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호주를 만날 수 있었던 도시
호주 하면 대체로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이런 도시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광활한 대륙에서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고는 대체로 동부 해안지역이니, 그쪽 중심으로 발달했겠지. 실제 호주 인구의 90%는 약 5%의 면적에 살고 있다. 일부러 내륙으로 가지 않는 이상 사람이 호주대륙 중심부나 북쪽으로 갈 일은 없다. 물론 그런 곳에도 사람은 산다.
다윈은 호주 북쪽에 있다. 호주 대륙의 정가운데 북부를 차지하는 노던 준주(Northern Territory)의 주도인데, 나름 큰 도시다. 그 유명한 '울루루'와 '아웃백 사막'이 여기에 있다. 원주민 보호구역도 여러 곳 있다. 호주 아웃백의 관문이라고도 불리는데, 호주의 거친 자연과 야생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가려면 보통 다윈을 거친다. (아웃백은 흔히 호주 내륙의 사막지대 또는 사람이 살지 않는 허허벌판의 지대를 말한다.) 호주 다윈에 가면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들의 번호판을 보면, 한결 같이 차량 등록번호와 함께 'Outback'이라는 글자가 쓰여있다. 지역주민들의 자부심일까.
다윈에도 우리 교민들이 꽤 거주하고 있다. 호주의 한국 교민수가 20만 명 정도 되고 그 70%가 시드니를 비롯한 남서부에 사는데, 다윈에도 수백 명 정도 있다. 다윈 시내에 가면 교민이 운영하는 한국식당도 있다.
이런 배경에서 다윈에 가기 전, 다윈을 한적하고 조용한 동네쯤으로 생각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생각보다 규모가 큰 데 놀랐다. 남는 게 땅이니 건물은 큼지막하고 띄엄띄엄 여유 있게 지으면서, 공원도 많고 거리의 사람도 많지 않았다.
반대로 고층건물과 차량도 많았고, 밤에 시내 중심부를 가면 음주가무에 흥겨운 사람들로 넘쳤다. 생각보다 큰 도시였다. 물론 도시 여행을 한다면 며칠씩 있을 만큼은 아니다. (앞서 경험한 시드니와 멜버른이 워낙 대도시라서 상대적으로 작을 것으로 느낀 것이었다.)
그곳 사람들에게 다윈의 첫인상을 솔직히 이야기했을 때, 아웃백을 강조하며 '여긴 그냥 시골'이라고 웃어 보였다. 도시는 평화로웠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여유로웠다. 무엇을 막 대단히 할 수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는 도시였다.
다윈은 시드니에서 비행기로 5시간 정도 걸린다. 싱가포르에서도 비슷하게 소요된다. 그래서인지 동남아에서 온 관광객과 근로자들도 꽤 있다. 한국인 여행객은 거의 없다.
다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민딜 비치'와 그 인근의 '마리나' 그리고 '스토크 힐 와프'였다.
민딜비치는 주말에 시장이 열린다. 다양한 기념품, 장식품과 먹거리가 있다. 해변은 한적하고 연한 청색의 바다가 드넓게 펼쳐있다. 여유 그 자체. 인근의 마리나는 부촌 느낌이었는데, 저택과 요트들이 즐비했다. 그런 분위기를 따라 음식 값이 다소 비싼 고급 레스토랑도 늘어져 있다.
스토크 힐 와프는 다윈의 남쪽 끄트머리에 있다. 워터 프런트 구역이 있는데 잘 꾸며놓은 워터파크 같다. 멀리 방파제를 세워 석호처럼 만들고 인공적으로 해변처럼 정비했는데 파도풀이 있고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다. 고급 아파트와 장기 렌탈 숙소도 있다.
다윈은 그냥 노잼 도시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재미라는 게 꼭 활동적이고 스펙터클해야만 하는 것은 또 아니지 않나. 잔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재미다. 그러면서 크게 불편함 없고 모든 게 어느 정도 갖춰져 있으며, 소소한 이벤트가 있다면 꽤 훌륭한 여행이 된다.
다수 여행객들이 호주 대륙의 오리지널 자연을 경험하기 위해 다윈을 찾는다지만, 다윈 그 자체만으로도 좋은 여행지라고 생각한다.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