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을 걱정하던 자매들, 로맨스를 통한 성장 서사
숫자 앞에서 난파되기 쉬웠던 사랑의 시대
18세기 영국, 법과 재산은 여성의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노랜드 저택은 이복오빠의 소유가 되었고, 평생 그곳을 고향이라 믿었던 자매와 어머니는 하루아침에 ‘머무는 사람’이 되었다. 그들이 옮겨간 바턴 코티지의 오두막은 초라했지만, 더 낯선 것은 하루아침에 생계를 걱정해야하는 현실이었다. 설탕값을 걱정해야 하는 가문의 여식은 감정을 사치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영화 <센스 앤 센서빌러티>는 이 냉혹한 조건 위에 두 자매를 세운다. 이성(Sense)이라는 단단한 제방이 되어 파도를 묵묵히 견뎌내는 언니 '엘리너'와 감성(Sensibility)이라는 뜨거운 돛을 올려 열정의 바다로 나아가는 동생 '마리앤'이 겪는 영혼의 산고(産苦)를 그린다. 맏언니 엘리너의 이성이 가족의 생존을 지켜내기 위한 묵묵한 '버팀'이었다면, 동생의 감성은 비루한 현실 너머의 낭만을 가로지르는 간절한 '노래'였다. 숫자에 의해 사랑이 난파되기 쉬운 시대,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견디는 두 자매는 서로의 항로를 지켜주는 동료이자, 같은 운명에 처한 조난자였다.
1. 사랑, 아름다움 안에서 미덕이 자라는 시간
플라톤은 《향연》에서 사랑을 묻는다. 그는 사랑의 목적이 단순히 상대를 소유하는 데 있지 않다고 말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것 안에서 무언가를 낳는 일, 곧 인간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할 때 비로소 내 안에 잠들었던 미덕을 발견하며, 영혼의 완전성을 향해 나아간다.
언니 엘리너가 사랑한 에드워드는 부유한 가문의 아들이었지만, 어머니의 압박과 오래된 약혼이라는 족쇄에 묶여 결단을 미루던 조난자였다. 그는 윌리엄 쿠퍼의 시 구절처럼 "거친 바다 속에서 그보다 깊은 비탄에 빠져" 있었으나, 엘리너의 영혼과 교감하며 마침내 침묵을 깨뜨린다.
엘리너 역시 그가 오래전 다른 여자와 약혼했다는 고백을 듣고도 분노 대신 품위를, 원망 대신 절제를 택하며 자신을 벼려낸다. 그들에게 사랑은 상대를 차지하는 쟁취가 아니라, 각자의 삶에서 더 나은 선택을 가능케 하는 힘이었다.
반면 동생 마리앤은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읊으며 윌로비와 뜨거운 열정에 매몰된다. "변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변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노래했던 그녀의 믿음은, 부유한 상속녀를 택한 윌로비의 비겁함 앞에서 산산조각 난다.
무너진 마리앤을 건져 올린 것은 브랜든 대령이었다. 그는 윌로비처럼 화려한 수사를 늘어놓지 않는다. 마리앤이 다른 남자를 사랑할 때조차 그 선택을 존중했고, 실연으로 쓰러졌을 때는 말없이 곁을 지켰다. 그의 태도는 말보다 분명하다. 사랑은 때로 불꽃이 아니라, 상대가 다시 숨을 고를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그는 보여준다. 마리앤은 그를 통해 다른 종류의 사랑을 배운다. 감정의 격렬함이 아니라 신뢰의 지속성, 소유의 욕망이 아니라 돌봄의 책임. 사랑은 우리를 시험하지만, 그 시험 속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2. 영혼의 해산, 그리고 가장 뜨거운 오열
영화의 절정은 실질적 가장으로서 이성의 제방을 쌓아왔던 엘리너가 참아온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이다. 가난과 도덕적 의무라는 벽에 가로막혀 포기했던 에드워드가 돌아와,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진심을 고백할 때 그녀의 제방은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비로소 문을 연다.
"제 자신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죠. 한 마디만 하려고 아무 기대도 없이 왔습니다.
제 가슴은... 언제나 당신의 것이었습니다."
에드워드의 고백 앞에서 엘리너가 쏟아낸 오열은 단순한 감정의 분출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내라는 자궁 속에서 길러낸 진심이 비로소 세상 밖으로 터져 나온 '영혼의 가장 뜨거운 해산'이었다. 우리는 흔히 이성이 감성을 억누른다고 생각하지만, 엘리너에게 이성은 감성을 가두는 감옥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고귀한 감정이 현실의 비바람에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태어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준 단단한 울타리였다.
이성이 견고할수록 그 안에서 태어나는 감성은 더 깊은 생명력을 얻는다. 마치 거친 강물이 튼튼한 제방을 만날 때 비로소 범람하지 않고 깊은 수심을 이룰 수 있는 것과 같다. 엘리너의 절제는 감정을 메마르게 한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가장 고귀한 형상으로 잉태될 수 있도록 묵묵히 기다려준 시간의 다른 이름이었다.
3. 길을 잃은 자들이 서로의 북극성이 되는 법
시선을 빼앗기던 화려한 불빛이 사라진 후에야,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누군가의 진심을 발견할 때가 있다. 열정적인 감정은 쉽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열기가 식은 자리에서 남는 것은 결국 태도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가 끝내 보여주는 것은 사랑의 성공담이 아니라, 선택의 기록이다. 누군가는 상속을 택했고, 누군가는 책임을, 또 누군가는 정직을 택했다. 그 선택이 각자의 얼굴을 만들었다.
엘리너는 절제 속에서 품위를 지켰고, 마리앤은 상실을 통과하며 성숙을 배웠다. 그리고 브랜든 대령은 사랑이란 상대를 흔드는 힘이 아니라, 무너질 때 붙잡아주는 힘임을 증명했다.
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