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476
2025. 1. 7. 화. D-476
<세 가지 부류의 사람들>
자세히 보니 거리 위에는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저들 중 일부는 돈을 다 갚은 사람이고, 나머지는 돈을 갚지 못한 사람이겠지. 세 번째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춥고 나직한 밤이면 누구나 자기만의 통장 속에서 이불을 덮고 남은 삶의 채무를 확인하게 되리라.
돈이 통장들 사이를 끝없이 스쳐 지나가는 동안, 사람들이 내 곁을 끝없이 스쳐 지나갔다. 각자의 주머니에 손을 구겨 넣고서.
아무려나!
그런데 거기, 모르는 당신은 누구?
2025. 1. 8. 수. D-475
<절망의 단위>
누군가 말했다.
"나 요즘 신상 아이스크림에 빠졌잖아."
나의 신상은 무엇인가.
그건 언제나 절망이었네.
대출, 사기, 금리, 쪽방, 실업, 실연, 외도, 질병, 사고, 자살…….
오늘의 절망은?
책을 읽어야 할 시간에 회사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책상 위의 책 한 권 한 권이 사실은, 내 앞에 놓여 있는 진짜 절망의 갯수인지도 모르지. 절망 한 권, 절망 두 권, 나의 즐거운, 절망 세 권…….
(읽을 책이 남아 있는 한 나는 괜찮아)
(정리 좀 하자!)
2025. 1. 9. 목. D-474
<몸을 쓰는 직업>
촬영이 끝나고 나면 항상 몸 어딘가 망가져 있다. 손에 멍이 들거나, 어깨에 멍이 들거나, 짐작할 수 없는 어떤 부위가 긁히거나 다쳐 있다. 원래 그랬나?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랬던 걸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다. 요즘은 어쩐지 다친 흔적들이 더 잘 보인다. 촬영할 때 '몸을 쓴다'고 말할 수 있는, 가장 일차적이며 확증적인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카메라를 든다고 해서 누구나 다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내가 나의 업을 다치게 하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어쩌랴. 그게 15년 차 PD의 노하우인 걸.
2025. 1. 10. 금. D-473
<퇴근 후>
"세라님 요즘은 무슨 책 읽어요?" (내가 말 많아지게 하는 몇 안 되는 질문 중 하나)
"요즘은 김진영 철학자의 글이 참 좋더라고요. 박근혜 정권 때 쓰여진 오컬티즘과 부패 권력에 관한 글을 읽는데요, 지금 상황이랑 하나도 다르지가 않은 거 있죠. 그러고 보면 지배 권력층의 야만성은 원시 시대랑 뭐가 달라졌나 싶기도 해요. 이 문장만이라도 한 번 읽어보실래요? (종알종알……)"
"퇴근하고는 뭐해요?"
"요즘은 주로 에세이를 읽어요. 8시부터 10시부터는 에세이, 10시부터 11시는 시, 이런 식으로 구간을 나눠 놓고 시작하죠. 계획을 잘 지키지는 못하지만요."
"그거 말고 다른 건 없어요?"
"소설책도 읽어요. 가끔 불교 경전도 읽고요."
"읽는 거 말고는 없어요?"
"음…… 있어요! '쓰기'도 하죠! 사실 작년의 목표는 '읽은 만큼 쓰기'였는데요, 하나도 지키지 못했어요."
"읽기랑 쓰기 말고 다른 건 없네요?"
"다른 거요? 어떤 다른 거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