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해변이 아름다운 섬
얼마 전 스페인 마요르카를 배경으로 가수들이 버스킹을 펼치는 TV 예능 프로그램을 봤다. 마요르카는 지중해 스페인 발레아레스제도에 있는 섬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마요르카보다 인근의 이비자섬이 더 알려졌다. 마요르카와 이비자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다. 마요르카와 이비자 모두 휴양지로 유명하다.
내가 마요르카를 다녀온 지는 정확히 10년 됐다. 딱 10년 전 마요르카를 다녀왔다.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중해 섬은 어떤 느낌일지에 대한 궁금함이 시작이었다. 그땐 마요르카가 알려지지 않았다. 지금은 네이버와 유튜브에 '마요르카'를 검색하면 여행 상품이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금세 나오더라. 특히 신혼여행지로 인기를 모으는 듯하다.
새로운 곳을 갈 때, 먼저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편이다. 계획을 검증하면서 선행자의 아쉬움을 반영해 새로운 포인트를 찾아 나서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행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몇몇에게 물어도 도통 마요르카를 모르더라. "오, 그렇단 말이지." 살며시 걱정이 들면서도, 내가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빨리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일단 고.
만족스러운 계획을 세워도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촘촘한 계획을 짜는 파워 J 성격에게 무작정 떠나는 여행은 도전이다. 어느 정도 틀을 잡은 뒤, 즉흥적인 부분을 넣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면 불안함이 생긴다. 하지만 이런 여행이 보람은 더 크다. 뿌듯함도 있다. 물론 그런 감정은 오롯이 여정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다.
인천에서 루프트한자 비행기를 타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다시 부엘링항공 국내선을 갈아타고 마요르카에 내렸다. 마요르카는 스페인에서 가장 큰 섬이다. 공항은 '팔마 데 마요르카'에 있다. 섬의 남쪽에 있는 도시다. 지금도 인천-마요르카 직항은 없겠지만, 갈 수 있는 루트는 조금 더 다양해지지 않았나 싶다.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아 마요르카에선 자동차를 렌트했다. 섬이라는 곳이 그렇다. 이런 곳에 지하철은 커녕 버스 노선도 별로 없다. 그마저도 배차가 일정치 않다. 택시 요금은 비쌀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버스는 하루에 몇 번 없고, 택시는 요금이 부담스러운, 그렇다고 도보로 다니기엔 섬이 작지 않은 곳이다. 팔마데마요르카 중심부에서만 며칠 있을 거라면 뚜벅이로 충분하다.
시내에만 있을 순 없다. 특별한 계획이 없어도, 섬을 한 바퀴 휘이 도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그 여정은 마요르카의 리얼 로컬을 보고 듣는 시간이 되고,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 나누는 행운도 얻게 한다.
그래서 국제운전면허증을 발급받고, 렌터카를 예약해 놨던 터였다. 재미있는 것은 렌트 비용이었다. 소형차 라인에서 선택지는 현대차 i30와 미니쿠퍼였다. 그런데 미니쿠퍼가 더 저렴했다. 공항 내 허츠 렌터카 부스에서 직원에게 놀랐던 점을 전했다. "한국에서는 미니쿠퍼 렌트 요금이 더 비싸답니다." 직원이 놀라는 눈치다. 직원은 미니쿠퍼가 자기네에게 국산차라서 그런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게 건넸다.
마요르카 시내에서 가진 첫인상은 나만 외국인 같다는 것이다. 첫날 온종일 시내 중심부를 다녔지만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단 한 명 보질 못했다. 마요르카 일정 내내 한국인은 마주치지 못했다. 중국인 가족만 한번 마주했을 뿐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에 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기분 좋을 때가 있다. 이런 순간이다.
마요르카에서 마주한 '외국인'들은 대체로 독일과 북유럽 사람들이었다. 골프와 요트를 즐기거나, 작고 조용한 해변에서 휴식하는 것. 그래서 마요르카를 유럽 부자들의 휴양지라고 부르나보다.
차를 빌린 만큼 섬 둘레를 돌면서 중간중간 아무 곳에서나 멈춰 세우고 시간을 보냈다. 지중해가 드넓게 펼쳐져 보이는 언덕, 협곡처럼 큰 절벽 두 개로 가려진 작은 해변, 해안도로에 덩그러니 있는 레스토랑, 산 중턱 저택을 개조해 만든 호텔, 내륙의 들판과 농장. 중세 분위기가 나는 마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섬 남동부에서 우연히 마주한 해변이다. 마요르카는 작은 해변들이 곳곳에 있는데, 울퉁불퉁한 바위와 울창한 나무로 숨겨진 보석 같다. 사람도 많지 않다. 여유 그 자체. 이곳에서도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한 독일인 가족이 신기하듯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다가 결국 내게 말을 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고, 나는 그들에게서 근처 갈만한 곳과 괜찮은 레스토랑을 추천받은 괜찮은 대화였다.
휴양지, 섬 답게 마요르카는 해안이 발달됐다. 해안에 도심이 형성됐고, 해변에는 호텔들이 늘어서있다. 바다에는 요트가 많이 보였고, 섬 중턱에는 골프장이 곳곳에 있었다. 마요르카 섬을 일주하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마요르카에서 나흘을 묵었는데 며칠 더 머물렀다면 내륙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섬 안쪽에는 농업을 하는 오래된 마을들이 있다.
때때로 현지인보다 여행자에게 유익한 여행 정보를 얻을 때가 있다. 주관적인 취향 차이로 인해 실패할 가능성도 있지만, 솔직한 답변을 얻을 수는 있다. 마요르카는 이제 꽤나 알려진 지역이 됐다. 마요르카를 다녀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경험을 들려줄 기회가 있었다. 내게 마요르카에 대해 물어오는 이들도 많았다. 여행작가들과도 기억을 공유하며 아쉬움과 팁도 전했다. 그런 기쁨을 알기에 그렇게들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찾아 나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