가슴 아픈 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아빠는 가정을 잘 지키지 못했다. 술을 드시고 오시면 폭력과 술주정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다. 집에서 난동을 부리면 이불속에서 무서워서 덜덜 떨며 숨어 지냈다. 아빠는 술을 마시면 미친놈이 되어버리는 걸까? 갑자기 엄마 옷을 불태우고 식구들을 때리기도 했다. 언니는 동네방네 다니면서 엄마 살려 달라고 구원 요청을 하러 간 적도 있다. 난 바보처럼 상황이 빨리 끝나기 만을 기다렸다.
왜 나는 아빠한테 소리한 번 치지 못했을까? ‘아빠 왜 그래?’, ‘아빠 나가?’라고 한 번이라도 말했어야 했다. 그렇게 못했던 게 돌아가신 엄마한테 언제나 미안하다. 그때 당시 아빠한테 한 번만이라도 대드는 싹수없는 딸 역할을 했다면 엄마한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난 바보처럼 숨어있기만 했던 게 늘 후회가 된다.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에게 그런 가정형편을 드러내 본적이 없이 조용히 웃으며 지냈다. 친구들은 내가 그렇게 어려운 환경이란 것을 몰랐을 것이다.
중2 때 아빠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난 중학교 2학 때 편부모 아이가 되었다. 학교에 내야 하는 서류를 작성할 때 부모의 직업이나 가족 현황을 적는 칸에 나는 아빠와 관련된 것을 적을 수 없는 것이 창피하게 여겨졌다. 편부모라는 게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중, 고등 시절에 감당하기에는 힘들었다. 미운 아빠였지만 우리 곁에 없다는 게 괴로웠다.
가정형편은 더 어려워졌기 때문에 엄마와 형제들은 각자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다. 난 어리고 막내라는 이유로 대학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용돈까지 기댈 상황은 못 됐다. 용돈은 스스로 챙겨야 했기에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다.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인 환경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힘들다고 느껴보진 못했다.
호프집이나 커피숍, 분식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보았다. 좀 더 시간당 지급액이 많은 것을 찾아보니 동원참치 대리점 판촉사원 업무가 있었다. 시장 골목에서 참치나 햄 같은 것을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 것이었다. 추운 겨울날 시장통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물건을 팔아봤다. 또 한 번은 백화점 매대에서 칫솔을 판매하는 것이었는데 사장님이 판매실적이 너무 안 좋다고 혼내셨다. 그때는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숙이고만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힘들었지만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이 나중에 첫 직장 입사 면접을 볼 때 도움이 많이 되었다. 면접관들이 물어보는 질문에 경험담을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서 그런 점이 합격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배우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많은 아이들이 했었던 태권도, 피아노, 주산학원에 가보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에게 당당히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요구할 수 없었다. 겨우 맘먹고 주산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다. 2~3달 정도를 신나게 다니며 열심히 배웠다
그것만도 감사했다. 태권도, 피아노는 말도 꺼내 볼 수 없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엄마에게 떼라도 써볼 걸 하고 후회해보기도 한다. 속으로 생각한 말을 쉽게 꺼내는 게 내겐 참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 눈치 보면서 속내를 말하지 못하고 참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이런 말을 한다. '철들었네.' 나는 이 말이 참 싫다.
‘그 나이답다’라는 말처럼 사람이 살면 좋겠다. 10살이면 10살처럼 눈치 없이 막말도 하고 응석도 부려도 된다. 20,30대가 되면 도전도 해 보고 실패도 해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40대 이후 어른이 되면 어른 다운 모습을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권도와 피아노에 대한 열망은 성인이 되어 해결했다. 태권도는 딸들에게 모두 배우게 했는데 둘째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이다. 7년 전에 동네 피아노 교습소에서 배우기를 시도했지만 어려워서 넉 달 정도 하고 포기했다. 그때서야 피아노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릴 적 공부했던 이유는 단 하나이다.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 후 취직해 돈을 벌고 싶었다. 돈 걱정 없이 배우고 싶은 모든 것을 실컷 배우고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