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이 꿈꿨어

23년전 별이 된 아이

by 글담쌤


오랜만에 현이랑 경주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답니다.

토. 일 1박2일을 함께 보냈어요.

30년 지기인 우리는 지난 세월 묵은 와인 같은 옛이야기를 꺼내며 행복합니다.


생생한 기억 하나...

울산을 떠나온지 3년차 되었을 무렵이다.

해가 뜨자 바로 현이한테 전화를 했다.

"현아 무슨 일 있어? 나 유진이 꿈꿨다."

"무슨 꿈?"

"유진이가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놀던 푸른 벌판 같은 데서 원피스를 입고 뛰어오는 꿈을 꿨어 아무 말 없었는데 편안해 보였거든. 내가 왜 갑자기 유진이 꿈을 꿨지? 유진이가 궁금해서 전화해 본다"




현이 대답이 없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

.

.

"은미야 유진이 갔어"

"응? 뭐라고? 가다니?"

"하늘의 별이 됐어. 1주일 됐어"

"뭐....?

그래 그날이었어

"갑자기 은마한테 전화가 온 거야. 그리곤 유진 꿈을 꿨다고 했어"

"얼마나 지났지?"

"23년 됐어"

"벌써?"

"응 유진이가 간지 23년이야"



처음 현이가 아픈 아이를 키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난 유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우리 집에서 5분도 안되는 골목 하나를 맞대고 있었기에 놀러 오라는 말에 두 돌이 안 된 아들을 엎고, 유진이네를 방문했다. 띵동 소리와 함께 "어서 오세요" 환하게 웃는 현이의 안내로 방으로 들어갔다. 이내 심장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리곤 뭐라고 첫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 딸이에요. 뇌성마비예요, 많이 아파요. 둘째는 아들이에요. 곧 첫돌이에요"


현이의 말보다 내 눈앞에 몸이 뒤틀린 여자아이가 앉은 보조기라고 해야 하나 몸이 뒤틀린 것을 잡아주는 의자에 앉아 힘겹게 나에게 시선을 주는 것 같았다.





난 아무렇지 않게 "안녕 이름이 뭐지?" 하고 딸아이 곁에 앉아 손을 잡았던 것 같다.

"유진이에요"

처음 만난 현이는 딸을 소개했다. 한쪽에는 잠든 귀여운 남자 아기가 있었다.

"아이가 둘이군요"

"작은 애는 남자 아기예요"

엎고 있던 아들을 등에서 내려놓자 어린 석이는 유진이를 보고 다가가 그냥 쳐다본다. 그러다 휙~ 몸을 돌려 자고 있는 아기 이마에 뽀뽀를 한다.


첫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한동안 멍~했다


놀라기도 했고 장애 아이를 키우느라 애쓰는 현이가 대단해 보였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오기 직전 울산 전하동 빌라에서 1층 남자아이가 뇌성마비 1급이라 그 엄마의 수고로움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 날인가 1층 벨이 계속 울리고 있었다. 가만히 듣다가 1층으로 내려갔다. 여름이라 2층에 사는 우리 집까지 띵똥 소리가 요란했다. 오지랖 넓게 무슨 일인지 1층으로 내려갔는데, 한 여자분이 나를 보더니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대뜸 말을 건다.


"무슨 일이세요?"

"집에 엄마가 안 계시나 봐요,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가야 하거든요"


처음 보는 선한 눈빛의 여자분은 1층 아이의 특수교사 선생님이셨다.

말투에서 이미 짐작이 갔다.

1층 큰 아들이 뇌성마비 1급인 걸 이미 아는 터였고, 가끔 1층 엄마라 차 한 잔을 나누는 사이라 대뜸

"제가 뭘 도와 드릴까요?"했다.

"아이를 부축해 주세요"

얼른 계단을 내려갔다. 1층 아들은 이미 청년으로 건장한 몸이였다. 역시 선생님은 고수셨다.

차에서 나보다 큰 아들을 내리는 것부터 맘대로 되지 않았다. 끙끙 거리는 사이에 급하게 1층 엄마가 뛰어왔다. 그리고 얼른 문을 열러 가고 난 아들을 안았다.

딱딱하게 굳은 몸, 비틀어진 사지, 찌그러진 얼굴이 바로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무거웠다

힘들게 선생님과 아들을 집안으로 안고 옮겼다.

엄마가 문을 열고 얼른 아들를 받아 안았다.


잠시였다.

기억은 정지되었는지 그날 그 시간이 생생하다

이름도 기억한 안 나지만 그렇게 처음 안아본 아들은 그 엄마의 힘듦이 한눈에 체험할 수 있었다. 그날이 한순간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처음이었다.


이어지는 방금 만나고 온 유진이의 모습!

이제 갓 7살이 안 된 어린 여자아이였다. 눈으로 보기엔 4살정도로 보였다.빼빼 마른 몸에 뒤틀어진 척추 때문에 딱딱한 의자 같은 보조기를 늘 차고 있어야 했다.

그걸 뭐라고 부르는지도 까먹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언제나 앉아야 했기 때문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고, 아이가 자랄 때마다 사이즈를 교체해 주워야 한다는 것은 기억이 난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앉혀두면 안 된다고 했다. 눕혀놨다 앉혔다를 반복했다. 수시로 기저귀도 갈아 줘야 했다.


소화력이 약해서 음식도 일반식을 마음대로 먹이질 못했다. 기억나는 건 카스테라를 우유에 찍어서 먹이는 모습이다. 부드럽게 잘 먹었다. 술술 녹는 우유에 찍은 카스테라...

힘들게 음식을 먹이는 엄마가 현이였다.


오랜만에 만나 유진이 꿈 이야기가 나왔다.

난 그러고 얼마 후 또 유진이 꿈을 꿨다.

현이에게 전화를 했다

"현아 나 또 유진이가 꿈에 보이더라"

"무슨 꿈"

"초록이 넓은 벌판이야 평지였어. 커다란 나무야 잎이 무성하고 그늘이 가득한 나무야. 그 나무에 그네가 달려있고, 유진이가 그네를 타고 있었어. 햇살이 따스하고 평화로워. 주변엔 아무도 없어 유진인 아무 표정이 없어 근데 느낌이 평화로워~"



%EC%BA%A1%EC%B2%98.JPG?type=w773



"은미야 유진이 49재다"

닭살이 돋는다. 어쩜 내가 두 번이나 유진이 꿈을...

할 말이 없다

"유진이 좋은데 갔다고 내 꿈에 보이나 보다"

그게 마지막 꿈이다. 그 후 한 번도 유진이는 꿈에 나타나질 않았다.



현이가 유진이 꿈을 처음에 꾼 것은 유진이를 보낸 지 20년이 지난 후라고 했다.

23년 전 그렇게 유진이는 하늘의 별이 되었다.

아마도 내가 옆집에 살고 자주 들락거려서 나를 통해 현이에게 전해주라고 내 꿈에 등장했을 것이다.


그날의 이야기도 우리의 대화 속에 등장한다. 참 긴 세월이 지났는데도 너무도 생생한 나의 꿈이다. 내가 유진이를 꿈을 꾸고 현이에게 위로가 되었다니 감사하다. 친구의 딸을 우리 가슴에 고이 묻었다. 가끔 별을 보며 저 빛 하나는 유진이 일 거라 생각한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생각보다 많은 장애우들을 만날수 있다. 그들에게 따스한 시선과 함께 하는 소통의 마음이 필요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존중 받는 인격체로 교육과 인권에 차별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

장애우들 엄마와 가족들의 힘듦과 애씀이 남의 일이 아니다.


꿈속의 유진이가 떠오르는 새벽이다






매거진의 이전글퇴직한 남편 월급이 끊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