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2013년 Daum Magazine: Fashion in Movie 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내내 나는 교복을 입었다. 아마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온 친구들은 물론이거니와 현재 그 시절을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 일 것이다. 우리들의 교복은-기본적으로 촌스러운 것이 정상이지만- 참을 수 없이 촌스럽고 어떻게 입어도 예쁘지 않았다. 특히 여학생들의 교복은 말이다. 한창 자랄 나이에 보통 한벌을 사서 삼 년을 입어야 했던 교복의 치마는 항상 너무 길었고 블레이져의 어깨는 늘어졌으며 블라우스나 셔츠는 허리선을 보이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디자인되어 있는 것만 같았다. 치마허리 부분을 접어 입거나 치마폭을 줄이거나 하는 정도의 수선은 일반적인 것으로 안 그래도 외모에 대한 불만과 걱정이 가득한 그때의 우리들에게 어쩌면 교복을 입는 것은 그마나 고민을 줄이게 하는 방편이었을지도 모른다. 학생이라는 특정하고 특별한 정체성을 부여하고 소속감과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그래서 개인의 자유의지와 관계없이 입게 되는 우리의 교복. 화이는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이하 <화이>) 내내 그 교복 한 벌을 입고 등장한다.
장준환 감독이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 이후 십 년 만에 내보인 장편 <화이>의 주인공은 당연히, 화이 (여진구 분)이다. 또래의 평범한 학생들과 달리 공교육을 받지 않고 다섯 명의 아버지들에게 다양한 전문 기술을 전수받는 화이, 그에게는 가야 할 학교가 없다.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으나 군복과 마찬가지로 단체의 일원임을 상징하고 증명하며 속한 단체의 규율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가지는 것이 교복임을 감안할 때 화이가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물론 화이에게도 따라야 하는 규율이 존재하며, 그것은 보통의 학생들이 느끼는 학교의 규율이나 선생님에게 보이는 존경심과 공포감등을 보았을 때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력하고 불가항력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화이>는 이 부분을 설명하지 않는다. 물론 여러 가지 불법한 행위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아버지들을 두고 있고 무면허 운전을 일삼는 미성년의 소년이 다른 이들의 눈에 띄어 좋을 것은 없으므로 교복을 입는 것은 언뜻 보기에 그의 존재를 위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동네의 아이들이 다닐만한 학교의 교복과는 다르지만 극히 평범해 보이는 흰 셔츠에 감색 블레이져, 타이, 회색 바지 차림의 화이는 손쉽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또래 학생들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다. 극의 중반을 넘어가면서 안타깝게도 그 교복 때문에 손쉽게 꼬리가 잡히는 격이 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교복을 입었기 때문에 극 중 단 하나 나오는 친구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 교복은 누가 입혔을까? 극 중 가장 절대적인 권력을 보여주는 석태 (김윤석 분) 일까 그래도 이 아이를 아버지들과는 다른 길을 걷도록 해주고 싶어 하는 뜻을 내비치는 진성 (장현성 분) 일까 아니면 다섯 명의 아버지와는 다른 아이, 화이 그 자신 일까.
틀에 박힌 듯 짜여진 청소년기의 상징인 교복을 입고 있지만 너무도 다른 아이, 화이. 나는 화이가 소속되고 싶었던 것은 학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학교의 교사나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 아버지 등을 그려 볼 때 우리는 정장과 하얀 셔츠를 떠올린다. 아마도 화이에게 교복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리고 지금 경험하고 있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는 평범한 일상의 삶을 대변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상징이었을 것이다. 극 중의 아버지들은 각자 매우 다른 성격의 인물임에도 모두 시종일관 어두운 색의 재킷이나 점퍼를 입고 등장한다. 하얀 셔츠를 입는 캐릭터는 화이하나 인 것이다. 화이는 하얀 셔츠의 교복을 입음으로써 다섯 명의 아버지들과 자신은 ‘다르다’는 외침을 내보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미 그 하얀 셔츠가 피로 얼룩진다고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