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입사하자마자 400만원을 내고 영어 회화 학원을 등록했다. 돈보다 무서웠던 건 3달 뒤 인도로 출장가서 벙어리가 된 나의 모습이었다. 영어 면접은 없어 안심했는데 입사하고 보니 당장 인도 현지 직원들과 영어로 소통해야하는 메신저는 일상이었고, 번역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전 회사의 메신저와는 다르게 쌩으로 영어를 써야했다. AI,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텍스트로 기본 소통은 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 직접 출장 갔을 때가 문제였다. 결국 오픈을 2달 앞둔 시점까지도 현지 관리 담당자가 채용되지 않으면서 우려했던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직접 인도 현지에 가서 직원 채용, 사전 교육, 오프라인 매장 오픈을 하라!
듣기 어렵다는 억양의 인도 영어를 이해하고 말하기까지 해야하다니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감이 안잡혔다. 우선 브랜드 상품 교육을 위한 뷰티 성분, 셀링 포인트 관련 주요 단어 키워드를 뽑아 외우고, 인도 뷰티 유튜버의 콘텐츠를 출퇴근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평생 극복하지 못했던 영어가 갑자기 몇 달 만에 될리가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었다. 매장 용어, 회사 소개 등 기본적인 온보딩 PPT 와 영어 스크립트를 출력해 비행기에 올랐다. 9시간 비행임에도 잠이 오지 않았고, 스크립트 문장을 외워가며 출장 일정을 되새겼다.
스토어 현지 직원 8명과 보낸 인도의 뜨거운 여름
부족한 영어였지만, 내가 준비한 PPT와 입사를 축하하는 소정의 선물과 에너지에 적극적으로 반응해주었다. 이미 그들에게는 한국인인 내가 신기하고 궁금한 대상이었다. 중간중간 내가 못 알아 듣는 경우가 생기면 직접 파파고로 번역을 해주기도 하고 싸온 도시락을 나누며 음식과 나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단어로 뱉어내다가 사진을 보여주기도 하고, 음악으로 분위기를 바꾸거나 몇 번을 다시 물어봐도 못알아들은 경우엔 그냥 서로 그러려니 웃고 넘어갔다. 오히려 모든 말을 다 이해하고 대답하려는게 욕심이었다. 내가 얼만큼 이들을 위해 준비하고 소통하려고 하는가 진심을 보인 태고에 반응해주었다.
신뢰를 확신했던 리더쉽
인도에 가기 전 경험자인 주변 동료들의 이야기가 살벌했었다. 몇 번씩이나 업무를 재확인 해야하고 일을 안해도 아무렇지 않아 답답할거다, 결근도 많아 근태와 업무 효율성 측면에서 차이가 많이 날 것이니 잘 매니징해야한다는 것이었다. 스케쥴표와 인도 병가, 휴가 개념을 확인해두고 교육 내내 강조했지만 실제 매장을 오픈했을 때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반신반의하는 마음이 컸다.
실제로 교통체증 혹은 병가 이슈로 준비하는 사전 기간에도 종종 지각을 하거나 결근 하는 경우가 있어서 실제 매장을 오픈하고 나면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스토어 매니저의 이 제안은 나의 모든 걱정을 잊게 만들었다. 인도도 네일샵이 활성화 되어있어 꾸밈에 관심이 많은데 절반 이상 직원들의 손톱이 5cm 이상 길고 화려한 젤네일이었다. 뷰티 리테일이라 힘쓸 일 없어 보이지만 작고 크게 손을 많이 쓰고 고객들에게 보여지는 직업이니 단정함이 중요하다. 재고 정리 및 청소, 제품 테스트 등 손 쓸 일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 손톱을 얘기해야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2~3일 차였다.
직원들 손톱 정리시킬게요.
쉐입은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왓츠앱(인도 현지 메신저)으로 개인 메시지를 나에게 보낸 순간 이후로 나는 스토어 매니저로서 그녀를 인정하고 믿게 되었다. 사소한 지적, 배려일 수 있지만 같은 리더, 관리자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무엇을 통제하고 지시해야할지 뷰티 리테일을 운영했던 사람이기에 알 수 있었던 포인트를 짚어낸 것이다. 비록 영어는 부족했지만 내가 관리하고 싶은 가려운 곳을 이 직원이라면 이해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로 같은 시선으로 일을 접근하고 바라보고 있음을 서로 느꼈던 것 같다. 그녀 또한 인도에서 뷰티 리테일 스토어를 7년 정도 운영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관리자 시각으로 운영 방식 제안을 많이 주고 잘 따라주었다. 더불어 직원들보다 더 많이 움직이는 희생정신은 인도인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주게 했다.
어디나 진심인 리더는 똑같다. 통한다.
좋은 리더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지만, 리더쉽을 보이는 사람은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팀이 목표로 하는 비즈니스 방향을 인지하고 팀원을 통솔해야 할 관리 포인트를 읽어내 실행에 옮기는 사람. 한국이나 인도나 리더의 시선은 다르지 않았다. 언어는 비록 부족하더라도 무엇을 뜻하는지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고 오히려 서로의 언어를 더 읽어내기 위해 집중하고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덧 영어 공포증은 덜어내고 중간에 뚝딱이더라도 피하지 않고 열심히 소통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장 오픈 이후에는 갑자기 영어 자신감이 붙어 고객들에게 다가가 셀링을 시도해보기도 하고 결제할 땐 스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대화가 막히면 주변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만, 내 생에 가장 영어로 말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