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술과 농담'을 읽고 떠오는 단상들
주말 아침, 여유롭게 일어나서 브런치를 먹으러 근처 카페에 갔다. 카페의 한쪽 벽에 필사한 글과 시집의 페이지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글들을 하나하나 읽는데 마음이 울렸다. 사장님께 책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수줍게 말을 걸었다. 앳되고 맑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은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책 읽기와 필사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너무 좋다며조심스레 책 추천도 해주었다.
내적 친밀감을 느끼며 벽에 붙여진 너무 익숙한 시 한 편을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익숙한 문장을 읽으면서 내 안에도 용기 내고 싶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걸 다시금 기억해 냈다.
함께 있던 엄마가 말했다. “어머! 나도 시 좋아하는데.” 나는 금시초문이라고 말했고, 카페 사장님은 사려 깊은 목소리로 “시를 좋아하는 것과 자주 읽는 것은 다른 거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렇다, 나도 시를 좋아하는 데 시집 한 권을 정독한 적은 별로 없었다. 단지 몇 개의 시와 그 속의 문장들을 노랫말처럼 가끔 떠올리거나 다시금 기억해 내곤 했다.
시를 읽을 땐 한 번도 본 적 없는 혹은 이젠 세상에 없는 어느 시인과 공명한다. 그와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나와 닮은 어떤 방황, 어떤 괴로움, 어떤 고독을 발견하고 안심하고 위안을 얻고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시와 노래와 술과 농담 같은 것들. 그것들은 대체 뭘까?
무언가를 남기며 사라지는 것, 사라지면서 남기는 것... p.68
술과 함께 기억되는 장면 중에 하나는 대학 동아리 사람들과 뒤풀이 후 기타 소리에 맞춰 떼창을 했던 순간이다. 한 선배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모두 기분 좋게 취해서 술집이 떠나가라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우리는 그때 서로에게 어떤 기쁨과 슬픔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함께 웃고 취하고 농담을 주고받고 노래를 하면서 ‘피어올랐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다시 피어오르는...’ 그 순간들을 그저 누렸다. 그 순간은 한 장의 사진처럼 남아 낭만을 이야기할 때 문득문득 떠오른다.
수없이 긴장하고 힘을 주어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술은
잠시나마 그런 스스로를 해방시켰을까? 자꾸만 새어 나오던 웃음과 어쩐지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은 스스로를 신기해하면서, 참아왔던 눈물과 숨길 새 없이 흘러넘쳐버린 마음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농담 같은 진심으로.
“해소되지 않는 의문을 마음 한 구석에 구겨 넣을 채로 하루하루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히 마주하게 되는 게 술과 농담이기도 하다. 술을 마시고 우리는 구겨진 마음을 괜히 펼쳐보고 안타깝게 매만진다. 수없이 주고받은 말들 중에서 한순간 우리가 함께 웃음을 터트리게 되는 말이 있고, 그렇게 농담은 그 말의 내용보다는 그것이 나와 너를 통하게 했다는 이유로 값진 것이 된다. 스스로 밀어냈던 나의 한 부분을 마주하고 수많은 이유로 미뤄뒀던 관계의 회복을 마련하는 자리에 술과 농담이 있다.” p.69
카페 사장님의 기준으로 라면 나는 술을 좋아한다. 향긋해서, 맛있어서, 낭만적이어서, 다채로워서, 시원해서, 청량해서, 궁금해서, 기분 좋아서, 울고 싶어서, 새로워서, 혼자여서, 함께여서 좋다. 다행히도 술과 함께 했던 시간에 좋은 기억들이 더 많다. 술은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장면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떠올리게도 한다.
앞으로도 시와 노래와 술과 농담 같은 무용하고 아름다운 진실과 낭만을, 그것들이 선물하는 기분과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