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500일

지나가시오, 지나가시오.

D-477

by 세라

2025. 1. 6. 월. D-477


정규직들에게 이 시기란 인사 발령과 자리 이동, 업무 변동의 환절기다. 자주 봐 왔으면서 새삼스럽게 낯설었다. 1년 혹은 2년 주기로 바뀌는 그들의 업무는, 흔하게 완전히 다른 분야가 되기도 한다. 한 회사에 있으면서도 이 업무에서 저 업무로 이사, 이직하는 것과 같다. 자신이 원하는 직무로 갈 수도 있고, 가지 못할 수도 있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업무를 떠맡을 수도 있다. 누가 그들의 근원을 배정하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회사에 필요한 살림살이를 하나하나 익히며 한 칸 한 칸 진급하다 보면, 그들 중 일부는 회사의 운영 주체가 된다.


비정규직들은 1년 혹은 2년마다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겨 다닌다. 실제로 이사, 이직한다. 그러나(나와 같은 미디어/예술 분야에 한정) 우리 특수직들은 한 번도 이 업무에서 저 업무로 바뀐 적 없다. 바뀐다 한들 집안에서 기존의 가구를 어떻게 배치해 볼까 하는 식일 따름이다. 어떤 의미에서 진짜 정착민은 우리다. 내가 나의 이력서를 내밀고 협상할 상대를 재고 고르며, 이기기도 지기도 한다. 승률은 상관없다. 떠밀리듯 구걸한다 해도 나의 운영 주체는 나다. 떨어진다 한들 그들이 내가 던진 낚싯밥을 먹다 떨어져 나간 것뿐이다. 요컨대 낚싯대를 던진 사람은 나라는 것이다. 굶다 못해 아무 데나 미끼를 던진다 한들, 배부른 상태에서조차 자신이 어디로 떠밀려갈지 알 수 없는 그들과는 태생적으로 다르다. 언제나 밥줄이 끊길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거야 익숙하잖아?)


제 뜻대로 이동한/하지 못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배치하느라 부산한 날에, 나무처럼 내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사/이직의 근원이, 근원의 근원이 궁금한 그들과 달리 나는, 근원인 나로서 조용히, 마음의 그늘을 조용히 드리웠다.


맞아요, 영원히 꿈꾸는 건 언제나 나무였지요.


지나가시오, 지나가시오.




오고 가는 존재들을 바라보며 한 잔 넘겨볼까 하는데 목이 콱, 쏠린다. 사실은 나도 지나가는 존재라. 쓰며/쓰지 않으며 이 밤을 부산하게 지나가는 중이다. 사실은 나도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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