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반 윙클의 신부> 껍질은 ‘벽’인가, ‘집’인가

이와이 슌지 감독, 살아남기 위한 나선형의 기록

by 느리게걷는여자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립반 윙클의 신부>는 껍질을 벗길수록 더 깊은 거짓이 드러나는 역발상의 무대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 아니라, 오히려 정교하게 설계된 거짓의 겹을 쌓아감으로써 한 인간의 부서진 자아를 재건하는 나선형의 생존기록을 보여준다.


1. 희미한 미소라는 가면: 존재를 지워야 살 수 있었던 시간

나나미는 늘 존재감을 지우며 사는 '숨는 존재'다. 중학교 기간제 교사인 그녀는 '희미한 미소'라는 가면을 쓰고 산다. 학생들 앞에서 조차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상급자 앞에서는 얼어붙는다. 희미한 미소는 부당한 상황 앞에서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녀의 세상에서 타인과의 갈등은 버림받을 지도 모르는 위협이었기에 갈등을 회피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짓 자기(False Self)'라는 보호장치인 셈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로 인한 애착 트라우마는 그녀에게 '나 따위'라는 깊은 수치심을 심어주었다.


나나미는 결혼을 핑계로 화상 원격 수업을 그만두려 하지만, 제자인 아이는 "선생님 말고 다른 사람은 싫다"며 그녀를 붙잡는다. 누군가에게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이 생소한 경험은, 산소 부족에 시달리던 그녀의 자아에 공급된 첫 번째 인공호흡장치였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은 타인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통해 자아를 확인(Mirroring)한다. 평생 자신을 지워왔던 나나미에게 아이의 순수한 매달림은 "너는 여기 존재해도 괜찮다"는 강력한 실존적 승인이었다.


2. 가짜 결혼식에서 시작된 현실세계의 연극

SNS에서 만난 남자와 서둘러 결혼을 결심한 나나미. 오래전 이혼한 부모님은 가짜 부부행세를 하며 상견례를 치르고, 하객이 없어 심부름 센터 직원 '아무로'를 고용해 치른 가짜 같은 진짜 결혼식은, 나나미를 더 깊은 연극 속으로 밀어 넣는다. 스스로를 '배우'라고 소개하던 아무로는 정교한 계략으로 가짜 치정 사건을 설계하고, 나나미는 한순간에 남편에게 버림받으며 길바닥에 내던져진다.


모든 것을 잃은 나나미에게 아무로는 다시 접근해 위로를 가장하며, 가짜 치정은 모두 남편이 꾸민 일이라 믿게 만든다. 이 정교하게 설계된 '거짓 확신' 위에서 나나미는 생애 첫 욕설인 "빌어먹을!"을 내뱉는다. 이 분노는 윤리적으로는 기만당한 결과물이었지만, 심리적으로는 부서진 자아를 지탱하는 '인공관절'과 같았다. 평생 미소 가면 뒤에 억눌렀던 분노가 '거짓'이라는 완충 장치를 빌려 처음으로 터져 나왔을 때, 그녀는 비로소 다시 움직일 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3. 수족관의 미끼, 그리고 소라 껍질의 연대

나나미는 아무로의 제안으로 하객 대행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며 마시로를 만나고, 파격적인 조건의 대저택 가정부 배역을 맡는다. 화려하지만 독을 지닌 생물들이 유영하는 그 저택은 거대한 수족관과 같았다. 사실 이 모든 설정은 홀로 죽기 두려웠던 말기 암 환자 마시로가 던진 '미끼'였지만, 나나미는 그 안에서도 아이와의 원격 수업을 지속하며 현실의 산소를 길어 올린다. 수족관이라는 가상 세계에 던져진 나나미에게 아이의 목소리는 유일하게 진실의 세계와 연결된 인공호흡기였다.


나나미와 마시로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존재론적 수치심'이다. 나나미가 희미한 미소로 자신을 지워냈다면, 마시로는 포르노 배우(AV)라는 극단적인 배역을 통해 육체를 드러내되 '진짜 자아'는 철저히 은폐하는 방식으로 생존해왔다. 마시로는 자기가 고른 물건을 비닐 봉지에 담아주는 편의점 점원의 친절을 두고 "견딜 수 없이 무거웠다"고 고백한다. 돈만 지불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가벼운 친절조차 '나 따위'에게는 너무 과분한 것이라는 울먹임은 세상의 호의조차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텅 빈 자아의 고백이었다.


대저택의 모든 거짓을 알게 된 후에도 마시로를 걱정하는 나나미의 투명한 진심은 마시로의 마음을 열리게 한다. 평생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여기던 마시로에게 이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경이로운 경험이 된 것이다. 정신적 쌍둥이처럼 가까워진 두 여자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던 밤을 보낸 뒤, 마시로는 소라 껍질을 쥔 채 숨을 거둔다. 두 사람은 가짜 바다 소리를 품은 소라 껍데기 안에서 비로소 서로의 온기를 안전하게 수용했다.


4. 나선형의 생존과 '하얀 상자'라는 선택

엔딩에서 나나미가 눈을 가리고 쓴 '하얀 상자'는 마시로가 남기고 간 '소라 껍질'의 변주다. 나나미는 귀를 막는 대신 눈을 가리는 방식을 택한다. 견디기 힘든 타인의 시선을 차단하고 오직 상자 안의 어둠 속에서 자기만의 보폭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더는 거짓 세계의 배역으로 머물지 않고, 현실의 세계에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그녀만의 주체적 선택인 셈이다.


소라는 성장할 때 기존의 껍데기를 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몸에서 석회질을 분비해 입구를 조금씩 넓혀가며 새 집을 이어 붙인다. 소라 껍질의 나선형 무늬는 소라가 살아온 시간의 기록이다. 과거의 상처와 방어기제를 통째로 버리는 탈피가 아니라, 그것을 품은 채로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이다. 나나미의 하얀 상자 역시 평생 갇혀 살기 위한 감옥이 아니라, 자생력을 회복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완충 지대다. 인공관절이 손상된 뼈를 대신해 다시 걷게 하듯, 하얀 상자는 나나미가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을 마주하겠다는 '이동식 요새'가 된다. 나나미는 이제 어제의 껍데기를 껴안은 채, 한 뼘 더 넓어진 나선형의 세계를 향해 묵묵히 걸어 나간다.


5. 이 영화가 남긴 질문

영화를 통해 새로 알게 된 진실이 있다. 때로는 가벼운 진심과 친절이 상처투성이인 누군가에게는 감당 못 할 무게가 되고, 오히려 거리와 경계가 부서진 자아를 재건하는 '인공관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이 생존을 위해 두른 껍질은 당신을 고립시키는 ‘벽’인가, 아니면 당신을 살게 하는 ‘집’인가.



***

이 영화의 모티프가 된 워싱턴 어빙의 단편 소설 속 인물 '립반 윙클'은 산속에서 신선들과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20년 만에 깨어나 변해버린 세상에 당황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영화 속 나나미 역시 아무로가 설계한 거짓의 세계(산속)에서 꿈같은 연극을 치른 뒤, 마시로의 죽음 이후 홀로 현실(마을)로 돌아온 현대판 립반 윙클의 여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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