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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롱박 Oct 29. 2021

<식사하고 가세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

등장인물

다정 : 40대 중반 여자. 혼자 살고 있다. 

인테리어 기사 : 30대 중반. 남자. 다정의 집에 출장을 왔다. 


늦은 밤 

늦은 오후


다정의 집. 



1. 소리


다정이 샤워를 하고 있다. 샤워기의 물소리가 들린다.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문 너머로 들린다. 

순간, 창문 덜컹이는 소리. 

멎는다. 

잠시 후 다시, 창문 덜컹이는 소리. 


고양이가 운다. 


샤워기의 물소리가 멈춘다. 다정의 흥얼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다시, 창문 덜컹이는 소리. 

다정의 흥얼거림이 멈춘다. 조용하다. 잠시.


다정 : 누구세요?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정 : 딸?


잠시. 이어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린다. 

다정은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나온다. 수건으로 대충 몸을 감싼 모습이다. 


다정 : 딸? 엄마 불렀어? 왜 그래. 금방 나올 건데 왜 찾았어? 혼자라서 무서웠어?


다정은 고양이를 찾아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방문을 열고 고양이를 확인한다. 


다정 : 뭐야 여기 있었어? 그래 그래, 잘 시간이야. 코 자. 엄마도 금방 갈게. 


다정은 문을 닫고 부엌 의자에 앉는다. 머리를 싸매고 있던 수건을 풀어 머리를 말리려고 하는 순간

다시, 창문 덜컹이는 소리. 


다정 : 누구세요?


조용하다 갑자기 창문이 거세게 덜컹거린다. 


다정 : (화가 난 듯) 누구세요! 이 시간에 누구야? 누구야 너!


창문 덜컹이는 소리가 멈춘다. 조용하다. 바람소리가 난다. 

다정은 소리를 기다리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시 머리를 털어 말린다. 

샤워하며 흥얼거리던 노래를 이어서 부른다. 노래는 허밍이 된다. 

순간, 샤워실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다정 : 누구세요?


샤워실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난다. 


다정 : 거기 누구시냐고요!


물방울 소리가 멈춘다. 

다정은 소리를 기다리다, 다시 머리를 털어 말린다. 

잠시 후, 물방울 소리가 더 잦게 들려온다. 


다정 : 누구야!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다정은 거칠게 일어나 욕실로 향한다. 욕실 물품들이 부딪히고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다정이 다시 나온다. 손이 물에 잔뜩 젖어 있다. 


다정 : (화가 났다) 다들 너무 하네. 내가 혼자 사는 여자라고 이래도 되는 거야? 


순간 텔레비전이 켜진다. 24시간 뉴스 채널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다. 

현관 센서등이 번쩍 켜진다. 다시 번쩍 꺼진다. 

창문 덜컹거리는 소리가 나고, 욕실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시계의 알람이 울리고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도 난다. 

식기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냉장고의 소음, 방문이 닫히는 소리 등

생활 소음들이 쏟아지듯 들려온다. 


다정은 무기력하게 모든 자극들을 관망한다. 

잠시 후, 다정이 유령처럼 일어나 거실 전등 스위치까지 걸어간다. 힘겹게 스위치를 내린다. 

불이 꺼진다. 곧 다시 불을 켠다. 조용하다. 


다정 :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방 문을 열어본다. 


다정 : 딸?


고양이 울음소리가 난다. 


다정 : 그래, 우리 딸. 엄마는 괜찮아. 집이 너무 넓다. 나 혼자서는 이 집이 너무 넓어서 그래. 


암전. 



2. 창문과 문


조명이 들어오면 다정의 집. 출장 기사가 다정의 집 현관문 번호키를 수리하고 있다. 

다정은 기사의 옆에 서 있다. 짧은 반바지와 깊은 브이넥 민소매 티셔츠를 입고 있다. 


기사 : 저기, 아까 그 창문은 새시가 오래되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창문이 딱 닫힐 때 새시랑 꼭 맞아야 하는데 그게 다 삐뚤어져 버렸다니까요. 그건 어쩔 수가 없어요. 겨울 되면 웃풍도 심했을 텐데? 바람이 그 사이로 쌩쌩 들어왔을 텐데 그걸 어떻게 버텼어요? 그건 아예 새시를 바꿔야 해요. 보니까 적어도 15년은 넘은 것 같아요. 이 집 지을 때 만들어 놓고 한 번도 안 바꾼 것 같더라고. 집주인한테 전화하셔서 바꿔달라고 하세요. 큰 일이긴 하지만 그거 금방 해요. 


다정은 말없이 기사를 내려다본다. 

기사는 대답 없는 다정이 불편한지 자꾸 흘깃, 다정을 올려다본다. 

다정은 기사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웃는다. 그 모습이 기괴하다. 


기사 : 그리고, 이 번호키도 너무 오래된 거예요. 요즘은 지문인식이나 동공 인식되는 좋은 거 많아요. 여자 혼자 사는 집에는 이 도어락이 제일 좋은 걸로 되어 있어야 해. 요즘 얼마나 무서운 세상이에요. 저희 가게에 최신 제품까지는 아니더라도 쓸만한 것들 많이 있으니까, 그걸로 바꾸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왜 굳이 이런 올드한 모델을 계속 쓰시려는 건지 알 수가 없네요. 이번 기회에 싹 바꾸세요. 맘 놓이고 좋,

다정 : 기사님.

기사 : 네?

다정 : 식사하셨어요?

기사 : 네? 

다정 : 식사하셨냐고요. 

기사 :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아직 안 먹었죠. 이거 끝나고 퇴근하고 먹어야죠. 

다정 : 그럼 저희 집이 마지막 스케줄이신 거네요?

기사 : 네, 뭐. 그런 셈이죠?

다정 : 그럼, 저희 집에서 식사하고 가세요. 

기사 : 네? 제가 왜...

다정 :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밥 먹고 가시라고요. 오늘 일도 감사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서 같이 밥 먹으면 좋잖아요. 

기사 : 아닙니다. 제가 왜 여기서 밥을, 아니 괜찮아요. 아직 배도 별로 안 고프고, 

다정 : 스테이크 좋아하세요? 제가 얼마 전에 소고기를 좀 사뒀거든요. 저녁에 구우려고 올리브 오일이랑 로즈마리로 마리네이드 해 뒀는데 양이 좀 많아서요. 고기 금방 구우니까 먹고 가세요. 

기사 : 소고기요? 스테이크요?

다정 : 네, 제가 맛있게 해 드릴게요. 버터도 좋은 버터가 있어요. 같이 구울 때 숟가락으로 고기 위에 버터를 살살 올려가며 구우면 정말 맛있거든요. 굽기는 어떤 게 좋으세요? 미디엄 레어? 레어?

기사 : (손사래를 치며) 아니, 아니요. 괜찮습니다. 


기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다정 : 위스키는 좋아하세요? 저는 요즘 싱글몰트에 빠져서 유명한 거 몇 병 챙겨뒀거든요. 향이 정말 좋아요. 스테이크랑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기사 : 위스키요?

다정 : 네. 


기사와 다정은 말이 없다. 잠시. 


다정 : 마무리 다 하신 거면 손 씻고 오실래요? 제가 금방 구워 드릴게요. 식사하고 가세요. 샐러드부터 드릴게요 그거 먹으면서 잠깐 기다리시면 금방 만들어 드릴게요. 


기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주변을 살펴본다. 살림살이로 복잡한 좁은 거실과 짐이 가득한 부엌이 보인다. 


기사 : 저...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다정 : (희미하게 웃으며) 네?

기사 :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다정 : (화가 난다) 저도 그런 사람 아니에요. 

기사 : 도어락 수리는 끝났고요. 수리비는 문자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계좌 보내드릴 테니 거기로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기사가 서둘러 짐을 챙겨 현관문을 연다. 


다정 : 저기요! 기사님.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식사 한 끼, 

기사 : 됐습니다. 가 보겠습니다. 


기사가 나간다. 

문이 닫히는 소리. 조용하다. 

다정은 한 참을 그 자리에 서 있다. 잠시


다정 : 내가 뭐 다른 거 하자 그랬어? 밥이나 먹고 가라 그랬지. 


창문 덜컹거리는 소리가 난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현관문 센서등이 켜졌다 꺼진다. 


다정 : 씨발. 또 시작이네.




본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창작실험활동지원에 선정, 지원을 통해 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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