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족의 유효기간도 함께 끝난걸까?
2015년부터 5년째 유지해온 나의 호텔 멤버십이 최근 종료를 맞았다. 올해 멤버십 갱신을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유효기간이 도래한 것이다. 코로나19로 대중이용시설 방문을 자제하게 됐고, 해당 호텔 시설 이용에도 크고 작은 제한이 발생하면서 멤버십 갱신에 신중함을 가진 결과였다.
처음 호텔 멤버십을 구매하게 된 발단은 지인의 제안이었다. 가족 및 주변 사람들과 신경 써서 식사해야 하는 자리가 간혹 있었는데, 그때마다 장소와 메뉴 선택이 어려웠다. 생선회 같은 날음식을 먹지 못하거나, 채식주의자이거나 혹은 오이나 깻잎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그럼 그냥 호텔 뷔페식당으로 가면 되겠네.”
내 고민을 듣던 지인이 툭 던진 한마디는 명쾌한 해답이었다. 아니 왜 그 생각을 진즉 못했지. 뷔페 레스토랑은 메뉴 구성이 다양하니 각자 취향에 따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더불어 호텔이라면 적어도 분위기와 서비스에서의 불만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일반음식점이 부족하다는 말은 아니다.)
서울의 유명 호텔에서 운영하는 뷔페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대부분 단품과 코스로 운영 중이었다. 몇몇 뷔페 형식 레스토랑이 있었지만, 가격이 꽤 높았고 그럼에도 가격에 대비한 후기가 썩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랜드 하얏트 인천 호텔을 알게 된 것은 그즈음이었다. 그곳에는 ‘레스토랑 8’이라는 뷔페 식당이 있는데, 서울지역 호텔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임에도 메뉴 구성과 요리 품질이 긍정적이었다.
다만 인천국제공항 근처에 있어, 서울에서 40km는 족히 가야 하는 지리적 위치가 내 기준에 큰 아쉬움이었다.
그때 함께 알게 된 것이 바로 호텔 멤버십 회원권이었다. 그랜드 하얏트 인천에서는 ‘CATH(Club At The Hyatt) 멤버십’이라는 회원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연회비를 내면 호텔 이용에 혜택을 주는 것인데, 뷔페 레스토랑 할인 이용이 가장 눈에 띄었다. 2명이면 50%, 3명이면 33%, 4명이면 25%가 할인되는 조건. 이용 인원수에서 한 명은 무료인 셈이다.
레스토랑 1인 가격이 10만 원 정도니까
*2인이 식사할 경우 10만원x2명=20만원, 50% 할인해서 총금액이 10만원. 1인당 5만원.
*3인이 식사할 경우 10만원x3명=30만원, 33% 할인해서 총금액이 20만원. 1인당 약 6만 7천원 꼴이다.
게다가 회원이 되면 2인 무료 식사권이 제공되고, 숙박 예약 시 업그레이드 쿠폰과 수영장, 체련장, 사우나 등 시설의 무료 이용권이 주어지는 것이었다. 와인 1병과 케이크 1개의 선물과 함께 말이다. 연회비는 30만 원대 중후반 (현재 39만원)으로 기억하는데, 무료 식사권과 할인혜택을 감안하면 레스토랑을 두세 번만 이용해도 손해는 아닐 것으로 계산했다. 호텔에 전화 걸어 바로 구매했다.
시내 고깃집이나 횟집, 또는 한정식이나 서양식 식당을 가더라도... 식사와 함께 술이라도 한 잔 하면 한 사람당 5만 원 안팎의 예산을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호텔 멤버십은 매력적이었다.
예상대로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만족을 챙길 수 있었고, 자리를 준비한 나의 만족도 역시 컸다. 그렇게 5년여 동안 중요한 날이 있을 때면 나는 가족과 지인을 이끌고 영종도로 향했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다하고 출세했네’
이전까지 특급호텔의 문턱을 높게만 바라봤던 내게 멤버십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멤버십은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함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한 선택이었다. 호캉스가 대중화됐고 호텔에서 밥 먹는 게 자랑거리도 전혀 아닌 시대에, 내가 (스트레스 덜 받으며) 편하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쩌다 한번 갈 일이고 소득에 맞춰 적절히 소비하는 것이니 나의 가계부에도 문제 될 일은 아니었다.
꼭 식사가 아니라도 어차피 무료 이용권이 있으니 시간이 나면 호텔에 가서 수영장이나 피트니스실을 이용 한다거나, 단지 호텔 로비 쇼파에 앉아 창 밖을 보며 멍때리다 오기도 했다. 주어진 회원의 권리를 알뜰하게 챙기기 위한 노력이랄까.
호텔 로비에 들어설 때면 직원의 안내 따위 필요없다는 듯 익숙한 발걸음으로 곳곳을 누볐고, 레스토랑 이용방법을 설명하려는 직원에게 멤버십 회원이라며 그보다 더 친절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역시 돈이 참 좋네’ ‘나 쫌 뭔가 된 것 같은데’ ‘정말 열심히 일 해야겠다’ 같은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던 것이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코로나19로 인해 호텔 레스토랑과 부대시설의 운영이 중단되거나 축소됐다. 이용에 차질이 벌어진 것이다. 호텔 측에서 4월까지였던 내 멤버십의 유효기간을 3개월 연장해줬지만 불편함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뷔페 레스토랑 운영이 중단되면서 호텔갈 일이 크게 줄었다. (운영을 했더라도 아마 가지 않았을 것이다) 부대시설도 비슷했다. 멤버십을 이용하지 못하니 연회비만 아깝게 됐다. 손해 본 느낌마저 들었다.
지난달 (유효기간이 끝나기 직전) 올해 처음 호텔에 갔는데, 남아 있는 와인 교환권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만족감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해마다 멤버십을 갱신하며 자기만족의 유효기간도 매년 늘어났다. 비용과 시간을 들여도 그에 맞는 적절한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호텔 멤버십은 그동안 효율적이고 만족스러운 소비였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드는 것에서 높은 만족감이 나올 수도 있고, 성취가 힘든 부분에 도전하며 커다란 만족을 가질 수도 있다. 또 사소한 것에서도 만족을 느낄 수 있지만 아무리 가져도 만족이 없을 수 있다. 돈으로 만족을 채우는 일은 가장 쉽기도 하고 반대로 가장 어렵기도 하다.
멤버십 종료와 함께 일상에 만족감을 줬던 요소가 하나 사라졌다. 돈으로 사는 만족감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얻겠다는 생각이야 늘 갖고 있다.
내가 들인 시간적·경제적 노력 만큼의 만족을 얻었다면 그걸로 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