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불완전한 용기

불완전함이라는 이름의 구원, 가장 인간다운 최선

by 느리게걷는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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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제목은 아이러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는 말은 완벽한 만족을 선언하는 감탄사처럼 들리지만,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그와 거리가 멀다. 강박증에 시달리는 소설가, 불치병 아들을 홀로 키우는 웨이트리스, 파산과 부상으로 무너진 화가. 이들의 삶은 결핍과 불안, 상처로 얼룩져 있다. 그럼에도 이 제목이 관객의 마음에 남는 이유는, 그것이 최상의 상태를 자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묻기 때문이다. 그 질문의 중심에는 멜빈 유달이 서 있다.


1. 예민함과 결핍으로 구축된 요새

멜빈은 첫 등장부터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보도블록의 틈을 밟지 않기 위해 우스꽝스럽게 점프하고, 식당에서는 늘 같은 자리에만 앉으며, 가져온 일회용 포크로만 식사한다. 타인을 향한 독설과 공격적인 언행은 그를 사회적 부적응자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삼중의 자물쇠를 걸어 잠근 문 뒤에서 멜빈은 수십 번씩 손을 씻는다. 뜨거운 물에 손이 벌겋게 익을 때까지 비누를 새것으로 바꿔가며 씻어내는 행위는 결벽이라기보다, 세상이라는 오염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그의 강박은 단순한 성격적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와 거리를 두지 않으면 무너질 것 같았던 한 인간이 구축한 요새에 가깝다. 남을 상처 입히는 말들은 사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의 흔적이다. 영화 중반 스쳐 지나가는 멜빈의 과거는 이 방어의 기원을 암시한다. 피아노 연습 중 실수할 때마다 아버지에게 손등을 맞던 기억. 그에게 세상은 규칙을 어기면 처벌이 내려지는 장소였고, 타인의 시선은 늘 위험했다.


2. 사소한 접촉, 감정의 근육을 깨우다

영화가 탁월한 지점은 멜빈의 변화를 거창한 각성으로 그려내지 않는다는 데 있다. 변화의 시작은 아주 사소하고 귀찮은 사건, 이웃 사이먼의 강아지 ‘버델’을 마지못해 맡게 되면서부터다. 사람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온기를 거부하던 멜빈은, 조건 없는 애정을 갈구하는 작은 생명체를 통해 오랫동안 퇴화해 있던 '감정의 근육'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아지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고, 강아지의 걸음걸이에 맞춰 자신의 규칙(보도블록 틈 밟지 않기)을 수정하는 멜빈의 모습은 관계의 회복이 거창한 희생이 아니라 자리를 조금 내어주는 사소한 배려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이 작은 접촉은 타인이라는 세계로 나아가는 징검다리가 되고, 곧 캐롤과 사이먼에게로 확장된다.


3. 사랑이라는 변수가 가져온 ‘균열’

캐롤은 멜빈이 구축한 요새에 가장 큰 균열을 내는 인물이다. 그녀는 멜빈의 독설에 굴복하지 않으며, 그가 정한 규칙을 무시하고 인간 대 인간으로 맞선다. 멜빈이 캐롤에게 끌리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친절해서가 아니다. 그녀 앞에서 그는 자신의 방어막이 작동하지 않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그 무너짐은 파멸이 아니라, 평생 긴장 속에 살아온 그에게 처음으로 숨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틈’이 된다.


“당신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이 말은 단순한 사랑 고백이 아니다. 평생을 자기중심적인 강박 속에 갇혀 살던 남자가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을 긍정하며 내뱉는 '인생 최초의 치료처방'처럼 들린다. 실제로 그는 이 고백 직후, 그토록 거부하던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한다. 타인을 위해 변하고 싶다는 의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이 여전히 회복 가능하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다.


4. 타인은 지옥인가, 출구인가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선언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으로 존재하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드러낸 고백에 가깝다. 타인은 나를 바라보는 동시에 규정하고 고정시키는 존재이며, 그 시선 앞에서 인간은 쉽게 자신을 잃는다.


멜빈에게 타인은 오랫동안 지옥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평가였고, 그들의 접근은 오염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사이먼과 캐롤을 통해 사르트르의 명제에 질문을 던진다. 파산하고 얼굴에 지울 수 없는 흉터를 입은 화가 사이먼은 멜빈에게 '함께 아파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멜빈은 사이먼의 재기를 도우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타인은 나를 구속하는 지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누구인지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다. 멜빈은 캐롤과의 여행을 통해 타인의 불편함을 견디고, 자신의 어설픔을 드러내는 법을 배운다. 타인이라는 지옥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인간다움의 영역이 있음을 영화는 멜빈의 서툰 발걸음을 통해 보여준다.


5. 완벽(Perfect)이 아닌 충분함(Good Enough)의 미학

영화의 결말에서 멜빈은 여전히 불완전하다. 강박은 사라지지 않았고, 삶의 조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녘 캐롤과 함께 빵을 사러 가는 길, 그는 무의식중에 보도블록의 금을 밟는다. 평생 자신을 옥죄던 규칙이 타인과 나란히 걷는 시간 속에서 조용히 느슨해진 것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말하는 최선은 'Perfect'가 아니다. 상처 입은 인간이 또 다른 상처 입은 인간을 만나, 서로를 완전히 구원하지는 못하더라도 조금 덜 아프게 견뎌주는 일. 완벽해지지 않아도, 곁에 머물러 보려는 선택. 어쩌면 가장 인간다운 최선은 바로 불완전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명장면: https://youtu.be/0q8RjlnLNeY?si=oP-Kjm1i32bTC0J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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