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물주'

작은 선행에 대하여

by 느리게걷는여자

2016. 7. 28. 습하고 더움

해가 길어진 후, 나의 평일 일과 중 하나는 하루 3-4 시간 씩 놀이터를 지키는 일이다. 한참 뛰놀기 좋아하는 6살 아이가 어린이집 반일 반을 마치고 하원하는 오후 3시 부터 저녁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놀이터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 그런지 도시에 비해 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지만은 않은 거 같다. 미취학 아동뿐만 아니라 10살 전후까지의 초등학생들도 놀이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 아이처럼 엄마와 나온 아이들이 있는 반면, 개중엔 맞벌이로 혼자 나온 아이들도 몇몇 있다.

놀이터 출근 전, 가장 큰 보온병에 물을 챙기는 건 필수가 됐다. 더운 날씨에 뛰어놀다 보면, 땀이 나고 목이마른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어디 목이 마른 게 내 자식 뿐이랴? 혼자 나온 아이들에게 물을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반복, 아이들이 처음에는 고마워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어느 순간 나를 보면 '당연하듯이' 물을 찾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물水을 대는 '물주'가 된 것이다.

속 좁고 쫀쫀한 '물주 이모'는 아이들의 '당연함'이 못마땅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 때문에 간혹 내 아이가 충분히 물을 마실 수 없을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집에 가서 물을 또다시 떠와야하는 번거로움도 감당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아이가 수족구에 걸리는 일이 발생했다. 전염병이라 격리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일주일간 놀이터에 출근하지 못했다. 그동안 아이들이 '물주는 이모'를 찾진 않았을까 걱정 반, 호기심 반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심 물 주던 그 아이들에게 정이들었나 보다.

장자크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명상》에서 '선행'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요지는 선행을 행할 땐 '즐거운 마음'이어야하지 '의무'가 되어 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아이들에게 쫀쫀한 마음을 품은 순간, 나의 행위는 '선행'이 아닌 '의무'가 되었던 거 같다.

오랜만에 본 그 아이들이 반갑다. 이왕 좋은 마음으로 시작 된 일, 즐거운 마음으로 그 아이들의 '물주'가 되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