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을땐 일기를 써.

어느새 일기를 쓰기 시작한지 18년 차

by 이H

학창시절,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이 많아 잠 못 드는 나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다. “생각이 많을 땐 일기를 써.” 산만함의 극치였던 나의 학창시절. 선생님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나에게 제발 5분만이라도 가만히 있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튀는 걸 좋아했던 나는 반장, 부반장, 전교 회장을 도맡아 했고, 학급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자리 배치를 위한 투표 하나도 평범하게 하지 못하고 경매식으로 진행하다가 다른 반 선생님께 크게 혼난 적도 있었다. 아마도 생각이 너무 많은 내가 그것을 거르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다 보니 그런 사단이 났던 것 같다.

말도 많고 생각도 많던 나는 생각을 거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그것들을 다 표출해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부모님은 당시 맞벌이를 하셔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어줄 시간은 없었고, 나는 이 모든 걸 많은 친구들과 풀었다. 낮에 실컷 놀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어도 부족했다. 나의 많은 생각을 다 들어줄 사람도 없었고, 하루 몇 시간씩 떠들어도 내 생각의 10%도 받아줄 재량이 없었다.

중학교 시절을 그렇게 보내고, 고등학교에 올라와 그림을 배우면서 조금은 그림으로 풀어내는 방식을 알게 된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미술 입시 교육은 주입식이어서 그마저도 오래가진 못했다. 그 무렵 누군가 나에게 “일기를 써보라”고 했던 것 같다. 누구인지 정말 기억나지 않지만, 그에게 너무 감사하다.

그 이후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한 번, 바쁠 땐 한 달에 세네 번 정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많은 생각을 일기에 쏟아내고 나면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글을 한가득 써내도 풀리지 않는 고민들이 많지만, 그럴 땐 지난 일기를 읽어보며 한시름 놓는다. '과거의 나도 힘들었지만 결국엔 다 해결이 되었구나.' 그림을 그리는 활동은 나에게 가장 좋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는데, 붓을 놓은 지 오래되다 보니 예전처럼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을 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래서 그럴 땐 일기라도 꾸준히 쓰려고 한다. 내 주변 친구들에게도 전도한다. 일기를 써라!. 나이가 들수록 나의 이 습관에 감사한다.

취업, 결혼, 이민, 아이… 인생에 여러 가지 큰일들이 생기면서 나는 종종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럴 때 일기를 읽으면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면서 다시금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 30대는 참으로 안정적인 나이라고 생각했는데, 30대 후반이 되어가니 또다시 인생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자아, 직업인으로서의 자아, 그리고 ‘나 자신’의 자아. 어떠한 것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야 할지… 그래서 또 이렇게 글을 쓴다. 가을 방학을 맞아 매일 일기를 쓰려 노력하고 있는데, 생각이 너무 많을 땐 브런치에 정리하게 된다. 최근 스레드에도 글을 조금 올렸지만 글자 수 제한이 있다 보니 긴 생각을 적기엔 아무래도 브런치가 제격인 듯하다. 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가끔은 이렇게 정적인 곳에 멈춰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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