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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태모의 포랍도 Mar 01. 2022

동오 신홍식 목사와 기미년 삼일운동

[사람과 사상] 3월 1일

누구나 살면서 신기한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우연이 필연처럼 느껴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십오 년 전쯤 어느 날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당시 나는 충북 청주에 살고 있었다. 공군사관학교에서 교수 요원으로 군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사는 당시 주소로 청원군 남일면 쌍수리에 위치했는데, 나는 가까운 청주시에 방을 하나 구해서 출퇴근을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충청도에 특별한 연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에서 형이 방문했다. 형이 온다니까 뭘 하고 뭘 먹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당시 같은 과 교수님들과 회식을 한 적이 있었던 소고기집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 형제가 대식가인 데다가 같이 고기 구워 먹은 것이 언젠가 싶었기 때문이다. 공사에서 청주 방면이 아닌 시골 방면으로 조금 깊숙하게 들어가면 나오는 가게인데, 한우를 취급하면서도 가격이 높지 않았고, 운이 좋으면 여러 부위의 내장도 신선한 상태에서 맛볼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가게 이름은 기억이 안 났지만 한 번 가봤으니 위치 정도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처음 직접 운전해서 가려니까 헷갈리는 구간이 여러 군데 있었다. 왠지 가는 길이 초행길처럼 낯설고, 예상보다 꽤 오랜 걸린다는 느낌이 들 때쯤,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마트 폰을 쓰기 한참 전의 일이다. 구비구비 산 길을 헤매다가 어느 마을 입구로 들어가는데, 자그마한 표지판을 보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오 신홍식 선생 묘소


신홍식? 여기에 신홍식 목사의 묘소가 있다고? 신홍식 목사는 기미독립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으로 감리교 감리사를 지낸 분이었다. 내가 이 분을 특별히 기억했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신 목사님이 내 고조부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2명의 부모, 4명의 조부모, 8명의 증조부모, 16명의 고조부모가 있다. 지금의 내가 있기 위해서는 8명의 고조부가 있었야 했다. 그중 한 분이 신홍식 목사셨다.


그러니까 소고기를 먹으려다가 길을 잘못 들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우연히도 생전 처음 고조부의 묘소 앞에 다다른 것이다!


충북 청주의 신홍식 목사 묘소


신홍식 목사는 3.1. 운동 주도자   명으로 구속되어 2 이상 옥고를 치렀다. 1921 11 출옥 후에는 평양으로 돌아갔다가, 인천, 원주, 강릉 등에 파송되어 그곳에서 목회 활동을 계속했다.  목사가 강원도에서 감리사 직을 수행할  횡성과 홍천에서 목회하던 그보다 17 아래의 문호 목사 집에 여러 차례 들렀다고 한다.  사람은 그보다 앞서  목사가 인천 내리교회를 담당했을 때부터 알고 지냈을 수도 있다. 우연히도,  당시 어린아이였던  목사의 차남은 후에  목사의 외손녀와 결혼했다.   분이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다.


1922년 3월 9일 자 신한민보에 실린 신홍식 목사의 약력


3월 1일을 맞이하여, 신홍식 목사와 그가 참여한 기미년 만세운동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3월 1일은 신 목사의 생신이기도 하다)


"오등은 자에..."로 시작하는 <기미독립선언문>은 한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선언문을 꼼꼼하게 읽어 본 사람은 아마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선언문을 진지하게 읽어 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문장이 명문일 뿐 아니라, 당시 민족 대표들의 뚜렷한 정세 인식과 그를 바탕으로 공표하는 당찬 이상이 두드러진다. 이들은 물론 이상주의자들이지만, 이들의 이상주의야말로 가장 현실주의적인 선택이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리적 힘이 없는 사람들은 말과 이상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미독립선언서 원문


기미독립선언서 한글판


현대어로 번역된 독립선언서를 아래에 붙여 본다.



우리들은 지금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고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국민이라는 것을 선언 하노라. 이러한 사실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려서 인류 평등이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분명히 밝히고, 이러한 사실을 후손들에게 대대로 전하여 민족의 독자적 생존이라고 하는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바이다.


5천 년 역사의 권위에 의지하여 독립을 선언하는 것이며, 이천만 민중의 충성을 한 데 모아서 독립국임을 널리 밝히는 것이다. 영원하고 한결같은 민족의 자유 발달을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며, 인류의 양심이 드러남에 따라 일어난 세계 개조의 좋은 기회와 운세에 순응하여 함께 나아가기 위하여 이것을 제기하는 것이다. 조선의 독립은 하늘의 밝으신 명령이고 시대의 추세이며 모든 인류가 공존하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정당한 권리를 발동한 것이니, 세상의 무엇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주장을 가로막거나 억눌러서 그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낡은 시대의 유물인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역사가 시작된 지 수천 년 만에 처음으로 이민족의 압제를 받는 뼈아픈 괴로움을 맛본 지 이미 10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우리가 생존권을 빼앗겨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많았으며, 마음과 영혼의 발전을 가로막힌 것이 얼마나 심하였던가? 또한 민족의 존귀하고 영화로움이 훼손된 것이 얼마나 심하였으며, 새롭고 독창적인 정신으로써 세계 문화의 큰 흐름에 기여하고 보탬이 될 기회와 인연을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심하였던가.


아! 과거로부터 내려온 억울함을 드러내어 세상에 널리 알리려고 하려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려면, 장래의 위협을 일찌감치 무찔러 없애버리려고 하려면, 억눌리고 사그라진 민족의 양심과 국가의 염치가 다시금 북받쳐 일어나 마음껏 뻗어 날 수 있도록 하려면, 각자의 인격이 정당한 발달을 이룰 수 있도록 하려면, 가엾은 아들과 딸들에게 괴롭고 부끄러운 현실을 물려주지 않도록 하려면, 만대에 이르는 자손들을 인도하여 영구적이고 완전한 행복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해주려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민족의 독립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


이천만 동포가 모두들 가슴속에 칼날을 품고 있으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본성과 시대의 양심이 정의와 인도라는 무기로 우리를 보호하고 도와주는 오늘날, 우리들이 나가서 얻으려 하면 어떠한 강한 자인들 꺾지 못하겠으며, 물러나 일을 꾀하려 하면 어떠한 뜻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병자수호조규가 체결된 이래 철석같이 굳게 맺은 약속들을 수없이 어겼다고 해서 일본이 신용이 없다고 허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학자들은 강단에서, 그들의 정치가들은 현실에서, 대대로 이어온 우리 왕조를 식민지로 깔보고, 우리 문화 민족을 야만인으로 대우하며, 한갓 정복자의 기쁨에만 골몰할 뿐, 우리 영원한 사회 기초와 두드러지게 뛰어난 민족 심리를 무시한다고 해서 일본이 의리가 없다고 책망하려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독려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에, 남을 원망하고 꾸짖을 겨를조차 없노라. 우리는 현재의 사태를 수습하여 아물도록 하기에 바쁘기 때문에 묵은 과거의 잘못을 응징하여 바로잡을 겨를조차 없노라


오늘날 우리가 맡은 임무는 다만 자기의 건설에 있을 뿐이지 결코 남을 파괴하는 데 있지 않다. 엄숙한 양심의 명령에 따라 자기 나라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려는 것이지 결코 묵은 원한과 일시적 감정으로 남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배척하려는 것이 아니다. 낡은 사상과 과거의 세력에 얽매여 있는 일본 정치가들의 공명심의 희생물이 된 부자연스럽고 불합리한 잘못된 상태를 개선하고 바로잡아,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바른 길과 큰 원칙으로 되돌리려 하려는 것이다.


당초 두 나라의 병합은 민족의 요구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그 결과 임시방편으로 가하는 위압과 민족적 차별에 대한 불평 그리고 통계 숫자 상의 겉치레의 이면에서,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하는 두 민족 사이에 영원히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원한과 불화가 날로 깊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실정을 보라. 용감하고 과감하게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진정한 이해와 동정에 바탕을 둔 우호적인 새로운 국면을 열어가는 것이야말로 서로 간에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지름길임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분한 마음을 품고 원한을 가슴속에 쌓고 있는 이천만 명의 백성들을 단지 위력으로써 구속하려는 것은 동양의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는 방도가 아닐 뿐 아니라, 동양의 안전함과 위태로움을 좌우하는 주축인 4억 중국인들이 이것으로 인하여 일본에 대해 시간이 갈수록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더 가지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동양 전체가 함께 무너지고 같이 망하는 비참한 운명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조선의 독립은 조선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삶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인 동시에, 일본으로 하여금 그릇되고 옳지 못한 길에서 벗어나서 동양을 지탱해 주는 자라고 하는 중대한 책임을 온전히 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며, 중국으로 하여금 자나 깨나 잊지 못하고 있는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고, 동양의 평화를 중요한 일부로 삼는 세계 평화와 인류 행복으로 나아가는 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어찌 사소한 감정의 문제이겠는가.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위세와 힘을 앞세우는 시대는 가버리고 도덕과 의리를 존중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과거 한 세기 동안 갈고닦고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막 새로운 문명의 서광을 인류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였다. 새 봄이 세계에 찾아와 만물로 하여금 소생할 것을 재촉하고 있다. 얼음이 얼고 찬 눈 내리는 바람에 숨을 멈추고 엎드려 지낸 것이 저 지난 한 때의 형세였다고 한다면, 화창한 바람과 따스한 햇살에 기맥을 떨칠 수 있게 된 것이 지금의 형세이다.

천지의 기운이 되돌아오는 것에 즈음하여 세계의 달라진 흐름을 올라탄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도 없으며 아무 거리낄 것도 없도다. 우리가 본디 지녀온 자유권을 온전히 보호하여 자유로운 삶의 기쁨을 맘껏 누릴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갖춘 독창적인 힘을 발휘하여 봄기운 가득한 온 세상에서 민족적 정화를 맺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지금 분발하여 떨쳐 일어났도다. 양심이 우리와 함께 있으며, 진리가 우리와 함께 나아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둡고 답답한 옛 보금자리에서 떨쳐 일어나 삼라만상과 더불어 기쁘고 유쾌한 부활을 이루어 내게 되었다. 먼 옛날부터 모든 조상들의 영령이 우리들을 남몰래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우리들을 밖에서 보호하고 있다.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찬란한 앞날을 향해 곧장 힘차게 나아갈 따름이다.


공약 3장

하나. 오늘날 우리의 이 행동은 정의와 인도 그리고 생존과 존엄함을 지키기 위한 민족적 요구에서 나온 것이니, 오직 자유로운 정신을 발휘할 것이며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치닫지 말라


하나. 마지막 한 사람까지 마지막 한 순간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마음껏 발표하라


하나. 일체의 행동은 무엇보다 질서를 존중하며,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떳떳하고 정당하게 하라


조선 건국 4252년 3월 1일 조선민족대표

손병희 길선주 이필주 백용성 김완규 김병조 김창준 권동진 권병덕 나용환 나인협 양전백 양한묵 유여대 이갑성 이명룡 이승훈 이종훈 이종일 임예환 박준승 박희도 박동완 신홍식 신석구 오세창 오화영 정춘수 최성모 최    린 한용운 홍병기 홍기조


3·1 독립선언서

현대 역 : 정숭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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