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핸드폰 속 어머니의 전화번호 이름
얼마 전 어머니를 잃은 한 분을 멀리서 지켜봤다.
그 전에 봤던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있었다. 다시 본 그의 얼굴에는 그전에 그가 갖고 있던 활기가 보이지 않았다. 연로하셔서 떠나셨기에 그리 고통스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머니를 잃었다는 것은 결국 한쪽 세상을 잃은 일이 아닌가. 그림자가 되어주신 분을 잃은 일이다.
얼마 더 지나야 할까. 얼마 지나야 그 전의 그 얼굴로 그는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환하게 웃던 그의 모습은 그 날 보여주지 않았다.
다른 한 분이 또 있다. 이 분은 1년 여 전 어머니를 잃었다. 이 봄에 잃었다.
삼남매의 장남인 그에게도 웃음기 있는 얼굴이 없다.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맞아주고 악수를 하던 그에게서 맥박 뛰는 서른 중반의 어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아들 셋을 둔 아버지이다. 그의 어머니는 방사성 치료와 항암치료로 1년 여 넘는 암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지금 살아계시다면 막 크는 손자들을 안아주고 입을 맞추며 안아주었을 그 어머니.
살아계시다면 아이들에게 과자 사 먹을 용돈을 주고, 옷을 사입혀 주며 며 한 해 한 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함께 웃고 함께 밥을 먹으며 이 좋은 봄날을 밖에서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아 어쩌랴, 이 봄아. 노환도 아니시고 충분히 더 살아갈 수 있는 날들이 더 많으셨을 텐데 원하지 않는 '방문객'으로 인하여 항암치료 끝에 봄을 잃었다.
몇 해 전 가을,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구경 가고 싶다며 회사 근처로 오시겠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지. 내가 잘 가던 식당에 가서 식사도 했다. 그날 어머니는 내게 흰 봉투를 전해주고 가셨다.
그 편지 봉투에는
"아들 사랑해 엄마가"
라고 적혀 있었다.
용돈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사는 다 큰 아들에게,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10만 원을 내밀고 가셨다. 남자는 지갑에 돈이 있어요 한다면서 용기를 내고 살라고 하고 가셨다.
언젠가 내게도 원치 않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지금 내가 버틸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살아갈 수 있는 것, 지금 내가 내게 주어진 길을 그래도 걸을 수 있는 것 그 모든 일의 시작이 어머니에게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어머니를 잃은 분들, 살아 계실 때 잘 해주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는, 많은 글들을 목격한다. 그리움 한 뭉치 후회 한 뭉치가 섞여 있는 그 눈물의 글들. 이 봄 더 그리움 가득한 날들을 보내고 있을터, 누구나 한 번 겪게 되는 일이 또 아닌가. 먼저이고 나중일 뿐이니, 오랜 슬픔으로 삶을 소진하지 말며 남아 있는 사람들과 그 그리움을 피워보는 일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나도 후회 남기지 않도록 이 봄 날이 다 가기 전에 엄마랑 한 번 더 데이틀 청해 보리라. 간단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 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 오늘을 먼 훗날에 후회하기 전에.
봄 날, 그리움 한 뭉치 훅 밀려온다.